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구를 지켜줘 7 - 애장판
히와타리 사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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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좋아하는 N포털의 만화 카페에 <나의 지구를 지켜줘> DVD 나눔글을 올리면서 인지하게 된 부분이 있었어요. 그건 다수의 사람들이 탱알과 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오직 현재 행동만을 기준으로만 그 사람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인간 군상의 이해하려면, 과거를 토대로 지금에 이어지는 삶의 궤적의 전반을 통하여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니까 당연히 다른분들도 그 두사람이 그런 성격으로 살아가게 된 이해가 어느정도 있을거라고 기대했었어요. 그래서 좀 적잔히 놀랐습니다. 


 <터치> 연재에서 처음 접했던 이 작품은 십대 시절에 큰 영향을 받았던 작품이었는데, 정확히는 주인공 링의 전생이었던 탱알에 대하여 심정적인 공감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거 같아요. 이 작품이 전생붐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에게는 그 설정보다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설정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거 같아요. 

링이라는 아이가 자신이 가진 능력을 기반으로 어른에게 가하는 위협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적 이었거든요. 밤에 아파트 배란다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그림자가 아파트 벽면에 움직이는 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근데 뭐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캐릭터가 가진 힘으로 인하여 자기보다 나이가 있는 존재-권력을 가지고 있는-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 통쾌함을 느꼈던것 같아요. 이중적인 다른 이들의 모습에 조소를 던지는 그 꼬꼬마의 시니컬함을 좋아했었어요. 


그 시절에는 옳고-그름의 이분법적인 가치관의 기준으로 하여 모든것을 환원하던-주관적인 느낌으로- 탱알과 반대 포지션이었던 옥란에 대해서 굉장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가치관은 어떤 것이던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환원하는것은 매우 폭력적인 행동이며, 개개인의 행동을 고려할때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은 그 가이드 라인에서 벗어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일원적인 태도로 환원-사실 매도라고 말하고 싶지만-하는 그런 폭력적인 판단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어요.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해보면 알겠지만, 상대방이 제시하는 프레임 안에서는 어떤식으로든 건설적인 대화가 이어지는게 불가능한데요. 뭐 아마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 사람의 프레임으로 가지고 대화를 나운다면 누구나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장-프레임-으로 이야기의 주제로 대화하는게 아닌 이상은요. 

당시에 저는 그런 이해는 없었고 저의 논리가 명확하고 증거가 구비된다면 상대의 논리에 말리지 않고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장을 펼치고 그리고 그런 저의 의견이 상대방의 의견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않되는 환상-기대-가 있었습니다. 뭐 현실적으로 그렇게 흘러갔던 경험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건 제가 그 시기를 건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주 필요했던 환상이었어요.

 어떤 이가 보통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면, 그 사람을 그렇게 선택하게 했던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해야하는데 왜 이런 중요한 것들은 무시되는 것인가에 대한 분노감이 있었던거 같아요. 

사회적 상황, 그 사람의 가치관, 성장 배경과 경험, 그리고 환경속에서 어떤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런 경험들을 어떤식으로 조합해서 인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런것들을 다각도로 고려하는것이 지극히 상식선 상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었어요.


어찌하여 모든것을 이분법적 논리로 환원하려고 하는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던 저는 탱알(시온)의 가치관에 대해서 오로지 자신의 경험한 세계에서만 승인받는 그 가치관으로 이분적인 태도로 옳고 그름 안에서 그의 경험과 그로 인한 가치관을 부정하는 옥란의 태도를 견딜수 없었어요. 

뭐 그건 지금도 여전히 그런 편이에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별로 존중하고 싶지도 않구요. 물론 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된 강력한 히스토리가 있다면 이해가 달라지겠지만요. 지금의 저는 저에게 그렇게 강요하는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말할거 같아요. "당신은 근본적인 사람이라고. 당신에게 최대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치스럽다고"말이에요. -_-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걸 강요하기 까지 하는-늘 그랬던건 아닌것 같지만-굉장한 혐오감까지 느꼈던것 같아요. 그건 이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던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기도 했던것 같아요. 그런 배경은 일정은 옥란에 대하여 작가님이 충분하게 시간을 들여서 설명하지 못했던-역시 주관적인 평이에요- 영향도 있었던거 같아요.

