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 Piece 4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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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미의 엄마는 뭔가가 굉장히 많이 - 중첩되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해봅니다 - 결핍된 사람이었어요. 전권에서도 그런 사람인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정도의 막장일줄이야. '막장'이라는 단어의 선택하는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어요. 그런 가학적인 어른에게는 그 단어는 그 사람을 인간으로서 대우 해주는 가장 예의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그사람이 어린시절이 결핍되어 있었고 그리고 그 문제들이 여러가지 양상으로 나타나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더라고 해도요. 그 사람은 성인이고 그리고 본인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것까지 선택한 입장이고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인데 본인이 그부분에 대해서 돈을 처발라서 공부를 했는데도 그모양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실험을 해야 할 당위성이 있었을지 저는 그게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뭐... 행동주의이론이 초기에 등장해서 사람을 대상으로 조건형성에 대해서 이론을 정립하는 그 호랑이 담배피던 그 시절도 아니고 수많은 연구자들이 연구해서 그 타당성을 근거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광범위하게 나와 있는 이 시점에 말이에요. 자신의 아이의 인권은 어디로 보내셨나요? 그녀는 의료인으로서도 그리고 엄마로서도 '인간실격'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위에 분명 당위적인(스스로 합리화를 하기 위한) 근거가 있었을 텐데 그저 단순하게 학문적 호기심이라고 대답한 그녀의 대답은 저에게 아무것도 채워주지 않더군요.  

나루미네 가정부 아주머니와 고용인과 고용자의 관계 이전에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이미 의존적 관계를 형성해서 자신의 목적에 그녀를 이용했다는 사실도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환자(내담자)를 자신에게 그렇게 의존적으로 만들어도 된다는건 자신이 배운 지식의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을텐데 말이에요. 뭐 배운대로 그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그대로 준수하며 의료를 행하는 의사가 대부분이라면 불만제로에 나오는 어의없는 의료계의 위생개념이 전혀 없는 그런 보도들은 나올리가 없겠지만요. 덕분에 저는 정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의사에게는 다른 의사들보다 더 큰것들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아이에게는 애착대상을 계속 탈락시켜버리고 다른 아이에게는 그 반대방향으로 양육하여 얻으려고 했던 결과는 뭘지 궁금해졌습니다. 분명 그 안에는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가 있을거 아니에요. 어떤걸 기대하니까 어느 아이에게는 그것을 탈락시키고 어느 아이에게는 그것을 과잉 공급했을테니까요. 불행중 다행인지 불행중 더 불행인지 그 두아이는 연결고리가 생겨버려서 그녀가 예상하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요. 그녀 자신은 그녀가 상황을 만들어서 선택하게 만든 그 환자이자 나루미의 가정부가 두아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저는 그게 가장 궁금해졌습니다.

미즈호가 불안해져서 생각이 1에서 10로 점프하고 그로 인하여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런 그녀를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리고 그 지금 크게 올라오는 감정(2차감정) 아래에 있는 감정(1차 감정)을 찾도록 도와주는 나나오 아줌마를 보면서 그래도 이 만화의 엔딩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알고 있으셨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히로와 히카루는 서로 만남으로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들을 미쳤을지 상상하게 되면 다음권을 펼치기가 두려워 지지만요. 전 그래도 작가분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굉장히 절망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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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 공주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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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님 블로그에서 일본 현재 판매 순위와 그 인기 단행본에 대한 소개를 보고... 보게되었습니다만, 중요한건 그것보다 다른게 더 포인트이더군요. 그분의 소개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며 상경한 오타쿠 소녀'가 만난 '여장남자'라는 소개에 뒤에 더해진 중요한 포인트는 '그 여장남자 총각의 집이 사실 정계 유명인사 집'이라는 설정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만, 저는 이쪽 설정보다는 다른 설정들에 정말 깨알같이 웃었습니다. 일단 크게 웃어보겠습니다. 으하하하하하!!!!
이 양반 센스가 정말 탁월해서 보는 내내 굴러다녔어요. 설정도 설정이지만, 이 만화의 백미는 작가의 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만화는 설정을 보면서 묘하게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부분에서... 리얼리티가... "..." 줄임표 부분은 후기를 보시면 알게되실거에요. ^_^ 싱긋~  함께 단행본을 본 친구 녀석도 작가분이 학창시절에 그리셨다고 한 마그리트풍의 해파리 그림을 정말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전 후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만약 이 양반이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해파리 일러스트로 전위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화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을 잠시했습니다. ^^;; 그래서 다행이에요.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저희들에게 큰웃음을 주는 만화를 그리시니까요. 만약 이 양반이 화보집을 내시면 해파리 화보집이 되겠지요. ㅎㅎ 덕분에 왕년에 보고 충격받았던 <절애> 작가의 세미 누드가 포함된 화보집이 떠올랐습니다. -_=;;  

