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앤 네버크라이 1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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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와 아요이 선생님의 최신작. 이미 유명해진 <너는 펫>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좀 했었는데요. 이번 작품을 보면서 그런 불편한 부분을 많이 느꼈습니다. 피겨를 하는 여주인공은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근데 그걸 엄마는 모르더군요. 
그냥 뭐 저는 피해망상적이라서 구도가 그려졌어요. 무지한 엄마. 그리고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하고 있는 새아버지와 어린 시절에 집단 성폭행 혹은 추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기억을 스스로 지워서 그 시절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을 끊임없이 학대하는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을 끝내려 하겠지요. 이번 작품은 이전작 처럼 그녀의 그런 부분을 망각하게 해주는 존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들었어요.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은 그녀의 엄마.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요? 사람이 그렇게 바뀌었는데. 아아 현실이 아닌데도요. 저는 쌍욕이 나왔습니다. 작가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결론은 그렇게 살다보면 인간이 망가지니 주위에서 눈치채주어서 병원으로 혹은 상담소로 모시고 가라는 메세지일까요? 
결론은 그녀는 그때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는 것이고, 지금도 그녀의 안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겠지만, 정확히는 가야 할 길이 단 하나만 보여서 그 길을 가고 있겠지만, 당신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당신을 비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당신이 선택 할 수 있는 것들은 좀더 많은데 당신이 아직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은 엔딩에 대해서 누군가 저에게 귀뜸해주지 않는 이상은 보지 않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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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나라의 앨리스 2
호시노 소우메이 지음, QuinRose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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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우스와 에이스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전부 알게되는 2권이었습니다. 일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네요. 이 세계의 사람들이 태어나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엘리스가 있는 '보통'의 세계의 기준으로는 신의 영역의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재)창조의 업무를 이 두사람이 공조하여 하고 있었습니다. 
소멸과 창조가 그들 자신의 손으로 가능하고, 다시 태어나는 존재는 원래 있던 존재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지만, 시계를 통해서 근본되는 존재는 공유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다른 존재이기도 한데도, 그들은 그들의 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보리스를 보면서 그런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앨리스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에 감동받고 자극받아서 바뀌는 그를 보고 있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그런 생각들은 현실의 우리들의 공간에서도 주류, '보통'의 정상적인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적으로 접근한다면, 시스템(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자리마다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사라져도 시스템은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누군가가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에요. 
그런 것들이 사회의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논리나 기준이 아니면 상관이 없지만, 집단에서 가치를 증명받거나 존중받기위해서는 시스템을 통해서 시스템안의 직위와 그리고 직위에 의한 보상으로만(저는 단정적입니다)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 시스템안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치는 격하되기 때문이죠. 
인간의 가치는 그런 것들로 정의 할 수 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정하고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취득하기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기울이죠. 그렇다고해서 그 취득한 가치가 영원불변의 가치는 아닌데 말이에요. 그건 일정기간동안의 가치일뿐이지 평생 자신과 함께하는 영원불멸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세계는 이질적인 세계이지만, '보통'의 현실 세상의 균열을 상징적으로 재조합해서 '시계'라는 것으로 표현했다느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태어나는 존재는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일을 대신하는 다른 존재로 대체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시계인간)이 시스템에 소비되는 존재로 남아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그들은 생을 다하게 되면 그들의 심장인 시계를 파괴시켜서 다른 존재로서 대체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그런것으로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두사람들은 그런 저항하는 자들을 죽여서 시계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저항과 그들의 희망을 묵살함으로써 세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기존에 있는 사람이 대체되니까 그런 문제가 사라진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했던 시계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다시 수리되어 태어나더라도 또 다시 그런 생각을 할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블러드의 엘리엇의 관계는 그 저항에 대한 공조 혹은 연대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위해서는 그들중 하나가 죽음을 맞이했을때, 에이스는 가차없이 저항하는 두 사람중 한사람을 죽이고 두 사람의 시계를 회수하겠지요. 그리고 그 시계는 수리되어서 그들을 대신할 존재로 탄생되어서 시스템은 유지되구요.


2권 마지막에서 블러드와 비발디의 밀회와 에이스의 마지막 대사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음권의 전개를 더 궁금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모두가 동경하는 밖의 세상에서 온 앨리스에 대한 에이스의 질투의 감정은 뭐라고 해야할까요?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고 그래서 그들은 밖의 시스템에 대해서 동경합니다. 그리고 외부인을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게 되지요. 자신들에게 없는 가치(대체되는 존재가 아닌 유일무의한 존재)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추측이지만, 그래서 피터 화이트는 밖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앨리스를 대리고 온 것이고 그 앨리스를 통하여 밖의 시스템의 인간 처럼 개개인의 가치에 대해서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대체되지 않는 존재는 '사랑'으로서 증명된다고 생각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앨리스의 '사랑'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그 세계에서 그들은 시스템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바꿀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건 그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동경과 질투가 공존할것 같습니다. 갖을 수 없는 감정을 느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매우 극심한 절망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나는 개개인의로서 소중한 존재지만, 여전히 나의 가슴에는 심장 대신 시계가 돌아가고 내가 사라지면 또 다른 내가 나를 대신한다는 것은 저주스러운 현실일테니까요. 에이스의 분노는 이런것(불가능한 것을 동경하게 되는 그런 부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아무튼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으로 연애시물게임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작가는 뭘 말하고자 하는 걸까요? 문득 에반게리온 엔딩이 생각났습니다. 


