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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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라룸은 몸을 굴려 위를 쳐다보았고, 어둠이 빠르게 탑의 남은 부분을 올라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는 세상의 가장자리 아래로 넘어가면서 하늘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괜찮은 구경거리였지, 안 그런가?" 쿠다가 물었다.
 힐라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밤의 정체를 깨달았던 것이다. 밤이란 하늘을 향해 드리우는 대지의 그림자였다. (p.27, <바빌론의 탑>)

닐은 장인 장모의 주장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믿는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죄인들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편이 - 정의나 죄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 아무런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낫지 않을까. (p.344)

이선은 사후에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인간계에서 그것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라고 설파하지만, 이것을 예로 들어 사람들에게 신을 숭배하지 말라고 설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을 사랑하라고 촉구한다. 이선이 주장하는 것은 오해에 입각해서 신을 사랑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신을 사랑하고 싶거든, 신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그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은 의롭지 않고, 자비롭지도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전한 신앙심을 갖추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p.362, <지옥은 신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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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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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넷이서 행복해지자며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가엾어.
어째서 그렇게 열심히 산 걸까.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p.11)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p.45)

나는 말했다.
공룡이 사라졌잖아.
어.
멸종했잖아.
멸종했지.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그랬대?
천만년에 걸쳐서 서서히 사라진 거야.
꽤 기네.
길지.
.........
그렇게 금방 망하지 않아.
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단번에 망하는 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돼?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 (p.221)

애쓰지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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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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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앞에는 병이 들고도 꽃을 피우는 장미가 서있으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장미에 든 병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앓게 하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그러니 오늘은 조금 우울해도 좋아, 라는 말을 계속해도 좋아

[이국의 호텔] 부분


내 손을 잡아줄래요?
피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그 막연함도 들어볼래요?

[내 손을 잡아줄래요?] 부분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눈] 전문


기쁨은 흐릿하게 오고
슬픔은 명랑하게 온다

[나는 춤추는 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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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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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주의 일부다.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시공간은 무대, 물질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연법칙이라는 대본에 따라 물질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연극이다.(p.37)

우리 오른손 집게손가락 끝에 있는 탄소 원자 하나는 먼 옛날 우주 어느 별 내부의 핵융합반응에서 만들어졌다. 그 탄소는 우주를 떠돌다가 태양의 중력에 이끌려 지구에 내려앉아, 시아노박테리아, 이산화탄소, 삽엽충, 트리케라톱스, 원시고래, 사과를 거쳐 내 몸에 들어와 포도당의 일부로 몸속을 떠돌다, 손가락에 난 상처를 메우려 DNA의 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과정에서 피부 세포의 일부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원자 하나에서 우주를 느낀다.(p.56)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지만 부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p.195)

과학자들은 자신의 실험결과를 놓고도 의심해야 한다. 결과가 놀라울수록 더욱 그렇다. 실험실에 갓 들어온 대학원생들은 날마다 노벨상 받을 만한 결과를 발견한다. 호들갑 떠는 신참의 말에 선배는 심드렁하게 이것저것 확인할 리스트를 말해주기 마련이다. 그의 노벨상은 곧 물거품이 된다. 근대철학을 연 것도 "모든 것을 의심하라"라는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었다. 충분한 의심을 통과한 과학이론에만 법칙이라는 신뢰가 주어진다.(p.266)

필자가 과학자로 훈련을 받는 동안, 뼈에 사무치게 배운 것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태도였다. 모를 때 아는 체하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이다. 또한 내가 안다고 할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질적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적 태도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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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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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흘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p.11)

7은 마법의 숫자였다.
7에는 사각형의 균형과 삼각형의 현기증이 같이 들어있다.
유코가 시인의 길로 들어섰을 때 나이가 17세였다.
그는 열일곱 음절의 시들을 썼다.
그는 일곱 마리 고양이를 길렀다.
그는 겨울마다 일흔일곱 편의 하이쿠를 쓰겠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다른 계절에는 집에 머물며 눈을 잊으려 했다.(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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