간단하게 스토리를 소개하자면, 엄마와의 해파리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그 덕분인지 해파리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모든 일러스트란 일러스트는 해파리를 그리며 버닝하는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가지고 동경에 상경한 해파리 아가씨 츠키미는 '아마미즈칸' 이라는 공동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아파트는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자기의 장르에서 한가닥(?)씩 하고 있는 여성 오덕 동지들이 모여서 사는 아파트로, 번역에서는 '동인녀'라고 소개하고 그 후에 '한 가닥 하는 오타쿠녀'라고도 소개했는데... '동인녀'와는 굉장히 거리가 있는 편인지라 '오타쿠'라고 명명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암튼 스스로를 '아마즈(여승)'이라고 부르는 그녀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멋쟁이들 이었습니다. 그런 츠키미 앞에 어느날 멋쟁이 아가씨와 말을 섞을 일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 아가씨는 위기에 빠진 해파리짱을 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까지!!! 그러나 그녀인줄 알았던 멋쟁이 아가씨는... 멋쟁이 아가씨가 아니라 멋쟁이 청년이었습니다. >_<;; 그의 취미는 여장하기. 그리고 타인을 꾸며주는 것도 좋아하는 특이한 청년으로 사실 그의 집안은 굉장히 유명한 정치가 집안이었습니다. 그와 자꾸 엮이는 그녀! 그리고 그는 그녀를 멋쟁이로 새롭게 변신을 시켜주고... 그 멋쟁이 모습을 보고 그의 형이 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형님은 그녀의 맨얼굴은 못알아 보시더군요. OTL
2권이 굉장히 기다려지는 작품이고 그리고 국내에 작가의 전작이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습니다. <해바라기 켄이치 전설>이라는 작품으로 13권으로 완결되었다는 것을 단행본 뒷페이지의 광고로 알게되었습니다. 참으로 적절한 광고더군요. -ㅂ-;; 덕분에 정말 유쾌했습니다. 오랜만에 포복절도하는 당사자 만화라고 생각했어요. 공동 아파트에 사는 동거인들에 대한 세세한 설정도 좋았어요. 보면서 그린우드내의 '체리우드'도 살짝 생각나서 ... 그래서 더 웃었던것 같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볼 예정이고 이 양반의 전작들도 찾아볼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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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노래한다 1
타카야 나츠키 글.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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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언제나 화두를 던지는 타카야 나츠키 선생은 사실 <날개의 전설>때부터 좋아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후르츠 바스켓>을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 <날개~>때와 매한가지로 여전히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의 아픈 부분을 보듬어주는 토오루가 있었고 그리고 토오루와 고양이군을 응원했지만, <후르츠 바스켓>작품내의 특유의 음습한 분위기와 그리고 그 여자의 캐릭터를 견디기가 힘들었었다. 뭔가 단행본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나락에 빠지는 기분이랄까. 뭐 여튼간 당시에는 그런 기분이 나를 사로잡았었고 그래서 지금도 <후르츠~>의 엔딩은 모른다. 그 후 전개도.
그 시점으로 이 양반에 대한 애정을 접고 있다가 현재 출간되고 있는 <별을 노래한다>를 잡았다. 동기는 그냥 최근의 이 양반은 어떤 상태일까에 대한 궁금증에 가까웠다. 백천사 라인쪽에는 좋아하다가 대작이후에 망가져서 다시 볼 용기조차 내기 힘든 작가분들이 많은 관계로 이사람도 그렇게 되었는가 아닌가가 주요 관심사 이었다. 이 양반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주제는 항상 일괄되게 관통해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번 연재작에서 그 부분에서 그 이전보다 굉장히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5권에서 아오이가 치히로의 부모에게 외치던 절규는...
 
" 경찰?! 웃기지 마! 어른은 그렇게 태연하게 짓밟고서도 보호받는거야?
그런데 왜! 이건 너무하잖아. 왜 사쿠라는! 왜 아이들은 지켜주지 않는거야...!!!"

