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운즈 - 분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텔아비브 젊은이들의 자화상
루트 모단 지음, 김정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휴머니스트에서 처음 나온(소인이 알기로는) 그래픽 노블. 분쟁 지역인 이스라엘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입니다. 전체적인 느낌이라면 이 나라에서 우리(남쪽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들이 북의 도발에 대해서 대부분 전쟁의 위기로 인지하지 않는 부분과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방송에서는 폭탄테러로 인해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사람들의 뉴스가 끊이지 않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매우 무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사는 공간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는 부분은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차별을 가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에 화를 내는 여주인공 덕분에 알게되었습니다. 죽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하하하하. -_-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정말 극화에 가까운 그림체에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지만, 배경과 색에 대한 묘사가 매우 인상적 이었습니다. 비슷한 느낌이라면... 올드독(정우열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색감이요. 그리고 선을 이용해서 구분하는 감각도.
읽으면서 분쟁에 대한 느낌(혹은 감각)에 더 접근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코비의 아버지 때문인거 같기도하고...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저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뭔가 불편한 감각도 있었고... 그건 아마 제가 반대편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지금의 사태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힘을 쓰는 그 나라 사람들의 젊은이들은 어떠한 생각들을 하고 그런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에 대해서 피해자 의식 같은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반성이 있으리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그럴 턱이 없을텐데 말이에요.
뭐 별로 교훈적인 것들을 바란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인지는 언급될 줄 알았지만, 그런 건 없었고 그냥 전쟁 가운데에서 무심하게 살아가다가 우연히 그 부분에 대해서 마주쳐도 무감각한 느낌이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엄청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입니다. 두번째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별로 손이 갈 것 같지는 않았어요. <페르세폴리스> 같은 반전(2권에서 유학가서 찌질한(?) 삶을 살며 인종차별을 실감했던 부분)을 기대 했지만, 그런것도 없었거든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 내돈 내놔라!! 솔직히 좀 많이 낚인 기분을 지울 수는 없네요. 배경으로 저를 위로하려고 해도... 이책은 인터넷 서점도 아니고 도매에서도 산게 아니라 그냥 정가서점에서 낚여서 산거라사요. 우후후후후ㅜ후후ㅜ후후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퍼니 퍼니 학원 앨리스 16
타치바나 히구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원작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더 버닝했던 작품. 이번에 기회가 생겨서 원작을 다시 볼 일이 생겨서 천천히 읽었다. 솔직한 평을 말하자면... 컷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보여서 잘 읽히지 않았지만,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뭔지는 계속 궁금해 했었는데 뒷 부분에 가면서 그걸 알게되어서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라기 보다는 죄책감이 줄었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심정이었다. 사실 이 만화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이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백천사 라인의 유명한 12지를 소재로한 모 작품이랑도 비슷한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뭐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스스로가 내린 결론.
'앨리스 학원'라는 이질적인 공간은 학생들을 '선택받은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지만, 사실 그들의 입장이 아닌 선택받지 않은 존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서 만든 공간이 그 학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을 정도로 어린아이들을 사회에서부터 철저하게 격리시키고 있었다. 위험분자는 격리시켜야 하는 건가.
