칼뱅 워필드 신학 시리즈 1
벤자민 B. 워필드 지음, 이경직 외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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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도입

이 책은 20세기 3대 칼뱅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B.B. Warfield의 칼뱅 관련 저술을 단행본으로 엮어놓은 것이다. 구성은 목차에서 보여지듯 칼뱅의 생애, 칼뱅의 <기독교 강요> 1부 1-9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해설, 칼뱅의 삼위일체, 칼뱅주의로 나열할 수 있다. 칼뱅주의를 제외한 모든 주제들은 모두 신학 학술지에 기고했던 글들이다. "5장. 칼뱅주의"는 19세기-20세기 초반의 가장 걸출한 개신교의 표준적인 신학 사전 중 하나로 알려진 <The New Schaff-Herzog Encyclopedia of Religious Knowledge>에 Warfield가 기고했던 주제어 '칼뱅주의'를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3대 칼뱅주의자로서 Warfield의 확고한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칼뱅에 대한 Warfield의 친절한 가이드를 기대한 독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신학 논문의 심오한 논의 때문에 예기치 못한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칼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마도 선행 학습(?)으로 칼뱅의 기독교 강요 1부 1-9장을 읽고 나면, Warfield의 논의를 뒤따르기에 훨씬 용이할 것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처럼 Warfield의 논의가 결코 일반 독자들에게 쉬운 수준이 아니다.

이 책에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방식으로 글을 진행하겠다.


II. 질문

1. Warfield는 왜 지금까지 풍성하게 소개되지 않았는가?
2. Warfield 저술의 추적: 출판, 재구성, 재출간, 재구성
3. Warfield의 <칼뱅>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III. 대답

1. 20세기 칼뱅주의자 Warfield

20세기 3대 칼뱅주의자로 Kuyper, Bavinck, Warfield가 있다. 사람들은 Kuyper를 떠올릴 때 곧바로 '영역주권론'을 연상하고, <개혁교의학>은 Bavinck를 대변한다. 그러나 Warfield는 사람들이 떠올릴만한 그런 대표적인 주장이나 저술이 없다. 이따금 Warfield는 진화론과 관련해서 그 유명세가 떠오를 뿐이다. 최근에 <Warfield의 신학>을 저술한 Zaspel은 지금까지 Warfield의 신학이 단 한 번도 통합적으로 이해된 적이 없었다고 성토했고, 그 거대한 작업을 그의 연구가 성공리에 수행했다고 평가받는다. Warfield가 풍성하게 소개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저술이 대부분 논문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도 고도로 섬세한 신학 논문이다. Sinclair Ferguson은 Warfield가 "학술적으로 최고 수준의 글을" 저술했고 "정밀한 학문성"이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고백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Warfield가 "칼뱅의 어려운 삼위일체론을 아주 쉽게 풀이하는 워필드의 탁월함"이라고 소개한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쉽지 않고, 심오하다!) 교의학자이자 변증학자인 그의 저술은 일반 대중들이 손쉽게 접근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그래서 Warfield는 개혁주의 혹은 칼뱅주의 학자들이나 (신학적인) 목회자들에 의해서 위대한 칼뱅주의자로 칭송받았지만(또한 수많이 인용되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Warfield는 저 높은 상아탑 속의 칼뱅주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Bavinck의 <개혁교의학> 역시 대중적인 저술은 아니다. 그렇지만 Warfield는 그런 포괄적인 대작이 아니라, 수많은 저술들을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남겨놓았을 뿐이다. 그가 변증한 주제들은 너무나 방대하다. 대표적으로 선별해보면 성경 영감설과 성경 무오성 논쟁, 초자연주의 및 기적 논쟁, 완전주의 논쟁 등이 있다.

