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 - 초기 기독교의 예수 신앙에 대한 역사적 탐구
래리 허타도 지음, 박규태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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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터운 분량에 비해서 매우 단순한 명제를 가지고 있다. 출판사 소개글이나 여러 학자들의 추천사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처럼 1913년에 출간된 Wilhelm Bousset의 <Kyrios Christos>의 명제를 반박하는 책이다. Bousset는 소위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liche Schule)의 일원으로 그의 주장은 Jesus Devotion(예수 경배/헌신/섬김)이 이레나이우스를 거쳐서 2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Larry Hurtado는 이 주장에 반박하며 Jesus Devotion의 출발점을 1세기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단순한 테제를 위해서 저자는 1,000페이지가 넘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왜 이렇게 방대한 증거가 필요할까? 일단 저자의 초점이 "역사적인 현상(historical phenomenon)"이기 때문이다. 신앙적인 현상(religious phenomenon)이 아니다. 저자는 오늘날 남아있는 역사 사료들과 각종 증거들의 토대 위에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 토대에 대한 해석은 잠잠히 합의를 이루기 보다는 여전히 폭발적으로 논쟁이 들끓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저자의 방대한 저술 속에는 수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담겨 있다. 그 방대한 논의를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이런 탁월함이 오히려 집대성하기 불가능해보이는 작업을 성취했고, 따라서 엄청난 분량의 저술이 쏟아진 것이다. (참고로 저자의 참고문헌 목록만 67페이지 분량이다)

다른 방대한 저술의 서평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이 책의 요약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핵심 요약은 이미 언급했다. Jesus Devotion은 2세기 말이 아니라 1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평범한(!) 독자가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호흡곤란으로 질식할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고 논의를 펼치지만, 다행히 직접 매 장마다 요약 및 결론을 제공해주는 친절함을 베풀어준다.

어쨌든 이 책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 요약보다는 구체적으로 저자의 입장을 확인해보자. 저자가 Jesus Devotion이 1세기부터 태동했다고 주장할 때, 근거로 제시하는 원동력/요인들은 다음과 같다(pp.158-9).


 

1. 유대교의 배타주의적 유일신론
 : 가장 중요한 정황이자 강력한 형성 동인이다.

2. 예수가 끼친 효과들, 특히 그의 행적이 초래한 양극화 효과
 : 한 극단에서는 예수를 정면으로 저주하고 유죄를 선고했고, 다른 극단에서는 소위 예수 운동의 최초 집단들이 이후에 지속적으로 예수를 긍정적 주체로 부각시켜 나가는 데 핵심적으로 기여했다.

3. 계시적 신앙 체험들
 : 이 체험들은 두 가지 확신을 가져왔다. (1) 예수가 하늘의 영광을 받으셨다는 확신, (2) 섬김/헌신의 삶을 통해 예수에게 특별하게 경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예수 운동 집단들에게 심어주었다.

4. 더 커다란 종교 환경과의 만남
 : 특별히 유대인들의 논박에 맞서고 당시 종교 환경에서 대세를 이루던 이방 종교의 관행에 맞서 그리스도인들의 Jesus Devotion이 갖는 차별성과 정당성을 논변하는 역동성이 이 Jesus Devotion 흐름을 더욱 촉진했다.

 


이 고찰은 모두 1장에서 제시된다. 저자는 네 가지 요인들은 2~10장까지 광활한 작업 속에서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을 1장만 읽어도 책 전부를 읽은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학자는 예외적이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아마도 숨을 고르면서 이 논의를 추적하기도 벅찰 수 있다. 이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받은 인상을 두서없이 열거하겠다.


첫째, 너무나 당연하게도 역사 증거로서 바울 서신과 복음서에 가장 많은 초점이 맞춰진다. 1세기의 역사 사료는 요세푸스나 타키투스 같은 고대 저술가를 제외하면 이 주제에 쓸모 있는 사료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자의 입장에서 이 사료들은 바울 서신이나 복음서에 필적하는 수준이 아니다. 어쨌든 3장에서 사도행전이 다루어 지는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했다. 1세기 Jesus Devotion의 가장 선명한 고백 중 하나인 스데반 집사의 언변에 저자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각주에서 언급되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도행전에서 가장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보다 "헬라파와 히브리파"에 더욱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상당히 의아하다.

둘째, 의외로 이 책은 매우 감동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학문적 논의만 점철되어 있는 것 같지만, 책 도처에서 저자는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하나님으로 이해했는가?"를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답변은 필연적으로 신앙고백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는 독자들의 마음 안에서 여전히 동일한 고백으로서 반향을 일으킨다. 이 울림은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서 1세기의 교부 이그나티우스(Ignatius, AD c. 35 or 50 – 98 to 117)의 에베소 서신을 인용할 때, 절정에 도달한다. 저자는 헬라어 본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하고, 더구나 출판사에서 원문을 수록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에서 그 원문과 번역을 한 번 확인해보자.

