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나는 거울 속에서 관자놀이 부근의 희미한 주름을 확인하고는 나의 청춘도 점점 다른 세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다른 사람들이 청춘이라고 칭하는 시절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흘러가 버렸다. 그러나 청춘과의 이별이란 나에게 유별나게 서글픈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의 청춘 역시 별로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p.19)
내가 침묵과 외로움의 고통을 내몰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회전목마의 기둥 옆에 서 있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욕구가 명하는 대로 거리를 활보하거나 이리저리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서서 빙빙 도는 불빛의 반사광 속에서 이동하는 회전목마의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내 고독한 불의 섬으로부터 어둠을 들여다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잠시나마 휘황찬란한 불빛에 이끌려 다가오는 사람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그들의 눈길은 내게서 차갑게 미끄러져 떠나갔다. 아무도 나를 원치 않았고, 아무도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