지금의 저는 옥란이라는 캐릭터에 대하여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군상-캐릭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저라는 사람은  그와 비슷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리고 어떤것들에 위협을 느기는지에 대해서 추측하여 머리로는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정적으로까지 공감이 되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이슈에 대하여 사람의 느끼던 그 치열함 안에서 느끼고 그래서 감정적인 공감대까지 형성되는 것은 지금의 저에게는 무리인거 같아요. -_-;;; 정서적 통찰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죠. 인지적 통찰만하는 지금도 뭐 크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뭐 여튼간 넘어가서 탱알과 링에 대해서 다른분들이 서술하는 단어는 단어 하나를 두고 보자면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텍스트인데 거기에 그런데도 매력적이라는 말이 함께 붙여서 서술되고 있었어요.

Q1_ 그분들의 리플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들었던 의문은 이 두사람을 과연 타고나기를 그런 성향-폭력적이다-으로  서술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 

Q2_ 특정 환경에서 자라면서 이미 그런 언행이 학습되어 연합이 되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면 그것을 온전히 그사람의 성격이라고 명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
사실 그 두사람은 진단기준에 의거하면 정신질병 편람에 들어가는 질병의 환자라고 명명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외상에 의해서 나타나는 언행을 과연 그걸 성격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탱알은 PTSD에 시달렸었고 그 이후에는 약화된 형태로 유지되면서 그리고 그가 어린시절에 경험했던 대상관의 관계가 그의 내적작동기제로 인하여 계속 반복되었으나 목련과의 만남으로 다행스럽게 그의 애착유형은 불안정 애착에서 안정애착으로 바뀐것 같아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말년에 모성이 궤멸되었고 그리고 함께 생존했던 직장동료들과 그리고 그의 애착상대인 목련이 당시에 돌던 질병에 발병하여 사망함으로서, 달기지에서 9년동안 혼자 살아가는 동안에 망상장애에서 조현병으로 이어졌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링의 경우에는 각성되는 그 순간부터 외상으로 인한 급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기와 타자-과거의 자신-에 대한 경계도 와해되는 형국이었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구요. 그의 대상관계도 각성이 강하게 일어났던 시기엔 탱알이 가지고 있던 내적작동기제가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쳐서 그의 부모와의 애착 관계에서도 변형이 일어났던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유아 연구에 관해서 접했던 텍스트들은 민감한 유아와 민감하지 않은 유아로 나누어서 연구하는 방향이었지, 그 아기가 폭력적인지 여부를 연구하는 건 제가 읽어본 책들에서는 없었어요.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영유가가 아니라 자라면서 반항장애-품행장애-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스펙트럼을 그리면서 나아간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타고나기에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아이가 아니었다는 말인거 같아요. 그냥 보통 아이들보다 좀더 영리하고 민감한 아이어서 그 전쟁터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 뿐이죠. 뭐 거기에는 초능력도 들어가네요. ^^;

이 두사람이 어린시절에 대한 작품에서 묘사된 부분은 탱알의 경우 최초 기억은 내전이 이루어지던 모 별에서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를 초능력을 사용해서 죽었던 기억과 전쟁의 소음 그리고 사람들의 고통의 찬 비명들 이었던걸로 기억합ㄴ니다. 그는 소년병이라고 정의되는 아이들보다 더 어린 나이로 그려지고 있었구요. 화풍상에서 묘사된 탱알은 뭐 아무리 많아봐야 4-5살 정도. 그런 그 아이는 성인들에 의해서 거기서 나올 수 있었고-사실 이 아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를 쉽게 데리고 나왔을거 같지는 않아요. 왜나면 그는 타인(특히 성인)을 신뢰가 없었으니까요- 그리하여 그는 고아들을 위한 기관에서 보호를 받게 됨으로서 보통의 사회 시스템에 진입하게 되었어요. 


그 시절-아동보호소-의 그는 '폭력적인 성향'이 지나친 아이로 묘사되고 있었고 모두 그를 어려워 했지만, 유일하게 그를 따뜻하게 대하던 나이든 수녀님이 한분이 있으셨어요. 그는 정말 '폭력적인' 아이로 기술될만 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그건 정말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강하게요!!

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의 생존을 위해서는 과거에는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걸요. 하물며 이 아이는 사회적 시스템 아래에서 성인에게 보호받고 다른사람과 연대하며 살아간 경험이 없었는 걸요. 그러니까 그렇게 반응하는건 지극히 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뭐 비유를 하자면, 극단적이지만 밀림에서 구조한 늑대소녀 자매 이야기를 떠올리면 될거 같아요. 