결과적으로 칼뱅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Warfield가 19세기의 자유주의자들이나 종교사학파에 맞서서 칼뱅주의를 변증했다는 사실만 옛 이야기처럼 반복해서 전해지고 전해졌을 뿐이다. 그 논증이나 주장과 근거들은 구체적으로 전수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에게 다른 3대 칼뱅주의자 Kuyper나 Bavinck에 비해서 Warfield는 여전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두 사람과 분명히 다른 Warfield의 특징이 어느 정도 확인되었으니, 이제 첫 질문과 연관성을 가진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자.


2. Works of Warfield

Warfield는 주로 단행본을 저술하기 보다는 여러 신학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생전에 일부 단행본들이 출판되었지만, 대다수 저술은 논문이나 강연록이 차지한다. 20세기 초반인만큼 초자연주의나 기적 그리고 계시에 대한 주제가 단연 두드러졌다. 1927-32년 옥스포드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Warfield의 전집을 10권으로 간행했다. 이 시리즈는 절판되었다가, 1981년부터 Baker 출판사에서 10권 그대로 재출간하기 시작했다(이은선 교수는 2003년 재출간이라고 하지만, Baker의 초판은 1981년이다).  결국 Warfield 전집은 오늘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시리즈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 전집 역시 Warfield의 모든 저술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 정도로 Warfield는 정력적인 저술가였다! 그래서 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일부 저술들은 <Selected Shorter Writings>라는 제목으로 P&R에서 1970년대에 출판되기도 했다(2001년 재판). 전집 10권마다 제목이 붙어있지만, 이 제목은 Warfield가 직접 구성한 것이 아니라 그의 방대한 저술들을 모아서 편집자가 기획한 것이다. 이런 재구성적인 기획과 편집은 한국의 Warfield 번역에서도 그대로 이식된다. 다음은 기존의 Warfield 번역본 목록이다(발행년도는 초판 기준).

(1989) 성경신학연구 1: 구원론 - B. B. 워필드
(1991) 구원의 계획 - B. B. 워필드
(1993) 칼빈·루터·어거스틴 - 벤자민 B. 월필드
(1998) 워필드 명설교 - B. B. 워필드
(2014) 한 권으로 읽는 워필드 신학 - 프레드 재스펠
(2015) 칼뱅 - B. B. 워필드

의외로 Warfield 번역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이경직 교수 역시 기존의 Warfield 번역본에 대해서 두 권(명설교, 워필드 신학)만 언급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두 권의 번역서는 소개할 가치가 있다. 1989년 <성경신학연구 1: 구원론>는 전집 2권 <Biblical Doctrines>과 9권 <Studies in Theology>에서 일부 저술들을 모아서 번역한 책이다. 1993년 <칼빈·루터·어거스틴> 역시 세 인물에 대해서 수록된 전집 중 일부 논문들만 선별해서 번역한 것이다. 전집에는 세 인물들에 대한 더 많은 신학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이번에 새물결플러스에서 출판한 <칼뱅>의 1장과 5장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작정(Decree)의 순서를 다루는 <구원의 계획>은 아마도 국내 칼뱅주의자들이 제일 탐독했을 저술로 추정된다.

이번 <칼뱅>을 시작으로 출판을 예고한 새물결플러스의 Warfield 시리즈 역시 기존의 10권짜리 전집을 따르지 않는 재구성 기획이다. 이 번역본의 기초는 전집 5권 <칼뱅과 칼뱅주의>이다.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전집 5권 <칼뱅과 칼뱅주의> 목차
1. 장 칼뱅: 생애와 작품
2. 칼뱅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교리
3. 칼뱅의 신론
4. 칼뱅의 삼위일체 교리
5. 칼뱅의 창조 교리
6. 칼뱅주의
7. <기독교 강요>의 문헌 역사

여기서 쉽게 포착되는 것처럼 이번에 출판된 <칼뱅>에서는 유감스럽게도 '창조론'과 마지막 논문이 누락되어 있다. 새물결플러스와 동일한 재구성 목차를 가진 책이 하나 있다. 1954년 P&R에서 간행한 <Calvin & Augustine>이다. 이 책은 <계시와 영감>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Warfield의 저술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 구성과 차례는 다음과 같다.

