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이야기
야마카와 아이지 지음, 카와하라 카즈네 / 삼양출판사(만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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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 오뚝이>를 읽고 그림과 이야기 모두에 반했어요. 실로 오랜만 이었습니다. 작화, 이야기, 연출 모두에 반한 작가는요.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흑백 원고에서는 느껴지는 섬세하고 매력적인 필력이 칼라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  2014년에 만난 최고의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그림체와 잔잔하게 그려지지만 결코 잔잔한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도 취향을 직격 강타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야마카와 아이지 선생이 그리고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작업한 <내 친구 이야기>는 이런 이유-스토리가 야마카와 선생이 아닌점-로 살까 말까 좀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비교적(응?)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던것 같아요. 생각할 꺼리가 많아졌다는 기준으로 치면, 좀 미묘해요. 독자인 저는 그 엔딩에 상당히 불만이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에 나루가미가 개입하는 구조가요. 정확히는 그 관계에서 전달하는 '가치적'문제가 그러했어요. 그냥 남여관계의 연애가 아니라 그 구조의 아래에서는 다른것들을 노골적으로 전달하고 있었거든요. 가볍게가 아니라 무겁게요. 

모에와 에이코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참 좋았고, 그리고 그걸 풀어 나가는 방식도 상당히 좋았던것 같은데... 먼가 읽으면서 여러가지로 내내 턱턱~하고 걸렸어요.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고... 트위터에서 1차로 풀고 나서도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뭐랄까 최근 인기작인 이 양반이 스토리를 작업한 다른 작품 <내 이야기!!>도 뭔가 굉장히 불편하다는 걸 느끼고 전권을 치웠을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그토록 서로에게 헌신적으로 임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설사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하여도 그 사람이 제공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정말 귀한 선물이라고 인지하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기는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두사람은 자신들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거든요. 모에와 에이코의 관계는 완벽한 관계에 가까웠어요. 아니 완벽한 관계에요. 그 두사람이 서로에게 부족하게 느끼는 점이 없었으니까요. 그 관계로 충만되고 행복하고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그렇지만, 모에는 자신은 에이코와 결혼을 할 수도 그리고 에이코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출산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어요. 에이코에게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지 물어  봤을때 에이코의 대답은 "그치만 난 충분한걸! 충분히 해복해! 이만큼 친한 친구를 사귀는 건 남친 만들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모에의 대답은 "충분히 행복하다니 왠지 좋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독백은 " 에이코, 난 네가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었으면 좋겠고 널 기쁘게 해주고 싶어. 슬픈 표정 짓게 하거나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남친 만큼은 줄 수 없어. 남친과 함께 있는 해복이나 결혼, 출산 같은 그런 행복은 아무리 해도 난 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모에.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그녀 에이코의 결혼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볼 것이며 그리고 그녀의 고난과 기쁨을 늘 함께 할것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양성의 결합안에서 관계에 대한 축복으로 일어나는 기적이라고 해야한다고 한다면 그렇게 말해야 겠지만, 결혼과 출산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넘쳐나고 매우 다양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제가 좀 이상한건가 하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왜 자신과의 관계에서 충족되는 것들보다 그것들을 더 고귀하고 가치있게 느끼는지에 대한 의문이 일었습니다. 적어도 에이코는 지금 이순간 거녀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행복해 하며 감사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모에는 무엇을 보고 자라서 저렇게 느끼고 있는것일까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에이코는 충분히 행복하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 관계에서 에이코와 달리 모에는 충분히 충족되지 못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 같은 남자를 -정확히는 에이코와의 관계에서가 답에 가까운거 같지만- 만나서 그녀와 닮은 얼굴의 아이를 출산하고 함께 키우고 싶은 욕구가 그녀에게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외모에 호감이 있어서 고백한다고 해서 사귀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라고 누가 규정한 것일까요? 내 소중한 시간을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투자하여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의미있는 일일까요?

연애를 하지 않는 인간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요? 

연애를 해야만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일까요?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관계는 남여관계 한정으로 아름답게 미화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보통 남성간의 특별한 우정 관계에서도 저런식으로 생각하며 괴로워 하는 이야기가 있었나 생각해봤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는 별로 본 기억이 없는거 같아요. 내가 남자라서 너에게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고 슬퍼하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자신이 여성인데 성별을 잘못 타고나서 괴로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저는 접해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매체에서도. ... 으으음. 