보통의 다수의 어린이는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아서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안전하고 세상은 비교적 살만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부모와 주변인들-이 나를 원하고 그리고 내가 힘들어 할때 나를 돌볼것이라는 경험이 있어야 하지만, 그는 그런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었어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어른은 아이인 자신과 생존을 위해서 경쟁을 하는 존재이며 그리고 언제 어디서 나를 누군가가 사살하거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경험은 그의 뇌와 그리고 몸에 각인되어 있어요. 학습은 뉴런 단위에서 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서 알려졌고 이런 연구를 생각한다면, 그가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야 하는지는 그 누군가도 모르는 일지도 몰라요. 성인시절에 한 경험이 아니라 유아시절부터 경험했던 환경이기에 평생 노력을 해도 그런 내적작동기제는 재학습되는 것이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굉장히 회의적이라서... 그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타인의 이미지를 평생 반복 재상연 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니라 중요한 타인을 만나고 그리고 그 사람과 안정 애착을 이루고 자녀를 키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요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PTSD'라는 진단명에 대해서 어느정도 어렴풋하게 이해가 있을텐데 왜 그 아이가 외상에 시달려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정상이라고 말하는 범주의 경험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좋을텐데 말이에요.

Q3_ 모든 영유아가 자라면서 반드시 필요한 애착대상이 그 아이에게는 과연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추측해보자면, 어쩌면 부모가 누군가에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을지도 몰라요.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버림받았을지도 모르구요 전쟁에 대한 외상, 타인-성인-에 대한 공포적 이미지, 그리고 자신이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었다는 사실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어린아이가 했던 노력들을 생각해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자신만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도 있을지도 모르고...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더더욱 그런 가치관을 유지하고 있었던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그런 가치괸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난하고 부정했던 존재가 옥란. 물론 그의 입장에서 그의 경험을 기반으로는 그런것들이 존재할수 없는 영역이지만 말이에요. 전 옥란보다 탱알이 더 취약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대방의 태도가 그에게 얼마나 위협적 이었을지 상상만 해도 충분히 괴로워지고 말아요. 


무엇보다 그토록 과학기술이 발전했다는 그 문명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멘탈을 캐어하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가 공부를 게을리 한게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고발을 위해서 그렇게 그린건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근데 이분 자체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인 편이에요. 그럴리가 없거든요. 적어도 어느정도 공부를 했다면, 링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먹으면서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테니까요. 


어찌되었던 그런 외상이 있던 그는 그런 그의 대상 관계를 자신의 선택과 그리고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계속 경험하게 되고, 아마도 최초의 애착 대상일지도 모르는 그의 경험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감싸주던 그 분-아저씨-의 실제적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이성관계에서의 상실. 아마 이 친구의 애착형태는 불안-저항애착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런 역동은 목련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졌고... 뭐 다행히도 이 아가씨가 그를 그런 패턴에서 돌도록 따라가는게 아니라 그의 것을 담아내서 소화할 수 있는 상태로 돌려주는 사람이었기에 반복되던 그의 애착패턴은 목련과 관계하면서 안정애착으로 변화해 나가게 되었던것 같아요.

전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을 좋아하면서도 나에게는 없는 좋은것을 가지고 있는-좋은 가슴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은 충동은 행동화로 이루어졌고, 여기서 좋아하는 대상을 상실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상을 위해하려고 하여도 대상은 언제나 나에게 한결같은 애정과 지지를 보낸다는 경험. 그건 엄마-유아의 모자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애착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큰 경험인데, 그런것이 없던 그에게 (중요한) 타인 이미지를 재구성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거에요. 기적같은 일이죠. 