<Calvin & Augustine> 목차
1부: 칼뱅
1. 장 칼뱅: 생애와 작품
2. 칼뱅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 교리
3. 칼뱅의 신론
4. 칼뱅의 삼위일체 교의
5. 칼뱅주의

2부: 어거스틴
1. 어거스틴
2. 어거스틴과 <고백록>
3. 어거스틴의 지식과 권위에 대한 교리

새물결플러스의 <칼뱅>은 Warfield의 칼뱅 관련 논문들과 함께 칼뱅주의에 관한 3편의 강연이 부록으로 추가되어 있다. 한 마디로 Warfield의 저술은 계속해서 재구성과 재출간을 반복하고 있다. 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독자를 비롯한 신학자나 학생들은 Warfield의 저술이 모두 번역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3대 칼뱅주의 신학자 Warfield의 명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번 <칼뱅> 이외에 새물결플러스에서 기획하고 있는 Warfield 시리즈를 모두 출판한다면, 비록 완벽한 전집은 아닐지라도 국내 독자들은 그의 신학 저술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Warfield를 위한 가장 훌륭한 가이드로서 Zaspel의 책 역시 작년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인물을 21세기에 우리가 그렇게 독파할 이유가 있을까? 이 대답을 위해서 <칼뱅> 책 자체를 살펴볼 차례이다.


3. 오늘날의 칼뱅? 오늘날의 워필드?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의 태동부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칼뱅은 시대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해되었다. 그 시대의 해석의 맥락에서 사람들이 칼뱅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뱅은 살아있을 때부터 수많은 오해를 받았다. 오늘날의 칼뱅 이해 역시 과거의 칼뱅 이해에 대한 수많은 교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이르렀다. 이런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저술된 가장 저명한 연구 중 하나로 역사신학자 Richard Muller의 <The Unaccomodated Calvin>를 언급할 만하다. 이 제목은 '맞추어지지 않은 칼뱅'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Warfield 역시 3대 칼뱅주의자에 걸맞게 통찰력 넘치는 칼뱅 해석을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겨놓았다. 먼저 이 저서 <칼뱅>의 특징부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Warfield가 칼뱅을 다루는 주요 저서는 물론 <기독교 강요>이다.
2. 그는 <기독교 강요> 1권의 초반부를 차례대로 해설한다. 이 과정에서 칼뱅에 대해 잘못 해석한 학자들의 입장을 비판한다.
3. 다음으로 잘 조명되지 않았던 칼뱅의 탁월하고 위대한 특징을 조명한다.
4. 부록으로 실린 칼뱅주의 강연에서 Warfield의 선포는 마치 칼뱅주의 고백서를 외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첫째, 19세기의 칼뱅 이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1907년에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을 발표했다. Warfield는 홀로 칼뱅을 이해하지 않고, 다른 학자들의 입장과 견해를 폭넓게 활용하고 대응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가 신학자로서 당대의 다른 신학자들의 주장을 공정하게 다루며, 분명한 근거를 통해서 칼뱅에 관한 오해를 반박하는 솜씨는 책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더불어 칼뱅뿐만 아니라 칼뱅주의자의 저술들도 곳곳에서 인용한다. 이를테면 16세기 네덜란드의 Voetius, 저자와 동시대인 Kuyper와 Bavinck도 여러 차례 이름이 언급된다. 특히 Warfield는 19세기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학자들 중에서는 독자들에게 생경한 이름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칼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Warfield는 꾸준히 본문과 각주에서 나열한다. 이 모든 이해는 한편으로 반대 입장을 논파하기 위한 저자의 진술이기 때문에 파편적이고 부분적이다. 그러나 저자와 동일한 입장에 서 있는 독자로서는 과거의 칼뱅 이해를 통해서 현재의 칼뱅 이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떤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고 어떤 해석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논파당했다. 칼뱅의 Text는 출판 이후로 고유하게 남아서 우리에게 전해졌지만, 그 해석은 수세기동안 여러 변천 과정을 거쳤다. 칼뱅을 둘러싼 Con-Text는 15세기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그 해석 역사를 아우르는 영역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칼뱅 연구나 칼뱅주의 연구는 19세기 칼뱅 이해에서 결코 이탈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Warfield는 널리 알려진 커다란 공헌을 했다. 이것은 두번째 항목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Warfield는 독보적인 칼뱅 해석을 제시했다. 한편으로 “성령 신학자”로서 칼뱅을 재조명했고, 한편으로 “삼위일체의 위대한 신학자의 반열”에 칼뱅을 세웠다. 전자는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끊임없이 인용했으며, 이 책의 서두와 말미에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뱅을 은혜의 신학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속죄의 신학자로서 안셀무스와 칭의의 신학자로서 루터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은 매우 공정한 작업이다.” (p.42)

