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 애들이 부러웠다. 그건 종교가 없는 사람이 가끔 신자들을 부러워하는 심리와 비슷한 데가 있었다. 1초도 빠짐없이 나를 주시하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신이 있으면 사는 일도 한결 든든하지 않을까.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그걸 믿으면 얼마나 위안이 되겠나. 그가 실제로 그걸 믿는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는 눈동자 같은 신의 존재를 느끼며 힘을 내어 하루하루 살아갈 테니 말이다. (p.46)

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갑자기 주변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만큼 매력적인 존재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나는 울고 싶어진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고, 모두 나의 적이다. 그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들의 매력을 알아볼 것만 같아서 나는 애가 탄다. 그들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어 보인다. (p.82)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들이 일러 준 나의 모습을 받아들여 그것이 나의 특성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수 없어졌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삶이 나의 기질과 어울리는지. 사람들의 시선과 모르는 사람들의 존경, 가상의 기대와 평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 살게 될까.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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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입력된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자유의지라는 것이 때로 허망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어떤 허깨비와 싸우는 것일지도. 그게 뭔지는 모르는 채로. (p.63)

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뒤에 그 말은 사람이나 인격, 성격을 가리키는 단어들의 어원이 되었다. 여행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가면을 쓰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그러면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고향에서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지에서 쓰는 가면이 조금 낯설 뿐이다. (p.158)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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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p.21, <모르는 사람>)

아버지 혼자 죽을 힘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로 하여금 죽을 힘을 다하지 않아도 되도록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다. 아버지가 모르게 했기 때문에 몰랐다. (p.114, <강의>)

말해지기 위해서는 말할 것이 ‘있어야‘ 하고 ‘있는‘ 것을, 혹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있고‘ , 있는 것을 ‘안다‘ 고 해서 다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있고, 있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은 말해질 수 없거나 말하지 않기로 결정됨으로써 말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언제든 말해질 수 있는 상태로 웅크리고 있다. 그것들은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있고‘ , 있다는 것을 ‘안다‘ 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p.204, <신의 말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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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화가 났다. 잘 놀고 있다가 별안간 따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돌아서서 문짝에 등을 기댔다.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존재의 징표‘ 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p.240)

"(...) 너라면 어떻겠냐? 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날아다녔던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비행 금지구역으로 변해 있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날개 꺾인 독수리의 절망은 오리의 이해 영역 밖이었다. (p.284)

불쑥 불편한 마음이 앞에 나섰다. 벼랑 끝에 몰린 주제에 존재 운운하는 허풍쟁이가 아니꼬워서. 허풍쟁이를 아니꼬워하는 내가 초라해서. (p.286)

나는 진실에 얻어맞아 고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그림자에 놀라 끝없이 달아났던 것인지도 모르고. 어쨋든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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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p.127)

사랑의 배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꿈속에서도 생각나지 않도록 완벽하게 잊어주는 것이다. (p.136)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
불행의 과장법,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다른 점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진저리를 치는 부분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과장법까지 동원해서 강조하고 또 강조해야 하는 것이 기껏해야 불행뿐인 삶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몸서리를 칠 수는 있지만. (p.153)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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