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학
게르하르트 마이어 지음, 장해경 외 옮김 / 영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그는 1990년에 『성경 해석학』을 발간함으로써 그가 거부한 역사비평적 해석 방법론에 대한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위의 문장은 저자 소개에서 가져왔다. 만일 이 책을 통해서 성경해석 기술을 습득하기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에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소개에 명시된 것처럼 이 책의 목적은 19-20세기에 독일 신학계의 주된 흐름 중 하나인 역사비평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며, 그 자리에 올바른 성경해석이라는 대안을 내세우는 것이다.



먼저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총 14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시 재구성한다면, 아래와 같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I. 1~6장은 서론에 해당하며 해석학, 해석자, 해석의 역사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II. 7~11장은 성경의 영감 및 권위, 성경의 통일성과 역사성을 다루고 있다.  조직신학의 성경론과 상응한다.
III. 12-13장은 이 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역사비평에 대한 검토와 비판에 해당한다. 더불어 역사비평에 대한 과거의 대안 및 대안의 검토도 포함된다. 
V. 14장은 종합적인 대안, 즉 결론이다. 




이제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전체적인 평가로 마무리하겠다. 


먼저 저자는 한결같이 성경해석의 핵심을 전부 '계시'에서 찾고 그 권위에 호소한다. 


"우리의 원칙은 해석이 계시 자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p.90)." 그리고 저자는 성경 계시가 해석자에게 일어나는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1)역동적으로(Dynamisch) 2)윤리적으로(Ethisch) 3)인식적으로(Kognitiv). 이 항목은 14장의 결론의 뿌리에 해당한다. 마이어는 여기서 신학자와 비신학자의 구분이 3)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본다. 더 나아가서 1)의 경우, 바꾸어 말하면 순종이나 행동의 차원에서는 비신학자들에 속하는 그리스도인이 신학자보다 훨씬 더 깊은 이해에 머물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3)의 항목이 1)과 2)의 항목보다 결코 우월한 것도 아니다. 마이어는 계시 앞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석자로서 동등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다분히 학문적인 접근으로 성경해석을 시도하려는 학자 집단에 경고하는 것이다. 결국 성경해석에서 계시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특히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란 말인가? 이 함정을 마이어는 놓치지 않는다. 이외에도 해석자 및 해석작업의 정의를 통해서 불과 몇 페이지로 뛰어난 정의와 통찰력을 집약하고 있지만, 이 서평에서는 과감히 생략하겠다. 


둘째로 저자는 역사비평의 주요 근원을 합리주의 철학자들과 계몽주의에 기울어진 신학자들이라고 본다.


"본격적인 계몽신학의 형성은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그밖에 영국의 이신론과 ... 신학자들의 아들들... 에 의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세기에 득세한 역사비평이 계몽주의의 아들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pp.298-300)."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역사비평의 뿌리, 과정, 결말, 상응했던 과거의 대안들을 차례차례 개괄한다. 여기서도 마이어의 탁월성이 드러나는데,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독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미주의 방대한 분량과 비교했을 때 더욱 돋보인다. 마이어는 독일 신학계와 영미 신학계의 주요 저작들을 대부분 섭렵하고 자유롭게 인용하고 있다. 역사비평의 요약은 12-13장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요약하지 않겠다. 한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마이어가 역사비평의 시대에 대안을 제시했던 자들을 '중도비평'이라고 정리하고 그들과 자신의 입장 차이를 명시한다는 점이다(pp.435-6). 


위의 두 가지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마이어는 역사비평의 가장 큰 모순점이 "무엇이 계시이고, 무엇이 계시가 아닌지 인간이 결정한다는 점"이라고 본다(p.309). 그는 여기서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점과 성령과 새 피조물이라는 영적 차원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역사비평을 꾸짖는다. "내용 비평은 기껏해야 쓸모없는 수단을 가지고 쓸모없는 대상에 적용하려는 시도"이며 "인간자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론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추천사에서도 잘 언급된 것처럼 저자는 "종전의 ‘역사적-성경적 방법’(historisch-biblische Methode)이란 말 대신에 ‘성경적-역사적 방법’(biblisch-historische Methode)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이 방법의 내적-외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마이어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검증이 필요한 불완전성을 내적으로 가진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해석자로서 성경해석방법을 동원한다. 마이어의 첫 제안은 "정경이라는 최종 형태"가 기준점이다. 둘째로 "유비의 척도"를 옮겨야 한다. 계몽주의자들은 유비를 통해서 기적을 제거하고 초자연성을 제거했지만, 우리는 유비를 정 위치로 다시 옮겨서 기적과 초자연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과정에서 마이어의 해석학은 여타 다른 정경 해석학에서 볼 수 있는 논의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반드시 언급해야 할 마지막으로 한 가지 특징은 "대화"이다. 성경과 성경 사이의 대화! 해석자 사이의 대화! 교회와의 대화! 세상과의 대화!! 이렇게 네 가지로 마이어는 이 책을 결론 짓는다. 




이제 간단히 정리하면서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다시 말하지만, 우선 역사비평의 문제의식이나 역사비평에 커다란 관심이 없는 독자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독일 성서신학의 흐름을 쉽게 개괄하고 싶다면 이 책은 가장 훌륭한 안내서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구체적인 성경해석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독자는 책의 본질을 오해한 셈이다. 


둘째로 마이어는 독창성은 돋보이지 않지만, 역사비평의 인솔교사로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 점은 1장과 5장에 돋보이며, 역사비평을 개괄하는 12-13장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셋째는 책의 단점에 해당한다. 구성의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조직신학적인 '성경론'은 소위 너무 지나친 요약이나 해설로 인해서 책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 부분을 숙독했을 때 얻는 유익은 분명히 역사비평의 검토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신학적인 수준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소하게 아쉬운 사항이다. 번역과정 속에서 '과학'이라는 번역이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독일어 원어가 무엇으로 쓰였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학문'으로 번역되어야 훨씬 자연스러운 문맥이 도처에 있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이 점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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