카와하라 카즈네 선생이 스토리를 담당한 다른 이야기 <내 이야기!!>에서도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연애 관계에서 느끼는 행복을 자신의 친구도 느끼길 희망하고 그리고 그에게 연애의 즐거움을 불러 일으켜 주려고 애쓰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기준치도 다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기준과 만족치도 개개인의 가치에 따라서 달라질 텐데 그런것들은 고려함은 전혀 없이 맹목적으로 '사랑'을 향해서 돌진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상대방을 위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지지 못했어요. 그 안에서 어떤 폭력적으로 강요한다고 느껴졌던것 같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이 작품을 접게된 이유는 커플의 관계에서 그 관계의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제삼의 존재인 이성이 출연하여서 자신의 애인이 자신보다 다른 존재를 소중히 여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자극하는 구조로 나아가서 그랬던것 같아요. 이런 골조의 전개를 굉장히 꺼려하는 편이거든요. 제삼의 존재는 사실 핑계이고 원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감이 그정도 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전작인 <고교데뷔>의 경우에는 단행본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런 구조의 전개가 남자쪽으로 1건, 여자쪽으로 1건이 있었었어요. <내 이야기!!>에서는 4권인가 부터 그런 전개가 시작되는 느낌이 퍽퍽퍽!! 와서 결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던것 같아요. 제가 견디기 힘든 부분은 이런 부분인가 봅니다. 삼자관계의 갈등. 자신들의 문제를 제삼자를 끼워서 해결할려고 하는... (???) 근데 이 작가 양반이 이런것들을 전개하는 방식이 아주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점이 더 건드려 지는 것 같아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에이코의 매력을 알아주는 것이 반드시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에이코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모에가 알고 있고 그걸 에이코도 알고 있는데 뭐가 그토록 부족한 것일까 하는 그런...  

에이코가 사랑스러운 존재인건 누구보다 모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걸요. 그리고 그걸 감사하고 있었어요.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서로간에 바라봐주는 관계를 살면서 얼마나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 두사람은 '운명'이라는 말로 정의되는 관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관계라고 느껴졌거든요. 그건 정말 축복이자나요. 살면서 그런 사람을 얼마나 만날 수 있겠어요. 남여 관계에서 주는 만족이 자신이 그녀에게 주고 있는 행복감 정도로 밀도가 있을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인데 말이에요. 

모에의 시각안에서는 아주 오래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여성 바하적 시각이 느껴졌어요. 여성간의 우정 관계에 대한 비하 말이에요. 모에 스스로가 보고 자란 것들을 기반으로 가지게 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만화가 그려지는 세계의-일본의 그리고 우리의- 베이스적 가치관에 더 가까운 것이 사실인거 같아요. 

결혼과, 출산 관계만이 중요하다는 가치, 그리고 그것들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관계-자신에게 가장 소중한-에서 자신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제공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녀의 독백은 깊은 좌절감이 느껴졌거든요. 자신이 주고 싶은데 줄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 

그것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것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평가할 수 없는 차원의 영역같아요. 그걸 평가 할 수 있는 개개인 본인 한정이겠죠.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데...


가장 의아하게 느껴진 부분은 이야기 전개상으로도 모에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그녀는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고백해오면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지금와 관계를 똑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이면 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계속해서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잘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나에게 중요해질지도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상대방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에이코와 모에는 둘이서 만나는것 만으로도 일정이 빡빡한데, 모에는 '거절'이라는 선택치는 아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모에는 이성관계에서 선택권한을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돌리고 있다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자신에게는 결정 권한이 없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 마음을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는데... 게다가 상대방은 그녀가 자신들이 생각한 이미지와 다르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많았어요. 누가 비난받아야 할지는 명백한데도 ... 이런 지점들이 읽으면서 저의 신경을 건드리고 또 건드리고 또 건드리더군요. 끊임없이. 

'상대가 자신을 수용하면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관계는 단절되는 구조'는 뭔가 이상해요. 나를 좋아하는 건 상대방이고 나는 아니자나요.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그 권한을 왜 상대방에게 넘기는걸까요? 내가 소중하다면 결정권은 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에이코와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요? 