그런 그의 마음속에서 좋아하는 마음도 있음을 그녀가 읽었는지는 모르나 위해고 싶다는 마음과 그 행동을 마치 엄마가 아이를 돌보면서 하는 중요한 행동인 '담아내기'를 행함으로써 그는 전적으로 나쁜 자신에 대해서 전적으로 나쁜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해석과 그리고 보듬어주는 환경을 만났습니다. ㅠ ~ ㅠ 흑흑흑 


여기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면, 참 좋았을텐데요. 뭐 작가가 그 이후에 그려내는 세상은 그에게 참으로 가혹했어요. 그 폐쇄된 공간에서 그녀를 먼저 보내고 9년동안 혼자 살아야 했으니까요. 말년의 그는 환청과 환시에 괴로워 하고 있었고, 어떤 전문적인 처방도 없었고 그리고 그가 환청 환시를 경험하는지 확인 해줄 타인도 없었고 뭐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이윽고 조현병이 발병했던것 같아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링의 각성. 초등학생이었던 링에게 내가 지금을 살고 있는지 그때를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고 그리고 모성마져 전쟁으로 소멸해버린 그도 당연하게 좀더 안전한 장치가 필요했던게 아니었을까요? 달의 기지를 파괴하여 과거이자 전생인 자기와 어느정도 경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링과 전쟁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모든것을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하는 탱알. 그는 자기가 환생한 지구라는 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을 지켜보면서 어떤 두려움을 가졌을지 ...

내가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게도 하게 된 링은 지금의 삶에서 너무나도 소중한 부모에게 받는 애정과 지지가 철수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나중에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긴 했지만, 애착대상으로부터 애착과 신뢰가 철수할 수 있다는 경험은 그의 전생의 삶의 패턴의 연속성상에서 이어지며 확인받는 경험에 가까웠을거 같아요. 그를 입양했던 아저씨를 연상시킬지도 모르죠. 무의식속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인 그녀는 과거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며, 자신이 과거가 아닌 지금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매우 절박하게. 눈을 감으면 지금이 아니라 그때의 경험을 그때처럼 느끼고 있었으니까 말이에요. 게다가 링은 건물에 떨어져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있는 동안에만 진정제를 투여받았지만 이후에는 ... 작품 어디에서도 그가 투약을 했다는 언급은 없었어요. 


전생의 그 두사람의 영혼이 대기권에 들어오면 앨리스에게 사체스가 생긴다고 블라블라 했지만, 엔딩에서도 링은 여젼히 가끔 그런 꿈을 꾸고 있었고 그때마다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로 이 이야기는 그렇게 대장정을 마무리 하는 구조 이었어요. 이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저의 지나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이 아이가 그래도 좀더 과거가 아닌 지금에 집중해서 온전히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 투약과 상담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했던 경험은 자신이 혼자서 온전히 처리하고 소화하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경험이기 때문에 ...  배우자와 안정 애착을 이룩하여서 양육에 있어서 애착관계가 대를 물려서 내려오는 것을 근절했다고 하여도, 경험으로 인하여 형성된 불안은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한다 하여도 그와 그의 기족에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위협적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뭐 아무리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그린다고 하여도 우리는 여기 현실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리고 텍스트를 통하여 지식과 간접 경험을 쌓아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서 주인공의 삶의 일상의 하나로 평범하게 그려진다면 어쩌면 이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중에서 외상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을때 좀더 빨리 그리고 쉽고 익숙하게 병원에 간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아쉬운 작품이에요. 이 만화도 그렇고 <모래시계>도 그렇구요.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온전히 알 수 있다는 건 그건 환상에 가까운 일이고 살아가면서 평생 그런 경험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삶의 궤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히 조금은 다르고 그런것들이 쌓여서 같으면서 다른 사람이기도 한 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구요. 뭐 그런 연속선상에서 뭐 과거에는 답답했던 것들이 지금에는 보이는 경험도 하지만, 대부분 아마 자기가 경험한 범위 내의 것들에 대한 이해는 있어도 접해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이해는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말이에요. ... 뭔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타인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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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을 할거야 ㅣ 삼양출판사 SC컬렉션
Natsuko Kusuda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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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전부터 궁금해 하던 작품이라.. 사실 리뷰를 찾아보고 별로 권하는 편이 아닌거 같아서 매번 보류하다가 결국은 구매하게 되었네요. 사실 삼양출판사의 책소개 부분에서 '대머리'라는 부분이 저의 ... 네 저는 주인공이 탈모로 고민하는 귀여운-주관적인 의미로-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를 좋아하는거 같습니다. 