부모를 만나기 힘든 환경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시스템일텐데. 그렇다면 결론은 앨리스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가 있는 부모를 제외한 대다수가 이 어이없는 시스템에 동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이 밖으로 나갔을때도 그건 분명히 눈앞에 펼쳐져있는 현실이었다.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격리되어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누가 결정했는가? 그들이 정말 소중한 존재라면 그들을 체제 유지를 위한 소모적인 존재로 취급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그들을 체제내에서 함께 공조할 수 있는 여러가지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국가로서 시민에게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 아닌가. 국가(사회)는 소수자의 입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앨리스 학원이라는 시스템(국가 혹은 사회)는 앨리스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을 위헙하는 요소들로 부터의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그들의 말로서 이용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최강(?)의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교장 개인을 위한... 초등부 교장이 뭔 권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보기에는 그냥 찌질한 어린이로 보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 유아적인 발상인 애정결핍 애쉑기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아이들에 대한 보상은 성인인 내가 봐도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고,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돌아가는 시스템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 느낌인데, 뭐 이게 현실과는 크게 간극이 없게 느껴저서... 푸하하하. 그냥 웃어봤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지배입장인, 군림하는)이 아이라는 것이 실소를 머금게 한다고 해야하나. 이건 풍자 코드인가 개그 코드인가? 그치만, 그네들의 만화에서 이런 설정은 매우 비일비재한 관계로 말이다. 별로 언급해야 할 가치도 못느끼겠다. 그들의 교육시스템은 사회시스템의 축소판이라서 사회에서 큰 일(?)을 하실 분들은 종종 교육시스템 안에서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기를 요구받으니까 말이다. 선거에서 각종 비열한 수가 판치는 것은 매우 비일비재한 일이고, 선거를 통해서 군림하는 존재가 되면 어른들에게 그 자신의 가치를 증명받는 공간. 학교라는 공간은 그런 공간으로 그려질 때가 참 많았다. 아 이런거 볼때마다 정말 짜증난다.
나는 일본에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게 어느정도의 과장이 있다고해도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이타자의 입장에서 그것에 대해서 극대화하는 환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실과는 간극이 있다고해도... 대다수의 매체에서 그런것들을 그려진다면, 그게 과연 현실과 간극이 있다는 걸까? 그건 현실이 아니라도 그들의 환상이나 이상 아니면 노골적이지 않은 은유적인 방법으로 그려지는 분명한 현실일테니 말이다.

반 앨리스 단체에서도 앨리스를 가진 그들을 시스템을 위해서 소비되는 말로 여겨지고 앨리스를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감정이나 입장은 단 한번도 고려되지 않고 있었다. 뭘 위한 이상인가? 앨리스 학교에 반대하는 단체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앨리스 학원의 비인간적인 가혹한 처사에 분노해서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닌가.
시스템은 결국 어디를 가던 똑같다는 말로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고등부의 교장과 그의 생각을 지지하는 선생과 학생부 임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과연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이상을 내세울 것인가. 그들은 사회와 적당히 타협할 것인가. 그들은 좀더 덜 완고하게 그들을 말로 사용할 것인가. 뭐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 불편한 점의 정점에 있는 것은 그들이 초등학생 이라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중학생만 되어도 이런 죄책감을 덜 들텐데 말이다. 얼마나 가혹한가. 아이들에게. 어짜피 시스템은 나이와 대상을 불문하고 침범하는이지만, 그래도 그 자신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싸우는(혹자는 투쟁하는) 그들이 어린 아이이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불행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뭐 가급적 그런건 보고 싶지 않은 관계로... 괴롭다.
작가는 그들이 어린이기 때문에 더 희망적이고 대안을 바라본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저런 공간에서 살아남아서 멀쩡한(?) 성인이 되는 건 아마 정말 자존감이 정말 강한 존재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이가 스스로 스스로의 구멍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다. 천연으로 반짝이는 아이더라도 그 공간에서 어느정도 살아가다보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게 되고 자신을 잃어버릴텐데.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답답해진다.
나츠메와 루카삐약은 천연의 보석을 만나서 과연 다행일까? 현실이 아니니까 그들이 모두 함께 나락에서 사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저들의 세계관의 현실을 보면 별로 그럴거 같지도 않은거 같아서 짜증난다. 묘하게가 아니라 정말 현실감이 있으니까. 어떤 부분은 극대로 확장한 영역도 있지만... -_- 그래서 끝까지 지켜봐줄 예정이다. -_-++ 그전에 애니메이션 다음시즌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야수사원 츠키시마 2
오와다 히데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오와다상의 작품이 나오면 무조건 대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주니어 챔프가 폐간전에 <경사청 24시>를 권두칼라까지 실어서 연재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당시에 알던 대원 기자분이 저처럼 오와다상을 좋아하셨거든요. 대원 내부에 꽤나 팬층이 있을듯? 잡지에 연재할라면... 팀장의 승인도 있어야 할터니. 그 팀은 다 팬?<- 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ㄱ-;;
야수사원은 쫌 미묘해요. 읽으면서 일본 아이돌 그룹 앨범중에서 한개정도는 있는 일본에 대한 로망(혹은 망상 정확히는 내셔널리즘)을 담은 노래와 비슷한 느낌이었거든요. 국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민족적 이데올로기와 그리고 기업주의를 내세우는데 그 코드가 편할리가 만무하죠. -_=; 이 점은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그래서 대원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야수사원->에서도 전작의 조연으로 생각되는 분들이 몇분 나오십니다. 모 그룹의 총재님이시나... 전무님은 <경사청->의 숨은 주인공(?)인 그분이랑 외모가 너무 비슷해서 좀 싱크로 하면서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2권에 있는 단편인 '핑크빛 짝사랑'이 취향이었어요. 못말리는 열혈이 제일인거죠. 근데 그러고보면 <폭갑>도 그런 코드는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개그도가 강해서 강하게 오지 않았을 뿐이죠. <야수사원~>은 정말 진지하게 말하거든요. 그래서 좀 불편했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불편한 부분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니까요. 쩝.
