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처치 - 예수님을 따라 신실하게 일하는 인격적 교회론
크리스토퍼 스미스 외 지음, 김윤희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빌 하이벨스의 윌로우크릭처치의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자신에게 충고해준 워렌 위어스비의 한 마디로 이 책의 탄생을 대변한다.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복은 절대로 프랜차이즈 형태로 받을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해서 '슬로 푸드' 아이디어를 통해서 <슬로 처치>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제목이 전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내용이 간단명료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책을 따로 요약하지는 않겠다. 엄청난 찬사를 받아온 이 책의 매력을 나름대로 세 가지로 평가하고, 그 매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도 살펴보는 것이 이 서평의 목적이다.

1. <슬로처치>는 뜬구름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에 대한 고민이며, 그 고민이 현실(!)에 뿌리내려서 영글어진 열매이다. 그 고민의 주체는 두 저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많은 신자들의 고민이다. 그 고민은 성서를 양분으로 현실의 험난한 토양을 뚫고 나와서 자라나고 있다. 현실은 언제나 강조되어야만 한다. 저자는 현실의 상황을 지켜보고 대화한다. 현실의 사람들과 소통한다. 현실의 교회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 '슬로 푸드'가 단지 이론 작업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꾀하는 운동인 것처럼, '슬로 처치' 역시 이론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이 교회 이론에서 교회 현실을 끄집어 냈다면, 그저그런 책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교회 현실을 성서 그 자체에서 취했으며, 그 현실을 다시 이론으로 정리한 책이기 떄문에 여타의 교회 관련 도서들과 분명히 구별되는 위치에 서 있다. 복잡한 사상과 논리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고, 모든 내용의 토대가 항상 현실이기 때문에 다른 책들보다 훨씬 실제적이다.

2. 이 책은 교회를 논의하지만 기존 담론들을 답습하지 않아서 신선하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미 교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궁금증은 교회성장도 아니고 교회의 참된 표지도 아니다. 주일성수가 교회의 회복이라고 광야에 나가서 소리치고 싶은 충동도 없다. <슬로처치> 이런 담론들이 지겹거나 신물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면 그 신선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 가지는 위에서 언급했던 '현실성'이다. 다른 한 가지는 저자 특유의 '접근법'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독자들은 저자가 인용하는 책의 대다수가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단지 독서만으로 성서에 입각한 창조적인 담론이 탄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 마디로 저자는 대중적인 책을 읽고서 남들이 떠올리지 못하는 생각을 성찰했고 적용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슬로 처치'라는 저자의 해결책이 아니라 '슬로 처치'에 도달한 고민의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기존의 교회 담론에서 식사는 성찬에 비해서 얼마나 소외당했는가? 교회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이 책의 매력은 이처럼 다수에게 홀대 당한 요소들을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구체적인 현실을 배경으로 말이다. 이런 접근 방식이 바로 참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밀인 셈이다.

3. <슬로 처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을 강조한다. 기존 담론들의 빈곤한 상상력은 어쩌면 완성된 그림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생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완성과 성취를 기다리는 과도기에 있다. 그 도상에 초점을 맞추는 저자의 고민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느림'이 핵심인 것이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지만, 인간에게는 하루가 하루 같고 천년은 천년 같다. 하루는 하루다. 우리는 주님의 날을 앞당길 수 없다. 저자는 마지막 날을 외면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이전의 나날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교회의 윤리와 생태와 경제를 말하는 것이다. 여전히 일부 사람들에게 교회의 윤리는 개인의 경건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개별성과 공동체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생태와 경제는 공동체가 공동체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그려나가야 할 그림들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교회들이 완성에만 열광할 뿐 공동체로서의 이런 생태와 경제를 대부분 외면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깨달을 것이다.

<슬로 처치>는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대로 접목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바로 지역성(Locality) 문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지역 커뮤니티를 강조한다. 그러나 편의점 개수보다 더 많은 교회들이 난립한 한국에서는 서울이나 경기도나 강원도나 부산이나 대다수의 교회들이 지역성을 고민하기 어려운 맥락 속에 있다. 농어촌에 있는 교회들이라면 오히려 지역성이 선명하지만, 도봉구나 노원구에서 지역성의 차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다음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복잡한 이해타산의 관계가 문제다. 사역자들은 저자처럼 사역하려면 개척교회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소위 담임교역자와 부교역자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지역 교회들의 이해타산 관계도 한국은 미국과 실정이 다르다.

여전히 <슬로 처치>가 풀어주지 못하는 고민들을 한국 목회자들과 신학자들과 성도들의 숙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깊은 통찰과 창조적인 적용으로 인해서 저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토의 문제를 극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아쉬운 점들을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논의해서 미국과 한국 사이의 간극을 이으려는 훌륭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워렌 위어스비의 말은 <슬로 처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슬로 처치라는 프랜차이즈로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는 그 복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질문을 재고하도록 독자들에게 도전하며 요청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