εις ιατρος εστιν, σαρκικος και πνευματικος, γεννητος και αγεννητος, εν ανθρωπω θεος, εν θανατω ζωη αληθινη, και εκ Μαριας και εκ θεου, πρωτον παθητος και τοτε απαθης,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ο κυριος ημων. [에베소 서신 7.2]

치료자가 한 분 계시니, 육신을 지니셨으나 영이신 분, 낳은 바 되셨으나 태어나지 않으신 분, 인간 안에 계신 하나님, 죽음 안에 계신 참 생명, 마리아에게서 동시에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 처음에는 고난 아래 나중에는 고난 위에 계신 분,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Hurtado는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모두 고백하는 1세기 가장 뛰어난 문장"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이 문구의 마지막에 책 제목이 들어있다. 주=Lord=ο κυριος, 예수=Jesus=Ιησους, 그리스도=Christ=Χριστος. 이 고백이 21세기에 독자의 마음에 울려퍼지는 원동력은 아마도 위에서 언급했던 세 번째 요인, 즉 "계시적 신앙 체험"에 해당될 것이다.

셋째로 최신의 학술 논의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준다. 2003년에 이 책이 나온 만큼 그 당시까지 신약학에서 이루어진 최신 정보가 모두 집약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외경이나 최신 성서학계의 동향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많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가장 격렬하게 논의되는 주제는 오늘날 여전히 논쟁이 끝나지 않은 "인자" 해석이다.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저자가 결론 내리는 입장만 간단하게 인용해보겠다.

" 인자는 결코 칭호가 아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Jesus Devotion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특징. 어휘론(Lexicology)의 관점에서 인자는 예수가 인간으로서, 유일무이한 인간/인간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1세기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인자를 신앙 고백 때 예수를 부르는 칭호로 사용했거나, 이 표현 자체가 그 본질상 기독론과 관련된 어떤 주장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인자에 대한 오늘날 학자들의 폭발적인 논의들이 펼쳐지지만, 결국 저자는 이 저술의 주제에 입각해서 1세기로 범위를 한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인자" 문제를 기독론의 칭호 문제와 연결짓는다. 그러나 저자는 증거를 토대로 신중하게 유보한다. 여기서 이 책의 독서를 위해서 한 가지만 제안하자면, 독자가 저자가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 결정하는 해석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는 이 걸출한 학자의 방대한 작업 속에서 역사 사료를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해석하며 어떻게 다른 입장을 비평하고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세우는지 그 과정은 마음 속에 각인시킬수록 유익할 것이다. Larry Hurtado는 섣불리 결론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그는 아우를 수 있는 모든 사료와 주장들을 검토한 다음에 자신의 입장을 내세운다. 이런 치밀한 국면은 일반적인 신앙서적이나 전문적인 신학서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종류에 속한다. 더불어 여러 외경들과 전승들과 나그함마디 문서 등 방대한 자료들을 집약적으로 다루는 저자의 솜씨도 감탄을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방대한 저술의 짤막한 서평을 매듭짓겠다. 이 책은 무려 1200페이지 분량이다(원서는 약 770페이지). 우리는 21세기 학자의 1-2세기 해석이 주는 의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기존의 그리스도 이해, 기존의 성서 해석, 기존의 초기 그리스도교 이해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야기시킬 수 있을까?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저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섣불리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사 현상을 다루는 저술이라고 신앙의 차원을 분리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저자의 주장이 맞다면, 이 역사 현상 역시 "신앙 체험"에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가장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1-2세기의 Jesus Devotion 신앙 체험과 동일한 정체성을 경험하는 독자일 것이다. 역사와 신앙은 직결되는 문제일 수 있다. 아마존닷컴에서 어떤 서평자는 이 책을 명백히 편견이라고 혹평했다. 마찬가지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1세기에도 있었다. 고 기독론(High Christology)을 고수하는 저자에 따르면, Jesus Devotion의 역동성은 이런 입장과 조우할 때마다 더욱 촉진되었다. 이그나티우스의 말을 반복하겠다. "그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덧붙임(1) 흥미롭게도 Larry Hurtado는 자신이 반박했던 Bousset의 <Kyrios Christos> 2013년 영어 번역본에 서문을 작성했다.


덧붙임(2) 번역자는 주요 현대 신학자들을 소개하는 엄청난 노고를 독자들에게 기꺼이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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