근데 뭐 다른 시선으로 보면 '강함'에 대한 환상이고 망상이라서 개그가 되는 것인데 저걸 웃지 못하는 나도 참 많이 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 꽁함이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그걸 분리해서 보지 못하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 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에게 닿기를 8
시이나 카루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묘한 괴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중의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나 만화 모두 보고있습니다.^^;; 미묘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주인공 사와코의 가정환경과 사회생활에서의 모습의 괴리를 느끼고 있어서 이에요.
쿠루누마 사와코는 매우 좋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 아이이지만, 사회(학교)에서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외모(물질적인 조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여 피하는(혐오하는, 도외시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그녀와 오랜 시간을 보낸 급우는 그녀의 그런 장점(본질적인 부분, 근원적인 인간의 모습, 내면적인 모습)을 알고 있지만, 1권의 시작이 학기초를 조금 지난 시점인데도 그녀는 여전히 도외시 당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문. 그녀의 문제는 무엇일까? 8권까지 읽으면서 아주 크게 관통했던 부분은 사와코는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 그래서 일반적인(지당한) 연상으로 그녀의 가족에서 원인을 찾아으나 매우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단란'의 그자체의 모습. 그야말로 '단란함의 상징'. -_-

 "저렇게 사랑받고 존재를 인정받는 공간에서 자란 아이가 사회에서는 그 자신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지 못하고 부정당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점이 작품을 보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틀을 맞추어서 추측하자면, 그녀가 그런 공간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건 그런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던가 아니면 먼가 그 안에서도 균열이 있어서 문제가 있었다던...가 정도로 생각해봤습니다. 아 역시 뭔가 이상합니다. 그 외에는 가족이 중요하지만 타인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의 거부보다는 강도는 낮지만 타인으로부터 거부나 부정은 매우 큰 정신적인 타격이 있다는 것 정도로 생각해봤습니다.

외모를 가지고 폄하하며 피하는 급우들과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공포 영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리고 그 외모도 연결선상에 있게 그려지는 개그 코드. 게다가 본인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서 맞춰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저의 기준에는요. 외모 개그는 불편해요. 그치만 <엔젤전설>쪽은 별로 불편한 점이 없이 봤었습니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그런 그녀가 그런 것들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자존) 살아가고 있다는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아 역시 미묘하게 거슬립니다. 그걸 자존이라고 말해야할지... 정말 어려워서요. 저의 기준에서는 그런 가정환경(단란함의 상징 그자체)에서 자란 아이는 매우 자존감이 높고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대해서도 그 사회의 기준보다 자유롭고 그리고 그런것들에 크게 데미지를 입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이미지입니다. 뭐 그렇게 살아본적이 없는 관계로 망상이라면 망상이겠지만요. 전문서적들이나 참고서적들을 읽은 책을 토대로 구상한거라서 현실과 크게 괴리가 있을것 같지는 않습니다.