부모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받지만 부모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쿠야. 아이는 부모의 애정을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을 학대하는 상황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이들의 마술적 사고안에서는 부모의 그런 학대하는 모든 행동들에는 반드시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 것이 보통 일반적인 반응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뻔하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던가. 아니면 자신이 부족해서 그런 행동을 야기한다던가. -_-
학대받는 아이들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에게 거는 체면이 얼마나 강력한지 생각하면... 나는 달려가서 그 부모를 정말 ... 아 정말 그런 어른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에 이 분노는 어디로 가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아이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부모에게 화를 내는 것이... 그네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이외에 살수없었다는 당위적인 이유를 대어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고싶지 않다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에게 화를 내야겠다. 당신이 성인이 되서도 성인아이로 남아있어서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식과 배우자에게도 당신의 그 불행을 노래하는 거지같은 사고의 패턴이 침식하고 있으니 책임지라고. 제발 좀 정신좀 차리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성인아이인 부모라면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자신의 현 상태를 그 주제를 알도록 노력해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퍽이나 그런게 가능하겠는가. 분명 그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겠지. 차라리 제도적으로 뭔가 장치가 마련되었면 하는 하는 바램이다.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인간이 인간(아이)을 키우는 무거움에 대해서 말이다. 아이는 당신의 삶의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서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구.

부모에게 애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가 원하는 아이가 되어야 했고 그렇게 되도록 사쿠야는 부던히 노력했지만, 그녀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아이의 고통어린 호소는 들리지 않는 부모. 자신의 삶(이익)이 우선이기에 아이는 도구도 아닌 쓰레기로 취급하고... 존재자체를 부정받는 그 상황에서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치는 거의 없다고 보는것이 답이겠지.
부모로부터 방치와 부모화를 요구받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는 부모에 대한 애정을 포기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한 방법으로 가면을 쓴 아이 치히로.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매달리다가는 자신까지 망가지겠다 싶어서 엄마를 포기했다는 그의 말. 그래서 더더욱 그녀(사쿠야)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그. 굉장히 달라보이지만 결국 똑같은 두아이. 두아이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었던것 뿐.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개개인마다 다르니까.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은 이 사람이 뿌린 다른 장치(주로 개그지만)들로 인해서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고통스런 부분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나온다. <날개의 전설>에서도 버려진 아이의 상징으로 나오던 그녀. 그리고 그녀에게 반해서 그녀를 따라다니던 그 또한. <후르츠 바스켓>에서도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원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에게 치명적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은 정말 나름대로 그 나이의 아이로서는 잘 견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별의 노래한다>에서는 주인공인 시이나와 아오이뿐만 아니라 시이나의 동거인이자 보호자인 카나데도. 그리고 친구인 히지리와 유우리또한 그런 부분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식을 방치하는 누나로 부터 조카를 대려와서 함께 사는 아오이의 삼촌에게도 그런 부모가... 그러니 아오이의 엄마는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그런 방법으로 반응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최근 읽는 책에 의하면 자신의 성격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세대는 부모 그리고 조부모 또한 자신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친다고 나와있었다. 치히로의 엄마는 '어떠한 이유에서 그런 삶을 살았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답은 굉장히 간단하다.