+

엘리엇이 좋아요. 귀도 좋고... 성격도 취향. >_<;; 반응도 귀엽네요. 블러드와의 연대도 좋았구요.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정하고... 자신의 생의 끝을 스스로 정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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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키타 GUGU 5
토노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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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나 기다리던 치키타 구구가 나왔습니다. 저는 보면서 울었어요. 너무 슬퍼서... 환타지면서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그 선을 건드리는 그 감각은 여전히 좋았습니다. 치키타의 용서하지는 않는다는 그 말에 고민하는 라 라므 데라르의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치키타의 독백. 너를 위해서 끝까지 인간으로 남겠다는 이런 신념을 지키는 삶이 아무리 고독할 지라도...
물론 완결권까지 전반적인 스토리에 대해서는 여러사람들에게 들었지만, 역시 직접보니까 슬펐어요. 꿈에서 치키타의 부모님이 라에게 내려준 숙제말이에요. 


앞으로는 "클리프" 안에서 "치키타"를 찾아내 주렴. 
그래. 니켈 안에서 치키타를 발견했듯이
클리프 안에서... 그리고 새듀스나 발란스...
앞으로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될 여러 사람들 속에서
너는 앞으로 계속
치키타를 발견해 나가는 거야.
라 라므 데라르.


그걸 찾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건 이상이자나요. 모두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는 건. 그렇게 되면 라와 치키타와 100년이 가능하리가 만무하자나요. 그냥 그대로 행복하게 죽음을 마주하는 건가요? 내가 존재하는 이세상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다른 이들을 보면서 그의 모습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아아아아. 
최근 읽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여사님의 <사후생>을 보면서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의 전환기 일뿐 자신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물을 버리는 것이고 그 이후에 아름다운 세계가 있으며 혼자서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죽음에는 당신을 맞이하러 나오는 소중한 존재들이 있고 죽는 순간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아주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둘의 존재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거든요. 한사람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엔딩은 저에게 의미가 없어요. 친구한테 전화해서 또 엔딩이야기나 들어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칼바니아 이야기는 언제즈음 12권이 나오는 건지. 
예전에 친구 생일선물로 코믹회에서 토노 선생님 오리지날을 사다 준 적이 있었어요. 그분의 부스에는 오리지날 동인지가 정말 많더군요. 국내 해적판 전문 출판사쪽에서는 백귀야행 작가의 책은 많이 내주던데... 토노 선생님 단행본도 내주면 어떨까 살짝 생각해봤습니다. 이럴때 일어를 모르는 자신이 좀 많이 아쉬워집니다.  

 


시공에서 나왔던 단행본보다 책이 좀 무겁네요. 종이가 그람이 좀 나가는 종이로 인쇄한거 같아요. 다 좋은데 많이 무거워서... 읽을때 팔이 아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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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수놓이는 소리 1
진 토리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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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배경 무대는 아마 1차 대전이나 2차대전 즈음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아니면 유럽쪽에 있었던 국가간의 영토 전쟁이거나요. 알프스쪽이나 아니면 히말라야가 배경이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서 역시나 추측으로만 망상해봤습니다.^^;
새 종족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남자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전쟁터에서 도망친 탈주병인거 같습니다. 아니면 패잔병일지도 모르지요. 그 남자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터에 나왔지만, 그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괴로워하는 남자입니다. 직업도 의사라서 우리(그 나라 혹은 시민)이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을 살해해야 한다는 현실에 많은 고통을 느끼는 거 같습니다.
그런 그의 위태로운 삶에 어느날 상처를 입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구하게 됩니다. 편의상 '새 종족'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인간에게 발각되었을 때는 실험체로 전락하고 만다는 인식으로 인간에게 발각될 경우에는 그 인간을 죽이는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세상에서 알리는 것을 막아왔습니다.
새 종족의 아이는 그에게 도움을 받았으나 매우 경계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아이를 잘 돌봅니다. 이윽고 새 종족의 어른들이 아이를 대리고 가게되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전례를 보건데 그들의 정체를 안 인간은 모두 그들의 손에 의해서 죽었기 때문에 새 종족의 전사들은 그를 죽이러 떠납니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온 새종족의 아이는 헬로라는 새 이름을 받고,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나러 친구와 떠납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서 그가 만들어주는 애플파이를 먹으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데... 그들의 전사가 그의 집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을 건 사투가 시작됩니다.
그는 새 종족의 여자 전사와 마주쳤을때 여자까지 전쟁터에 나오는 현실에 좌절하게 됩니다. 그를 보고 헬로(그가 구해준 아이)는 그의 진심을 읽고, 새종족의 어른들을 설득합니다. 그리하여 새종족의 사람들은 그를 살려두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그 동거는 새 아이(헬로)의 양자가 되는 방법으로 그들과의 연을 이어서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절멸되는 새 종족의 내일을 그가 바라보며 서술하는 이야기인거 같습니다. 그가 구한 새 종족의 아이 헬로만이 운명이 바뀌었다고 그들의 예언자가 말하는 걸로 봐서는... 최후에는 아저씨와 헬로만 살아남지 않을까 하는 추측해봤습니다.
새종족의 모습은 인디안의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인디언의 텐트와 비슷한 가옥에서 살고 있으며 머리에 인디언이 다는 깃털같은 것이 있는데 그건 그들의 털이었습니다. -_=;; 두둥!! 아침에는 털을 고르기도 하구요. 

