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민주주의가 국가를 잘 통치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과 정당을 국민이 선택하는 제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도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제도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도 그러려니와 세계 각국의 경험을 보아도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을 맡긴 예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돌프 히틀러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보통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권력자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악하거나 무능한 또는 둘 다인 사람을 국민이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휼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p.106)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수적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변화된 환경이 무엇인지, 나의 정신적 태도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데 대한 본능적 저항감을 극복하려면 힘겨운 노력을 해야한다. 지배적 생활양식에 순종하면서 일상적 생존투쟁을 견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p.191)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려고 할 경우 "생산력의 엄청난 황폐화, 무의미한 실험들, 목적 없는 폭력행위 등과 같은 것만을 빚어낼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는 사실상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에 의해 지탱되는 혁명적 중앙권력의 독재형태를 통해서만 달성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한 베른슈타인의 예측은 소비에트연방을 비롯한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서 현실이 되었다. 혁명가 클럽 내부의 권력다툼이 혁명에 대한 철학과 이론의 차이로 표출되면서 어제의 혁명동지를 무더기로 학살한 ‘대숙청‘ 의 명분이 되었다. 권력을 장악해 비밀정보조직을 강화한 스탈린은 국가 그 자체를 ‘혁명가 클럽의 폭력적 독재‘ 아래 종속시켰다. 소련과 중동부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결국 모두 사라져버렸다.
반면 베른 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받아들이고 정치적 개량주의를 선택했던 독일 사회민주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활하여 여러 차례 집권하면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베른슈타인이 말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는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역사 속에서 승리했다. 무엇이 베른슈타인으로 하여금 수정주의와 개량주의를 선택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정치가로서의 책임의식, 자신의 이론과 자기가 하는 정치활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성찰하게 한 균형감각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의에 대한 열정은 컸으나 책임의식과 균형감각을 견지하지 못했던 많은 혁명가와 정치가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의 축복을 받았다. 오로지 신념윤리 하나만으로 국가권력을 휘둘렀던 정치가들 중 일부는 ‘인류에 대한 범죄자‘로 역사에 남았다.(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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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대학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지, 왜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지, 어째서 개인주의 문화가 판을 치게 되었는지.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대표라도 된 기분으로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러는 선생님들은 왜 입시 지향적인 사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느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피치 못할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의 모순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 될 테니. 그 시간들을 거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판을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p161, <모래로 지은 집>)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p.196,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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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진 많은 문제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주장하는 성직자들이 심약한 영혼들을 통제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죽음에 초연해지면 교회의 권력은 힘을 잃게 되겠지.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은 몽매함을 부추기고 있는 거야.>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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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옛날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난 그들을 과거로 보내 버리고 싶어. 정말 좋은지 가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라고 말이야!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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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타당한 통찰이다. 그런데 일단 알게 된다는 것은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어서 알기 전과는 나의 의식이 비가역적으로 달라진다. 그러면 이야기도 달라진다. 그래서 ‘아는 만큼 안 보이기‘도 한다.
(p.30)

인간의 뇌가 세상을 이야기로 인식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특성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언어를 창조하고, 언어는 추상적인 의미마저 만들어 내고, 결국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종(種)이 된 것은 아닐까? (p.40)

유머란 어떤 일에 몰두하다가도, 여유를 갖고 주의를 넓게 둘러보며 균형을 잡는 힘이다. 한 발 물러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그렇게 넓혀 놓은 공간에 경직된 당위를 해제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들어서고, 근시안적으로 보면 엉뚱해 보일지 모를 해결책을 찾아내는 창의성도 들어선다. 여유는 세상과 더 잘 지내기 위해 개인들이 애써 확보해야 할 공간이다. 그 여유 공간 속에서 날 선 감정들은 희석된다. 그리고 그 안에 유머가 채워진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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