삶을 거의 놓아버린 아오이 앞에 나타난 카나데. 그들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개인적인 생각은 그들의 만남은 고통을 알기에 그 고통에 반응해버린게 아닐까 싶다. 상처가 있는만큼 보인다고 생각한다. 평범하다고 말하는 범주의 삶을 선택받은 아이들은 아래에 내려와도 이해하기 힘든 공감대. 아오이 자신을 위해서 사쿠야를 사쿠라로 보고 말을 했다고 해도, 사쿠야는 구원받았다. 그의 말에. 온전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데 그 사랑스러운 말에 행복해지지 않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말은 매우 반짝거리는 말들이었다. 그가 그 말을 하게된 이유도 그녀에게 그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직감 혹은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라.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도 결핍된 부분을 서로가 채워줄 수 있고 그리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고 싶기 때문이라.
앞으로 나아가더라도 살아감에 있어서 그 구멍은 메워지는 것이 아니니까 또 그 구멍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구멍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반짝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고통 받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현재가 있어야지만 가능하리라. 앞으로 나아가는 사쿠야와 카나데.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치히로는 그녀의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두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다행히 그의 과거를 알게된 사쿠야는 여전히 그에게 손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그런 사쿠야를 걱정하는 히지리는 치히로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만, 그녀의 '혼자 두고 가고 싶지 않아'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알게되었고 그리고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서로 보듬어 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미래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다음권을 봐야지 알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굉장히 걱정하는 마음이 줄어든건 괴로워 하는 치히로를 보듬어 주면서 생각하던 카나데의 독백때문이었다. 힘내렴.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것들을 안고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건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때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아마 네가 옆에 없었다면 그만큼도 버티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마 나만이 아닐꺼야. 그것을 알기에 그녀도 그런 행동을 했던거고. 어른들이 해줘야 할 부분을 그 사람들이 방치해서 그렇게되어버린거야. 원가족과 분리하는 것은 제도권의 시스템과 그리고 원가족의 다른 한 부모가 그 사태를 정확히 알고 개입해야지만 가능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그 구멍을 체우기 위해서 당신들의 딸을 희생한... 그 구멍은 다른것들로 체운다고 해서 체워질 구멍이 아닌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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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화 대작전 2
오구라 아카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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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3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었어요. ^_^* 헤헤헷. 전권(1권)을 보면서 요한과 유다가 약혼하기까지 호소만으로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 2권에서는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호소만으로 될리가 만무하죠. 그게 가능한 현실은 상상속의 세상이나... 그나저나 굉장히 현실적인 설정이라서 놀랐습니다. 요한 왕자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이용해서 쿠테타나 다름없이 휴전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선포를 한거더라구요. '나는 그녀를 사랑해서 더이상 전방으로 나의 군인들을 보낼 수 없다' 이런 뉘양스의 선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뭐 이건 그냥 명실상부한 쿠테타네요. 사랑은 핑계(..라고 쓰고 정당화를 위한 변명)로 느껴지겠죠. 그들에게는. -_=;;;
2권에서는 요한 왕자의 러브 어택도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서인지 아닌지 유다 공주의 튕기기가 좀 낮아집니다. 커플티도 입고 교환일기도 쓰고  함께 낚시도 가요. 그렇게 둘 사이를 좁혀가던 도중에 요한 왕자는 자신에게 살해 위협이 있다는 걸 알고 교환일기에 당분간 오프라인으로 만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이에 안타까워하는 유다 공주는 급기야 왕자를 스토킹을 하게 됩니다. 빰빰빰빰~!!!! 망원경으로 요한 왕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그녀는 왕자를 살해하는 위협이 있을때도 지켜보고 있어서 그를 큰 위기에서 구하게 됩니다. 그는 그 시해의 칼날을 피하긴 했지만, 비스듬하게 스치긴 했습니다. 덕분에 그의 몸에는 맹독이 퍼지게 되고... 그남아 다행인건, 유다 공주가 곧바로 응급조치를 해서 굉장히 나빠지지는 않습니다.   


왕자를 시해하려는 무리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유다 공주. 요한과 함께 그를 시해하려는 무리들에 대해서 왕자의 어릴적 가정교사로부터 강의를 듣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그들의 음모는 춤을 추고~ 왕자의 과거 여자 신문기사 떡밥에 공주가 낚이질 않자 비장의 카드를 꺼냅니다. 왕자가 학살사건에 관여했다는... 이 학살사건에는 가나안의 한 노파가 왕자를 봤다고 증인으로 나서기까지 합니다. 왕자는 그당시에 다른곳에서 교전중이라서 그곳에는 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노파는 유다에게 외칩니다. 적국의 왕자를 믿을것이냐 당신네 나라의 백성을 믿을것이냐.
그 덕분으로 유다와 요한은 '생(강조해봅니다. 저는 꽤나 감정이 실려있는듯~)'이별을 하게됩니다. 유다는 가나안 왕국의 왕실로 돌아와서 아버지인 왕으로부터 다른 남자와 결혼할것을 종용받습니다. 그의 이름은 예리미아 나세르. 구 주데카 왕국의 후예로 아지리에 일대에서 자선 활동을 하는 남자이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유다에게 왕은 기분전환 삼아서라도 그가 초대하기도 했으니 아지리아의 축제에 가보라고 권합니다. 그녀는 어쩔수 없이 아지리아로 나섭니다. 그곳에서 도적을 만나게 되고... 일부의 희생은 어쩔수 없다는 예리미아에게 화를 내는 유다 공주는 희생의 대상이 된 그녀를 구하러 달려갑니다. 위기의 상황에 여장을 한 유다 왕자가 등장하고 모두를 구했지만, 아지리에 주민들은 '북쪽의 사신', '악마'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비난의 화살이 날라오는 그 상황에서 그의 품에 안기는 유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를 지지해주고 늘 응원해주는 이 나라 사람들. 항상 그 기대에부응하는 훌륭한 왕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설령 모두가 욕하고, 실망하더라도... 늘 당신과 함께-."  