타카쿠라 아츠코 선생의 <빛나라 사쿠라이>를 참 좋아라 했었거든요. 십대시절부터 탈모로 고민하던 사쿠라이군. 대머리를 고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동경대를 향하여 입시를 준비했지만, 입시 전날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설사로 탈진하여 결국 그 학교 입시는 보지도 못한 두부 멘탈(응?) 소유자로 그에게는 그의 콤플렉스를 은근히 자극하는 무심한 그녀와 종국(응?)에는 결혼을 하여 함께 사는 내용의 만화로 대머리가 아닌 삶을 살기위해서 고군분투 하던 1부를 절찬히 연재후 대머리가 되어서 그 삶을 영유하는 중년의 사쿠라이 가족의 이야기가 2부로 나왔습니다.

전작에 대한 애정도를 생각하면 사실 저는 2부도 전권을 할할할하며 봐야하는데요. 그냥 머리쪽에 완전히 미련을 버린 그는 저에게 더이상 매력적이며 귀여운 그리고 가여운 캐릭터가 아니더라구요. ㅎㅎㅎㅎ (-_-);; 나도 참... 허허허. 뭐 암튼 1부를 할할할 하던 저는 그 1부와 2부 앞권을 당시 지인이었던 J모씨에게 넘기고 조용히 대머리남 만화의 세계에서 졸업했었습니다. 적고보니 취향이 정말 노골적으로 보이네요. 허허허허.

전 아마도 가질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데 그래도 치열하게 그걸을 위하여 매진하면서 좌절하고 또 좌절하는 그를 좋아했던거 같아요. 자신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그는 제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접었던것 같구요. 뭐 극중에서 주인공의 그런 절박함으로 인하여 벌어지는 개그적 상황도 좋아했지만요.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이 만화는 저의 취향은 아니었어요. 불가능한 걸 염원하는 주인공이 아니었거든요. 현상유지하면서 자신을 포장하고 싶어하는 주인공 이었으니까요. 대머리라고 하던 주인공은 사실 대머리는 아니고 이야기 안에서의 설명에 의하면 탈모가 진행중이라는데 그냥 이마가 원래 넓은 사람인거 같았어요. 

사실 대머리라면 그 나이에 이미 상당히...  그림체에서 그가 가련한 머리숱을 가진 사람은 절대 아니더라구요. 게다가 디테일함도 없어요!! 탈모로 괴로워 하고 있으면요. 모름지기 아침에 일어나서 빠진 머리털의 개수를 세서 통계를 내야죠!! (어 물론 이 총각은 사쿠라이군이 아니지만요. ㅎㅎㅎ) 그냥 육모제를 바르는 수준으로는 이 사람의 탈모가 심하다고 말하기는 상당히 애매했어요. 


그리고 루저남이라고 하는데... 직장에서도 업무적인 부분은 훌륭했었고, 그냥 본인이 느끼기에 이전의 연애에서 자신의 콤플렉스를 여친이 무성의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게 더 강화된 느낌 정도이었어요. 직장도 안정적인 공무원이고 얼굴도 그정도면 쾌남이었구요. -_- 쳇. 

그거 그렇게 설명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붙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타인을 무시하는 부분이... 티는 내는걸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뭐 대부분 직장생활 어느정도 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있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그런건 알아차리니까요. 본인만 인식하지 못할뿐. 결국엔 다 알게되니까요. 언어적으로 숨겨도 비언어적인 단서는 뭐 감출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콤플렉스가 있는 그는 짝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백도 못해보고 끝내게 되었어요. 자신이 망상을 하면서 격식을 차린 접근을 하는 사이에 그녀는 직장내 신입사원과 연애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의 또다른 주변인물로는 같은 부서 신입사원인 리사씨. 그녀는 키가 크며 동성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일도 잘하구요. 신입사원인 주제에 그만큼 업무를 잘 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그가 좋아하는 그녀의 사촌이었구요. 나중에야 다이스케 군이 알게되지만 그녀는 원래는 굉장한 미인인데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겪게되는 불편함으로 스스로 부시시한 머리스타일과 안경을 끼고 생활하고 있던 것 이었어요. 