책은 인간이 아닌 조류인간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들이 살아가려는 방식은 소수민족들의 방식들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고 그리고 그들의 언어가 점차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고 그들의 정체성이 사라져가는 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좀 거리를 두고 감상하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일족의 절멸이라는 것은 다른 종족(인간)과 섞인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인간의 정체성(여기서 새종족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 입장으로 뭐든지 해석하는)을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고대인(인간)들처럼 자연=인간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느낌 혹은 감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이 다른 모든 것들을 착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 자연으로 부터 하나 얻었으면 돌려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개념(생각 혹은 가치관)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라는 공간에서 더 오랜기간 생존 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책을 바라본다면 정말 슬픈 절멸- 인간성의 상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하늘에 수놓이는 소리'인가? 하는 생각도 살짝. 여러가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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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폭 2세 환우 김형률 평전
전진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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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신의 무지와 지금까지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 잡은 책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보다가 그만 울었습니다. 핼쑥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감추어진 옷속에 있는 그의 몸은 얼마나 앙상한지 짐작이 되는 이유는, 지금 투병중이신 아버님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보여지는 모습을 짐작컨데 얼마나 힘들게 움직여왔는지 저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을터인데, 그는 여기저기를 오가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사이트를 관리하고 책을 읽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이더라도 원폭 2세 환우들에 대한 문제로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것들은 인간(우리들)에 대한 혐오. 그 안에는 저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렵습니다. 생명권을 가장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눈앞에 이익이나 무관심을 피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내가 중요한 것처럼 남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가 만났던 대부분의 관계자 분들은 그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냥 우리 주위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 2세들이 대물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외면하는 원폭 1세들. 심지어 계속(운동을) 한다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사람까지. 자기 자식도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자식들 때문에 결국에는 회피하는 1세 부모님들. 본인이 선택해서 얻은 고통이 아닌데도 주위에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거이 없었습니다. 고통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그것때문에 삶은 더더욱 고통으로 얼룩지고 있는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간의 문제 때문에 2세의 유전적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아에 방치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약자이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되는 일이 참 많은거 같습니다. 책들을 보면 사죄를 하는 독일 그리고 사죄 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비교하는 책들이 종종 보입니다. 그렇지만, 식민지배에 대해서 사죄한 국가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자신이 알기로는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들의 사죄는 있는 사람들(국가)에 대한 사죄지 없는 사람들(국가)에 대한 사죄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략전쟁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혹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로 더 비약하면 도움이 되었다는 논리로 약자의 고통은 더욱 비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신랑과 결혼한다고 했을때 신랑의 건강의 문제로 반대했던 저의 가족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어쩔수 없는 문제인지 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만 나의 가족들에게만 아니길 바라는 마음. 뭐 저는 거기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동생이 아픔이 있는 분을 배우자로 선택하여 저에게 소개한다면 그의 결심을 존중하고자 노력할겁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개인적이라고 치부하고 그럼 단체에서 배척하거나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들은 정말 지향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몸또는 마음이)아프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다른 사람들이 박탈 할 수 있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넝마가 된 특별법이 언젠가는 수정되기를 바라고... 과오에 대해서 일본정부나  이 정부(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우리'에 언어까지 뿌리내린 느낌입니다.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정말 이상하네요.)그리고 미국정부도 그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주기를 희망하며 그들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특히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희망합니다. 아는 것이 없는 주제에 편협적인 시각으로 보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것이며 알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신랑이 우리들의 아이들이 자랄 때는 좀더 웃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이해하고 울어주고 공감하고 함께 나아가는 세상이 되었스면 좋겠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갔을때 들었다는 그런 말들을 듣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었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네이버를 검색하다가 무려 '제노사이드'라는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씁쓸한 이마음. 좀비 제노사이드더군요. 그냥 좀비의 은유적 의미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게임은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그런 여러가지 것들이 우리들을 더 아무생각 없이 행동하고 말하도록 하는 근원인거 같아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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