“그러나 신학에 가장 커다란 칼뱅의 공헌은 아마도 성령의 사역에 대한 교리를 크게 (또한 최초로) 발전시켰다는 사실에 있다.” (p.381)

다음으로 삼위일체 논의는 4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Warfield는 칼뱅을 그리스도교 삼위일체론의 위대한 신학자들의 반열, 테트툴리아누스나 아타나시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에 버금가는 위치에 세워놓는다. 저자는 칼뱅의 삼위일체에서 '자존하시는 하나님(아우토테오스, autotheos)의 속성’이 제2위에도 해당한다는 해석을 방대하게 논의한다. 오늘날 많은 칼뱅주의자들은 칼뱅의 삼위일체론이 동방 신학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CLC> 4장 참조), Warfield는 칼뱅이 “아타나시우스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동방신학보다는 서방신학에 가깝다"고 평가했다(p.286). 그러나 이런 이견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칼뱅의 삼위일체 저술 목적이다. 

“칼뱅은 기독교 교사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순전한 형태로 간직하면서, 양떼를 가르치는 일과 관련해서 자신들의 지혜를 가장 유익한 수준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활용할 수 있는 자유를 끈질기게 주장했다."(p.252)

저자의 이 진술은 칼뱅이 “경건에 대한 ... 모든 것들"라고 첨언한 <기독교 강요>의 부제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기독교 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면서 임의로 일부 내용을 제외하거나 첨가할 수 없다. 자신들의 수준에 맞게 모든 성경 진술과 그것에서 도출한 교리를 전해야만 한다. 그 안내자 역할을 시대를 초월하는 수준에서 수행한 위대한 거인이 바로 칼뱅이다. Warfield는 칼뱅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바로 신학자들의 사변과 논쟁이 아니라 양떼에게 성경을 먹이는 것이 <기독교 강요> 전체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 더불어 Warfield는 칼뱅이 삼위일체를 논하는 태도의 뿌리로 다음 두 가지를 선택했다.

“칼뱅은 삼위일체 교리를 표현하면서 오직 성경에만 호소했기 때문에, 현재의 권위나 과거의 기도문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또한 성경만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성경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 사상의 순수성이다.” (p.259)

여기서 강조점은 바로 칼뱅이 미리 다루었던 성경이다. Warfield의 이 진술은 19세기 유행한 합리주의와 자연주의에 의존한 신학자들의 태도와 정반대의 입장에 칼뱅이 서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 전제를 다른 저술 <계시와 영감>에서 더 구체적이고 확장시켜서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4장에서 칼뱅이 주장한 하나님의 제2위의 자존성을 심오하게 변호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 이후 세대의 칼뱅 이해를 아우르면서, 교부들의 저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시에 칼뱅의 삼위일체 논적자인 쿠르투아를 다루면서 칼뱅의 여러 서간문들도 인용하고 해설한다. 이 모든 논의를 여기서 약술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4장의 결론을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성자의 존재 근거는 그분 자신에게’ 있다(autotheos)는 것이다. Warfield의 칼뱅 이해는 참으로 유기적이지 않은가?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답습에 급급한 칼뱅주의자를 넘어선 진정한 칼뱅주의자의 면모를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칼뱅이라는 모퉁이돌이 아니라, 성경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반석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다. 이 특징은 다음 교훈과 이어진다.