그는 리사씨에게 콤플렉스 1-대머리라는 것. 사실은 이마가 넓다는 것-을 우연히 들키게 되고 그리고 그녀에게 또다시 콤플렉스 1과 2-깔창을 깔고 생활한다는 것-를 동시에 들키게 됩니다. ㅠㅠ 넘어졌는데 깔창이 분리가 되었거든요. 흑흑흑. 감기에 고생하면서 출근해서 그럴까 업무적 실수를 한데가 거기까지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들킨 그는 아무것도 없어진 느낌에 사로잡혀서 회사를 몇일동안 쉬게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리사는 도시락을 배달해다 줍니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 알기 힘든 두사람이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아름다운 외모로 인하여 받는 괴로움들로 사람들은 그사람의 외모만을 본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용기를 내서 자신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를 격려하는 말을 건내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만 상처를 받았던 그 연애 관계에서 사실 상대방도 어떤 부분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서 동창회에서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지난 힘들었던 그런 부분을 오픈하고 털어내게 됩니다. 

이 만화는 여기서 마무리 되지만, 그의 연애는 순탄하기 힘들것 같은 예감. 리사씨를 좋아하는거 같거든요. 근데 이 아가씨 쫌 많이 둔한거 같아요. 게다가 그녀보다 키도 작고!! 업무적으로 그녀에게 도 밀리는거 같은-신입사원인데!!- 그!!!  힘내라 다이스케 군!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래서 좀 아쉽네요. 단권으로 끝나서요. 


절대적으로 그러한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고... 그리고 상대방이 되어보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사람의 괴로운 점을 모른다는 것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것 같아요. 아무리 모든것을 다 갖추고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도 내가 모르는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라는 다이스케군의 말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에겐 늘 그말이 필요한것 같아요. 그때 그순간에는 자신의 선택이 정말 최선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자신이 잊어버리니까요. 

그게 최선이 아니라는 것은 그때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 인지하는 부분인데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라는 가정문을 형식을 취하는 반추는 사실 내가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독려하는 말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정말은 그건 그냥 자신의 행동에 대한 비난일 뿐이죠.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는 과거의 자신에 대하여 지금의 자신이 던지는 ... 중요한건 그건 과거의 내가 과거의 내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던지는 말이라는 거에요. 그건 지금이니까 보이는거죠. -_- 그차나요!!!  과거에 그게 보였다면 진작에 그러했을거에요! 자신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런 생각이 단기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니까 오래 오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정말 가혹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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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이야기
야마카와 아이지 지음, 카와하라 카즈네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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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오뚝이>를 읽고 그림과 이야기 모두에 반했어요. 실로 오랜만 이었습니다. 작화, 이야기, 연출 모두에 반한 작가는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흑백 원고에서는 느껴지는 섬세하고 매력적인 필력이 칼라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  2014년에 만난 최고의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그림체와 잔잔하게 그려지지만 결코 잔잔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도 취향을 직격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야마카와 아이지 선생이 그리고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작업한 <내 친구 이야기>는 이런 이유-스토리가 야마카와 선생이 아닌점-로 살까 말까 좀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비교적(응?)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던것 같아요. 생각할 꺼리가 많아졌다는 기준으로 치면, 좀 미묘해요. 독자인 저는 그 엔딩에 상당히 불만이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에 나루가미가 개입하는 구조가요. 정확히는 그 관계에서 전달하는 '가치적'문제가 그러했어요. 그냥 남여관계의 연애가 아니라 그 구조의 아래에서는 다른것들을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거든요. 가볍게가 아니라 무겁게요. 

모에와 에이코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참 좋았고, 그리고 그걸 풀어 나가는 방식도 상당히 좋았던것 같은데... 먼가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내내 턱턱~하고 걸렸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고... 트위터에서 1차로 풀고 나서도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뭐랄까 최근 인기작인 이 양반이 스토리를 작업한 다른 작품 <내 이야기!!>도 뭔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걸 느끼고 전권을 치웠을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그토록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임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설사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제공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인지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는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두사람은 자신들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는 완벽한 관계에 가까웠어요. 아니 완벽한 관계에요.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부족하게 느끼는 점이 없었으니까요. 그 관계로 충만되고 행복하고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그렇지만, 모에는 자신은 에이코와 결혼을 할 수도 그리고 에이코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출산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어요. 에이코에게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지 물어  봤을때 에이코의 대답은 "그치만 난 충분한걸! 충분히 해복해! 이만큼 친한 친구를 사귀는 건 남친 만들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모에의 대답은 "충분히 행복하다니 왠지 좋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독백은 " 에이코, 난 네가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었으면 좋겠고 널 기쁘게 해주고 싶어. 슬픈 표정 짓게 하거나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남친 만큼은 줄 수 없어. 남친과 함께 있는 해복이나 결혼, 출산 같은 그런 행복은 아무리 해도 난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모에.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그녀 에이코의 결혼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볼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고난과 기쁨을 늘 함께 할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양성의 결합안에서 관계에 대한 축복으로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해야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해야 겠지만, 결혼과 출산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나고 매우 다양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제가 좀 이상한건가 하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왜 자신과의 관계에서 충족되는 것들보다 그것들을 더 고귀하고 가치있게 느끼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습니다. 적어도 에이코는 지금 이순간 거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행복해 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모에는 무엇을 보고 자라서 저렇게 느끼고 있는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에이코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 관계에서 에이코와 달리 모에는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 같은 남자를 -정확히는 에이코와의 관계에서가 답에 가까운거 같지만- 만나서 그녀와 닮은 얼굴의 아이를 출산하고 함께 키우고 싶은 욕구가 그녀에게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외모에 호감이 있어서 고백한다고 해서 사귀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누가 규정한 것일까요? 내 소중한 시간을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투자하여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의미있는 일일까요?