<엔젤전설>의 그는 타인의 시선에서 거의 자유롭고 자신답게 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모든 오해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는 에피소드 였구요. 그렇지만 사와코양은 그들의 앞(타인)에서 항상 긴장된 모습, 긴장된 웃음, 긴장된 표정을 보통으로 보여줍니다. 우연히 그 긴장된 모습말고 진짜(?) 그녀의 미소를 보고 반한 카제하야군. 그리고 그런 그의 작은(?) 응원과 도움에 크게 힘을 내서 해명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해명은 드디어 동성의 두사람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됩니다.
역시 이건 해명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되어야 하는 부분인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메인 설정에는 그녀의 외모에 대한 오해와 그리고 발이 없는 소문들이 큰 설정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빼고 <너에게 닿기를>이 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만, 다만 다른식으로의 진행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나 싶습니다. 좀 많이 억지스러워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카제하야군은 자신의 덕분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의 덕분이라고 하지만... 끄응.
 
상큼함의 상징인 카제하야군은 사실 그렇게 상큼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실은 매우 자기 중심적인 부분이 꽤나 있고(뭐 인간은 다 그렇지만), 그 부분이 연애 노선이라는 것이;;; -_=; 이 총각도 그런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 자존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 이 아이의 과거의 모습이나 가족의 모습이 나오지를 않아서 어디까지나 추측은 추측으로. 뭐 그런식으로 말해야지 스토리가 진행되는 문제도 있겠지요. 단번에 러브 라인이면 연애만화가 되니까요. 즐거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는 결국 작가의 스토리 전개의 방식이 아닐가 싶습니다.
머 어찌되었던 "진정으로 상큼한 연애는 직설화법!"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카제하야군이 꽤나 거슬립니다. 그래서 그의 태도는 그녀의 앞길에 장애의 요소로만 느껴집니다. ㄱ-+ 자기가 빠져나갈 부분을 만들고 던지는 낚시질 대화는 매우 반사하고 싶어지죠. 알고 있어도. 혹은 아에 거절을.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면 의사 표시를 좀더 명확히 하던가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해주도록 노력하던가... 애는 애인가. 그 상큼함은 어디다가 써먹을텐가! 버럭!
연애를 바라보는 삼자의 입장으로서 그는 개찌질이 애쉑기. 네 죄송합니다. -_=;;; 팬분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저의 기준에서 그런건 그냥 짜증스러움이거든요. 기도 아니고 저도 아니고 양쪽에 발을 담그고 곤란한 상황에서는 상큼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은 메인 커플보다는 조연인 그녀의 이야기가 더 좋았습니다. 캐릭터도 성격도...  전 요시다가 좋아요. 그리고 요시다를 지켜보는 그이도요. ㅠ_ㅠ흑흑. 매우 아름다운 커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청춘의 연애는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주류의 세상(?)에서는 별로 먹히지 않나봐요. 그러는 의미에서 <러브컴플렉스>는 저의 전당에 올라간 작품중에 하나에요. 열혈인 주인공에다가 직설화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자아이라니. 아잇 >_> 사랑스러워서 물어주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전3시의 무법지대 2
요코 네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어어어...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되어서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ㅂㄹ은 곤란해요. 매우 꺼려하는 소재입니다. 저는 아마도 그 부분에 대해서 환상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관계가 절연되지 않았는데도 다른 관계를 이어서 자신만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요. 그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렇게 말하죠. 연애시절에는 '갈아탄다'라는 느낌.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린다는 느낌으로 말하거나 그런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취사선택하는 존재여선 아니라는 느낌이 강해요. 인간으로서 함께사는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린다는 느낌은... 역시 저로서는 금기어입니다.
2권에서는 회사의 암울한 분위기보다는 연애라인으로 달려가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연애라인보다는 회사의 삽질(?)이야기가 즐거웠던 관계로... 좀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보다는 뺀티만 입고 돌아다니시는 상사님과!!! 그편이 더 즐거워요. 넘 사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죽.
그나저나 2권의 표지도 참 이뻐서 좋았습니다. 작가의 색 센스가 좋으신거 같아요. 역시 디자이너 출신이라서? 색 센스가 좋은 분들은 부러워요. *_*; 그러면서 본인은 별로 노력을 하지 않지만, 여튼 부러운건 부러운거니까 마음껏 부러워 할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