셋째, 칼뱅주의자의 올바른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칼뱅주의자는 결코 칼뱅에게 맹목적이지 않다. 오늘날 일부 칼뱅주의자들은 '칼뱅주의 저변확대' 같은 단순한 사고와 우격다짐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진정한 칼뱅주의자의 태도는 그렇게 저급한 수준이 아니다. 올바른 칼뱅주의자의 자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두 가지가 돋보인다. 하나는 칼뱅 저술의 올바른 독해(reading)이다.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할까? Warfield는 거칠고 사나운 칼뱅주의자들이 아니라 섬세하고 박식한 칼뱅주의자의 면모를 도처에서 풍긱고 있다. 전자는 결론만 가지고 왈가왈부하지만, 후자는 기승전결을 모두 논의할 수 있으며 상대방과 대화와 토론할 수 있다. 오늘날 칼뱅주의의 비극 중 하나는 우리가 전자에 속한 투쟁적인 칼뱅주의자의 후예를 종종 마주하지만, Warfield와 같은 후자의 부류는 도무지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많은 칼뱅주의자들의 칼뱅 해석을 대단히 지나치거나 대단히 부족한 오해 속에 대부분 머문다. 우리는 그 판단의 기준을 20세기 가장 위대한 칼뱅주의자 중 한 사람인 Warfield의 칼뱅 해석을 통해서 격차를 감지할 수 있다. Warfield라는 칼뱅주의자는 칼뱅을 지나치게 우상화시키지도, 지나치게 격하시키지도 않았다. 교부 역사와 종교개혁사와 당대의 칼뱅 해석을 모두 섭렵하면서, 동시에 칼뱅의 저술과 서신들과 역사를 정리하면서 최대한 공정하게 칼뱅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온늘날 일부 칼뱅주의자들이 칼뱅의 Text만, 그것도 기독교 강요에만 의존하지만, Warfield는 칼뱅의 기독교강요와 서간문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들, 칼뱅의 Con-Text와 교회 역사 및 신학의 Con-Text를 모두 파헤친다. 이로부터 올바른 칼뱅 독해(reading)이 나온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의 겸허한 태도이다. Warfield의 이 태도는 부록으로 수록된 강연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특징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지막 강연에서 Warfield의 웅변적인 선포는 칼뱅주의 고백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자에게도 약점이 없지 않다. 분명히 시대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시대적인 한계를 초월한다. 이 초월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분위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송영 혹은 예배의 모습이다. 일부 몰지각한 칼뱅주의자들은 칼뱅을 하나님 위에 모시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칼뱅주의자의 태도는 하나님 이외에 아무 존재도 우상화하지 않는다. 오늘날 칼뱅주의자의 태도는 Warfield와 비교했을 때 과연 어떠한지 물음이 필요하다.