연애를 하지 않는 인간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요? 

연애를 해야만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일까요?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관계는 남여관계 한정으로 아름답게 미화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보통 남성간의 특별한 우정 관계에서도 저런식으로 생각하며 괴로워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거 같아요. 내가 남자라서 너에게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고 슬퍼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자신이 여성인데 성별을 잘못 타고나서 괴로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저는 접해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매체에서도. ... 으으음.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담당한 다른 이야기 <내 이야기!!>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연애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을 자신의 친구도 느끼길 희망하고 그리고 그에게 연애의 즐거움을 불러 일으켜 주려고 애쓰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기준치도 다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만족치도 개개인의 가치에 따라서 달라질 텐데 그런것들은 고려함은 전혀 없이 맹목적으로 '사랑'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상대방을 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지지 못했어요. 그 안에서 어떤 폭력적으로 강요한다고 느껴졌던것 같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이 작품을 접게된 이유는 커플의 관계에서 그 관계의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제삼의 존재인 이성이 출연하여서 자신의 애인이 자신보다 다른 존재를 소중히 여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자극하는 구조로 나아가서 그랬던것 같아요. 이런 골조의 전개를 굉장히 꺼려하는 편이거든요. 제삼의 존재는 사실 핑계이고 원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그정도 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전작인 <고교데뷔>의 경우에는 단행본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런 구조의 전개가 남자쪽으로 1건, 여자쪽으로 1건이 있었었어요. <내 이야기!!>에서는 4권인가 부터 그런 전개가 시작되는 느낌이 퍽퍽퍽!! 와서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던것 같아요. 제가 견디기 힘든 부분은 이런 부분인가 봅니다. 삼자관계의 갈등. 자신들의 문제를 제삼자를 끼워서 해결할려고 하는... (???) 근데 이 작가 양반이 이런것들을 전개하는 방식이 아주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점이 더 건드려 지는 것 같아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이코의 매력을 알아주는 것이 반드시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모에가 알고 있고 그걸 에이코도 알고 있는데 뭐가 그토록 부족한 것일까 하는 그런...  

에이코가 사랑스러운 존재인건 누구보다 모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걸요. 그리고 그걸 감사하고 있었어요.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서로간에 바라봐주는 관계를 살면서 얼마나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 두사람은 '운명'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관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관계라고 느껴졌거든요. 그건 정말 축복이자나요. 살면서 그런 사람을 얼마나 만날 수 있겠어요. 남여 관계에서 주는 만족이 자신이 그녀에게 주고 있는 행복감 정도로 밀도가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에요. 

모에의 시각안에서는 아주 오래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여성 바하적 시각이 느껴졌어요. 여성간의 우정 관계에 대한 비하 말이에요. 모에 스스로가 보고 자란 것들을 기반으로 가지게 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만화가 그려지는 세계의-일본의 그리고 우리의- 베이스적 가치관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인거 같아요. 

결혼과, 출산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가치, 그리고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관계-자신에게 가장 소중한-에서 자신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녀의 독백은 깊은 좌절감이 느껴졌거든요. 자신이 주고 싶은데 줄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 

그것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것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는 차원의 영역같아요. 그걸 평가 할 수 있는 개개인 본인 한정이겠죠.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데...