남성 우월적 사회안에서 강요받는 폭력적인 부분이 노골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는데도 그 불편한 지점들을 굉장히 익숙하게 읽어 나가는 것은 그만큼 매체로 그리고 경험으로 많이 접해와서 그런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우에노 치즈코 선생이 일본에서는 진중권 선생과 비슷한 이미지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녀가 가볍게 읽기 좋다는 여사님의 책을 저도 읽고 싶어지는 날인거 같아요. 우에노 선생은 조한혜정 선생과의 서간집을 통해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결혼제국>을 읽고 굉장히 불편했었어요. 근데 이야기하다보니, 그 책을 읽으면서 저 자신이 비난받는 것 같아서 열심히 리뷰로 해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 하니까요. 그리고 여전히 취약합니다만, 그래도 알려고 노력하는 편이니까(아닌가?)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는 지점까지 넘어가지 말고 '아쉬움'으로 끝난다면, 저도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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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PIL)
야마자키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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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야마자키 마리 선생의 작품은 생활 만화는 좋아하지만, 그녀가 창조한 세계의 이야기는 생활 만화쪽 보다 재미가 많이 약하다고 느껴지는 편이라 일부로 찾아서 읽는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이 만화는 구미가 당겨서 보게되었습니다. 사실 생활 만화를 제외하고 읽어본 작품은 제일 유명한 목용탕 만화가 전부이지만요.-_-;; 뭔가 미묘하게 불편하다고 해야하나 재미면이 약하다고 해야하나요? 뭐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거기서 깊이 생각해보는건 관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PIL>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삶의 궤적을 아니까 이 사람의 어떤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가 더 감상 포인트가 되더군요. 뭐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나 그 시대 상황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서 공감하기도 어려웠... 라기 보다는 이야기에 따라가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던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타인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본의 그 시기를 보내던 누군가의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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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르시에 2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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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를 보니 저자소개에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14> 여성만화 분위 1위를 차지한 작품이라고 적혀있더군요. 사실 전작인 <결혼식 전날>을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관계로 첫 중편인 이 작품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있는 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흐와 테오 형제의 이미지와 형제애의 원형이 잘 그려지지 못한다면 실망도 클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책 날개에서 2014년에 1위를 했다고 하니까 그 기대감이 급 올라간 상태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전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재미도 약하고 그리고 반전이라고 하는 그 감동적인 장면(?)에서도 저는 '에라라라?' 이런 느낌이었던것 같아요. 뭐 사실 정말 큰 반전이긴 반전이지만요. 고흐의 캐릭터에 대한 재해석이라니...!!! 

형제관계라는 것이 원래 경쟁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보면 인생의 동반자적인 느낌의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이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기반으로 나머지 부분을 상상해셔 이야기를 꾸려나갈걸 기대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가장 포인트는 광기가 없는 고흐는 매력이 .... 작품내에서 테오가 말했던것 처럼요. -_-;;;;;;   그리고 일단 고흐씨가 너무 아방한 바보같아서 말이죠. 테오씨는 매력적으로 그려지는데 반면에 고흐씨는 너무 무매력. 뭐 설정상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아방하게 웃는 고흐를 보고 싶었던건 아니었던것 같아요. 저라는 독자는. 그냥 동네 바보형이라니요. 그림은 잘그리지만, 아 뭐랄까 이상하다구요! 그런건!!  차라리 회피성 성격장애 타입이라고 그려지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었던것 같아요. 성자도 아니고!!!  전 성자 고흐를 보고 싶었던게 아니라구요! 캬악!! 

아무튼 호즈미씨 저의 형제관계의 원형에 강펀치를 날리고!!  저의 고흐 선생의 이미지에도 강펀치를 날려주셨네요. 2연타라니!!! 결론은 고흐와 테오 형제의 서간집을 읽은 분은 좀 많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둘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잘 모른다면 재미있을거 같기도 하구요. 내가 생각한 이미지가 없는편이 오히려 더 작품 감상에는 이득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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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무라가의 아들 3 - 새로 생긴 별 , 뉴 루비코믹스 762
메이지 카나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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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의 마법사>를 읽고 반해서 고민 고민하다가.. 도서정가제 전날에 주변의 권유도 있고 해서 질러버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가 ... 기대한 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했습니다. <언덕~>이 너무 대단한 작품이라서 그런거 같아요. 뭐 나쁜건 아니었습니다. 성장만화인 점을 감안하면 대체적으로 좋은편 이었던거 같아요. 