네번째 교훈은 독자들에게 주어진 어떤 숙제에 가깝다. Warfield의 신학은 왜 계승되지 못했을까? Warfield가 1세기 전에 ‘오늘날 칼뱅의 의미’를 질문했다면, 우리는 ‘오늘날 Warfield의 의미’를 질문해볼 수 있다. 사실 Warfield 신학의 계승, 바꾸어 말해서 Old Princeton Theology이나 그 계승의 문제는 George Marsden, Mark Noll, David Wells 등의 여러 학자들이 이미 통찰력 있는 연구를 남겨놓았다. 여기서는 한 설교자를 언급하고 싶다. 웨스트민스터채플의 D.Martyn Lloyd-jones는 30대에 사역차 미국과 캐나다 방문했을 때, Warfield의 방대하고 심오한 신학을 접하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Lloyd-jones가 정식적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어느 설교자보다 신학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기반에는 청교도 유산 못지 않게 강조해야 할 인물이 Warfield이다. 이 증거는 <교리 강좌> 시리즈나 여러 설교에서 Warfield 읽기를 권하고 추천하는 언급 속에 잘 남아있다. Warfield는 칼뱅 이외에 수많은 신학 저술들을 남겼으며, 그 안에는 교부들의 유산까지 아우르고 있다(특히 Tertulian와 Augustine에 대한 방대한 논문들이 있다). 오늘날 칼뱅주의자들 중에서 Warfield 만큼 교부들에 해박한 신학자는 여전히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의 저자 David Gordon은 오늘날 설교자들의 수준이 1세기 전에 비하면 유년생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탄했다. 그만큼 우리는 기본적인 독해력과 사고력의 상실을 곳곳에서 경험하고 있다. Warfield 신학의 계승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이 연구한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Warfield 신학의 깊고 심오한 사상이나 정신의 탁월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수준 낮은 현실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제 결론이다. '오늘날 Warfield의 의미’와 관련해서 우리는 <칼뱅>을 통해서 칼뱅에 대한 올바른 독해력을 배울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독자들은 저자에게 동시에 저자가 가리키는 칼뱅에게 새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우리에게 대답을 주셨고 주시고 주실 것이다. 나는 오늘날 칼뱅주의를 "죽이는 것은 문자요” 칼뱅주의를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생각한다. 칼뱅이라는 위대한 악보를 펼쳐놓았지만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고 아름답게 연주하지도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칼뱅주의자를 자처하는 나팔수들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의 나팔수를 원하신다. 칼뱅주의자의 종착점은 결코 칼뱅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Warfield의 선포로 글을 매듭 지으려고 한다. 100여년 전에 Warfield의 깊은 가슴에서 울려퍼진 영광의 호소가 독자들의 가슴 속에서도 메아리치기를 바란다.

“칼뱅주의를 짓누르는 더 중대한 질문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받으시는가?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정 속에 감정이 고양되고 수고가 집약된다... 칼뱅주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비전에서 시작하고, 그 비전을 중심에 두며, 그 비전으로 끝난다.” (p.364)



덧글:
칼뱅의 별명: 비난만 일삼는 인간(The Accusative Case, p.18)

Warfield의 지적과 달리, 저 별명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633년 칼뱅을 싫어한 Jacques Le Vasseur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수세기 동안 떠돌아다닌 잘못된 정보는 Abel Lefranc와 Emilé Doumergue에 의해서 비로소 교정되었다. John Thomas McNeill에 따르면, 칼뱅의 친척 올리베땅의 별명은 "The Ablative Case"였다. 라틴어 한글 문법서에서는 보통 “5격” 혹은 "탈격"이라고 번역하는데, 별명이 붙은 이유가 흥미롭다. 올리베땅은 수업이 끝나면 학생 가운을 벗어던지는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라틴어에서 “탈격”은 대상에서 떨어져나가는 분리를 나타낼 때 사용하기 때문에, 올리베땅의 모습에서 학생들이 그 별명을 지어준 것은 적절했다. 칼뱅의 "The Accusative Case"는 올리베땅의 별명에서 착안되었을 것이다. 이 별명은 1세기 이후에 생성되었지만, 이미 Beza는 칼뱅이 주변 학우들의 악행을 비난하던 학생이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칼뱅이 학창시절에 비난을 얼마나 일삼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비난만 일삼는 인간'이 아니라 문법용어 "대격"에 해당한다. 아마도 칼뱅의 까다로운 성미를 조롱하는 별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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