가장 의아하게 느껴진 부분은 이야기 전개상으로도 모에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그녀는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고백해오면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지금와 관계를 똑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이면 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계속해서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중요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상대방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에이코와 모에는 둘이서 만나는것 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한데, 모에는 '거절'이라는 선택치는 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모에는 이성관계에서 선택권한을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신에게는 결정 권한이 없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마음을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게다가 상대방은 그녀가 자신들이 생각한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많았어요. 누가 비난받아야 할지는 명백한데도 ... 이런 지점들이 읽으면서 저의 신경을 건드리고 또 건드리고 또 건드리더군요. 끊임없이. 

'상대가 자신을 수용하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관계는 단절되는 구조'는 뭔가 이상해요. 나를 좋아하는 건 상대방이고 나는 아니자나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권한을 왜 상대방에게 넘기는걸까요? 내가 소중하다면 결정권은 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에이코와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남성 우월적 사회안에서 강요받는 폭력적인 부분이 노골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는데도 그 불편한 지점들을 굉장히 익숙하게 읽어 나가는 것은 그만큼 매체로 그리고 경험으로 많이 접해와서 그런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일본에서는 진중권 선생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가볍게 읽기 좋다는 여사님의 책을 저도 읽고 싶어지는 날인거 같아요. 우에노 선생은 조한혜정 선생과의 서간집을 통해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결혼제국>을 읽고 굉장히 불편했었어요. 근데 이야기하다보니, 그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이 비난받는 것 같아서 열심히 리뷰로 해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취약합니다만, 그래도 알려고 노력하는 편이니까(아닌가?)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는 지점까지 넘어가지 말고 '아쉬움'으로 끝난다면, 저도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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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PIL)
야마자키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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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야마자키 마리 선생의 작품은 생활 만화는 좋아하지만, 그녀가 창조한 세계의 이야기는 생활 만화쪽 보다 재미가 많이 약하다고 느껴지는 편이라 일부로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만화는 구미가 당겨서 보게되었습니다. 사실 생활 만화를 제외하고 읽어본 작품은 제일 유명한 목용탕 만화가 전부이지만요.-_-;; 뭔가 미묘하게 불편하다고 해야하나 재미면이 약하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거기서 깊이 생각해보는건 관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PIL>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삶의 궤적을 아니까 이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가 더 감상 포인트가 되더군요. 뭐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나 그 시대 상황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공감하기도 어려웠... 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따라가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던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타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본의 그 시기를 보내던 누군가의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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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르시에 2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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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를 보니 저자소개에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14> 여성만화 분위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적혀있더군요. 사실 전작인 <결혼식 전날>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관계로 첫 중편인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있는 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흐와 테오 형제의 이미지와 형제애의 원형이 잘 그려지지 못한다면 실망도 클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책 날개에서 2014년에 1위를 했다고 하니까 그 기대감이 급 올라간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전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재미도 약하고 그리고 반전이라고 하는 그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저는 '에라라라?' 이런 느낌이었던것 같아요. 뭐 사실 정말 큰 반전이긴 반전이지만요. 고흐의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라니...!!! 

형제관계라는 것이 원래 경쟁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보면 인생의 동반자적인 느낌의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이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셔 이야기를 꾸려나갈걸 기대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가장 포인트는 광기가 없는 고흐는 매력이 .... 작품내에서 테오가 말했던것 처럼요. -_-;;;;;;   그리고 일단 고흐씨가 너무 아방한 바보같아서 말이죠. 테오씨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반면에 고흐씨는 너무 무매력. 뭐 설정상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아방하게 웃는 고흐를 보고 싶었던건 아니었던것 같아요. 저라는 독자는. 그냥 동네 바보형이라니요. 그림은 잘그리지만, 아 뭐랄까 이상하다구요! 그런건!!  차라리 회피성 성격장애 타입이라고 그려지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것 같아요. 성자도 아니고!!!  전 성자 고흐를 보고 싶었던게 아니라구요! 캬악!! 

아무튼 호즈미씨 저의 형제관계의 원형에 강펀치를 날리고!!  저의 고흐 선생의 이미지에도 강펀치를 날려주셨네요. 2연타라니!!! 결론은 고흐와 테오 형제의 서간집을 읽은 분은 좀 많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둘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잘 모른다면 재미있을거 같기도 하구요. 내가 생각한 이미지가 없는편이 오히려 더 작품 감상에는 이득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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