큐우쪽은 개인적으로 사실 사랑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각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리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가 엄마인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큐우의 대인관계의 제한적인 부분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서 어느 순간부터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시각이 생기면서 각성하는데 이 친구의 관계가 오로지 그 친구를 향해 있던걸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것 같아요. 사실 그런걸로 치면 큐우의 각인 상대(?)도 매한가지 일텐데 어째서일까 저는 큐우쪽이 더 그런 느낌을 크게 받았던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흐름은 고등학생에서 입시를 준비하면서 좌절하고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것들이나 대학에 진학해서 점차 관계나 주변이 변화하는 시기를 천천히 잘 그려져서 그런면은 굉장히 공감이 가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큐우의 감정선 변화도 비교적 그랬던것 같아요. 

읽으면서 많이 괴로웠던 부분은 형에 대한 에피소드 이었어요. 어릴적에 당했던 그 경험-성폭행-이 그 사람의 삶을 전반을 어떤식으로 지배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뭐 그려지기는 지금은 어느정도 현실에서 잘 적응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전 애인이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에서 본인이 역으로 제압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 이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 아니 사실은 명확하게 여전히 진행중이라는것이 느껴졌습니다. 이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그리고 그걸 어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보내줬을지, 타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경험을하고 살아왔을지... 마음이 참... 고향에 내려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소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때 참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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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리고 1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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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O님이 취향이 아니라고 저에게 주셨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입장인 저에게는 좀 뭐랄까 자극이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공감이 가고 그리고 선생님의 폭력에 대한 묘사도 그렇게 위협적으로 와닿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선생님의 대하여 다르게 수용하는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간격이 벌어지는지 좀 생각해봤는데, 이쪽은 본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관계고 그리고 본인이 선택해서 나아간 길이라서 더 그랬던거 같기도 한데 선생님에 대한 묘사는 폭력에 대한 희화화가 크게 느껴지지는 건 아니었어요. 분명히 그 선생님에 대한 행동에 대한 관찰이 있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실에 계속 나가게 된건 자신의 선택이었던건 분명하니까요.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구요.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말해야 하는 부분은 저의 경우에는 선생님에 대한 죄책감에 가까운 회한이었던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만나러 가봐라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그리는 시점에는 은사님이 고인이라서 그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부분은 뒷권이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요. 

다만 계속 후회속에서 있는데 입시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리고 그 후에 졸업하고서도 선생님께 몇년동안 배웠던 것들에 대한 부분은 그 후회속에서는 아에 사라지는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건 작가 본인의 후회가 어느정도인지 몰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루구요. 

다만 그 선생님이 본인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 좋아하실지 아닐지는 본인이 아닌 이상 모르는 것이지만,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는 걸 좋아하실거 같다는 건 저자의 시선으로 걸러진 작품을 보면서도 보였습니다. 아마 만화를 그린다고 이야기 하셨어도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셨을거 같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것도 이해는 충분히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네. 그렇죠. 만화를 한다고 말하면 ... 뭔지 알아요. 저도. 


선생님이 원해서 선택한 영역까지 모두 본인의 그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가져와서 등에 지고 있는거 같아서 읽는 내내 그건 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좋아서 수업을 늘린거죠. 당신에게 충분히 넘치도록 배려한것도 그건 분명히 선생님의 선택이었어요. 어떤 걸 받기 위함이 아니라요. 이렇게 해서 당신과 그림을 그리면서 함께 나아갈수 있다면 참 좋은거고... 아니라면 그 좌절도 본인이 가져가야 할 영역일 따름이죠.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부분을 가져가야 하는 것이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한 영역에 대한 부분은 당신 스스로의 온전한 책임으로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우리가 만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것이지만, 가는 그 길에 만날 수 없다고 하여도 그걸로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할수 없는거니까요. 만남에 감사하고 그 만남을 충분히 누렸다면 그 것으로 충분히 행복한 순간과 삶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났고 본인의 삶의 8년이라는 시간동안 선생님과 꾸준하게 함께 걸어갔다는 것. 그건 굉장한 축복이고 그 시간을 그 선생님은 정말 반가워하고 즐겁게 보내셨을거 같았어요. 

