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대학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는지, 왜 요즘 대학생들은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지, 어째서 개인주의 문화가 판을 치게 되었는지.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대표라도 된 기분으로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러는 선생님들은 왜 입시 지향적인 사교육 현장에서 일하고 있느냐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피치 못할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자신들 삶의 모순을 또박또박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 될 테니. 그 시간들을 거치지 않은 인간으로서 그런 비판을 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테니까. (p161, <모래로 지은 집>)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p.196,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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