이들의 사랑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양국의 국민들은 이들에게 어떤 말들을 던질까요? 어떤 전개가 될지 눈에 그려지만, 그래도 기다려집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과 그것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저자는 말하고 싶은건지가 저는 굉장히 궁금해졌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용서라는 단어를 꺼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근절되어야 하는 것들이고 지양해야 할 것들일 따름이죠. 하지만 그것들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슬픔과 분노를 분리하여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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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문소녀 1
와타루 히비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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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꽃 문신이 있는 소녀 리스 리리. 그녀의 문신은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표식입니다. 그녀는 태어날때부터 심장이 움직이지 않자 그녀의 어머니는 필사적으로 빌어서 어떤 악마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계약의 조건은 심장을 움직이게 해주는 대신 16년 이후에 목숨을 주는 것. 그런 그녀는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습니다. 미지의 영역은 언제나 배척당하길 마련이죠.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의 무리에서 분리됩니다. 그 분리의 방식은 가장 편리한 감금. 감금당해서 생활하던 그녀는 어느날 필사적으로 그 곳을 탈출해서 간 사막에서 시바 레이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됩니다.
아름다운 사람 시바 레이. 그는 알수없는 사람이지만, 그런 그녀를 배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줍니다. 생전 처음으로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녀의 존재인, 그녀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 그녀는 그 이후로 그와 함께 여행을 하며 이 마을 저마을을 다니며 춤을 춰서 끼니를 연명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좀더 인간으로서 삶을 느끼고 싶어하고 그래서 그녀와 계약을 했다는 그 악마를 찾아 나섭니다. 여행의 목적은 계약한 악마를 만나는것. 그녀는 계약기간인 16년을 좀더 연장해줄것을 부탁하려고 합니다. 사실 그 악마는 그녀의 곁에 있는 시바 레이.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악마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 악마의 심장을 노리는 다른 마물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 위기때마다 시바는 그녀 몰래 본 모습을 들여내 그녀를 구해줍니다.

1권 중반에 그녀는 그녀와 같이 가슴에 꽃을 새긴 남자를 만납니다. 그는 주위로 부터 박해를 받지만, 부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그녀에게 말합니다. 그런 그의 고민은 그런 부인이 최근들어서 시름시름 아파간다는 사실. 그 부인의 정체는 사실 그와 계약한 악마. 그 부인은 그의 심장을 돌려받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악마의 심장인 그녀의 심장을 노립니다. 그런 그녀를 지키는 시바. 16년이 되는 날 그로부터 자신의 심장을 빼앗아 가지 않아서 미쳐가는 그녀 앞에 그는 심장을 돌려주겠다고 앞으로 다가섭니다. 모든것을 알고 있다고... 광기의 괴물로 변해가는 그녀에게 몸을 주는 그. 그녀가 있음으로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하며 그는 그렇게 그녀의 손에서 죽어갑니다.
본디 악마는 감정이 없는 존재로, 어떤 악마들 사이에서 내기 삼아서 인간에게 심장을 빌려주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16년 동안 그 인간과 악마는 꽃과 잎같은 존재로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을 악마도 느끼게 됩니다. 16년이 되는 그날 그 인간으로 부터 자신의 심장을 돌려 받는 것이 이 게임의 목적. 그 인간으로부터 심장을 빼앗지 못한 악마는 광기의 괴물로 변하고 맙니다. 악마와의 계약관계의 진실을 알고 슬퍼하는 리스에게 시바는 너의 악마는 분명 너를 상처입히지 않을거라고 말해줍니다. 그를 위해서 웃으며 춤을 추는 그녀를 좋아하는 시바. 그 계약을 연장시키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는 과연 그녀의 심장을 빼앗아 버릴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이분의 만화를 보면서 <나선의 조각>으로 유명한 타치바나 카이무님이 생각났습니다. 남자 캐릭터들의 옆모습에서 눈을 묘사하는 느낌이 정말 비슷했거든요. 그렇다고 정면은 또 다른 느낌이고... 문득 정말 만화를 미치듯이 많이보던 시절에 좋아하던 작가의 향기가 느껴져서 여려모로 많은 것들이 생각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 혹자는 방어하려는 그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의 다수로 느껴지는 우리들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유약한 존재인것 같아요. 우리가 아닌것들은 부정하려고만 하니까요. '거기에 그게 있다'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조차 굉장히 무리한 희망이라고 느껴졌거든요. 최근에 화재가 되면서 마감했던 SBS 모 드라마의 작가의 인터뷰 리플을 보면서 그런 느낌들을 굉장히 크게 받았습니다. 그들이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는 존재도 아니고 그들은 그들 개인 그대로 존중받기를 희망한것 뿐인데, 인간이라면 그건 당연한 소망이자나요. 존재 자체를 부정받는 기분이 어떤건지 당신들에게도 철저하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건 그만큼 분노가 커서인가봅니다. 우리는 왜 답은 하나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양극단을 오가는 논리속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괴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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