지금에 와서 보이는 것은 지금이니까 보이는 것 이니까 그 후회를 계속 해봐야 지금의 나의 삶에 어떤식으로 영향을 주고 그 생각이 자원이 된다면 그 생각은 이어나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대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고인이라면 그 고마운 마음을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어 주는것이 좀더 생산적이고 그리고 고인이신 그분도 좋아하실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은 반추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받았던 제일 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하지 못했어요. 반추에 가까운게 아닐까 하다가 읽어 나가면서 중간에 선생님이 이미 고인이시기 때문에 작품안에서 전체적으로 그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이 책 자체가 이제 고인이신 선생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방향이니까 그런 흐름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매체를 통해서그 마음을 담아내서 이 책을 읽는 어딘가에 있는 누구에게도 그런 은사님이나 소중한 존재인데 소원해진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큰 힘이 되어줄거 같기도 해요. 그치만 소원해졌다는 것에는 어딘가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매체의 간극을 넘고 그 마음이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자극을 받아도 결국 어떤 행위에 대한 선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 온전하게 선택한 것이지 어떤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밀려서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요. 버티는지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결국 자신만이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극을 전달해준다는 의미에서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히가시무라씨 자전적인 만화에 대해서 기대치가 낮았던 이유는 작가분의 전작중 하나인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의 뒤의 본인의 경험을 읽고 작품 본편의 에피소드들이 재인지 재경험 되는 일이 었었던 적이 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기대-어느정도 폭력에 대해서 희화화 하는 부분 혹은 미화-는 처음부터 내려두고 읽었습니다. 정확히는 어느정도 각오를 했다고 해야하나요? 네 각오하고 읽었던것 같아요. 

<해바라기 켄이치전설>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어떨 때는 다정했다가 어떨 때는 이해할수 없는 수준으로 사고가 비약하며 동시에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 권말 후기에 작가는 아버지 캐릭터를 본인의 아버지를 롤 모델로 했다고 고백했고 그리고 이 이야기는 자신과 아버지의 에피소드가 반영되었다는 것도 이야기 했던거 같아요. 

제가 그때 받았던 느낌은 아버지와의 기억을 지나치게 이상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과 아버지의 폭력에 대해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화의 연장선으로 미화(?)하는 형식과 동시에 그 폭력적인 장면 자체를 희화화 해서 타인으로부터 웃음을 유도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유없는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을 가지고 웃음의 소재로 가져오는 것도 굉장히 불편하고 용납하기 힘들었기에 불쾌함이 굉장히 크게 올라왔던걸로 기억합니다. 

부모가 예측할 수 없고 혼란스러워서 늘 예상범위에 벗어나는 위인이라서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을 이해하기 함든 경험은 정말 고통스러운 경험이고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할때 이해받기 힘든 범주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걸 언어화 할때 쉽게 표현할 수 있게 전환되는 것이 개그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런다고 하여도 그것에 대해서 견지하는 태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희화하 한다고 하여도 그 안에서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이 한 아이에게 (개인차가 있겠지만) 얼마나 고통의 경험이었는지에 대한 부분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히가시무라 작가에게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매체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풀어라는 것은 아니지만, 뭐 간결하게라도 언급하고 넘어가야 했다면 제가 이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읽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만요. 지나체게 저의 기준으로 감정 이입을 해서 이사람이 그런 부분도 함께 가져가는데 그것을 그냥 떠나보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뭐 암튼 몇년전의 저는 이 사람을 그렇게 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파리 공주>의 개그센스는 참 좋아했구요. 건드려 지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개그센스는 그만큼 매력적 이었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해졌던 지점도 그런 괴로움을 희화하해서 소화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좀...  뭐 근데 모르는거죠. 매체로 표현하는 것 자체도 경험을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서 타인에게 보여지는 방식으로 재구조화 되는 것이니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펙트라고 받아들여야 할지는 사실... 경험이 왜곡된 부분도 분명히 있을테구요.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화실에서 티슈케이스를 그리시던 할아버님의 이야기 이었습니다. 전시회에서 그 할아버님의 그림에 선생님이 주신 피드백이 참 좋았습니다. :)  그나저나 저자분은 복받은 인생이네요. 저런 선생님을 만나기도 힘들죠. 저런 후회를 남길만한 인연이었다는 것이.... 전 부럽네요. 그럴만한 은사님이 있다는 것이. 회한의 마음이랑은 별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부러운거에요. 슬럼프에 달려와서 그사람이 격려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격려를 해준다는게... 정말 감사하죠. 나라는 개인에게 그 가능성(?)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본인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준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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