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노래 7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전에 읽다가 그 어둠의 끝을 알고 싶지 않아서 포기했던 <양의 노래>를 다시 읽었습니다. 엔딩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카즈야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리고 치즈나를 잃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의 존재는 사회적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타인에게 더 거부당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야에가시나 키노시타 모두 그의 병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했고 함께 정면으로 마주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치즈나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도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제일 위인)어쩔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는 하아. 저 자신이 느끼기에는 카즈야에게 치즈나는 혈육으로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지만, 그녀의 애처러움에 비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위해서 기억을 어떻게 포장하느냐를 엔딩에서 여실하게 보여줬거든요. 그녀를 받아드리는 카즈야도 그랬었고.... 
걱정되는 것은 카즈야는 기억을 잃어버렸고, 그냥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가려던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걸 알았을때는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양부모는 그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야에가시와 키노시타는 그의 옆에서 그의 고통을 지켜보고 슬퍼하겠지요.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나감'과 '정신있음', '정상', '비정상'이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카즈야의 아버지는 그 부분을 보지 못한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존재하고 그녀(치즈나)를 위해서나 아버지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좀더 뭔가 노력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이어가는건, 정신과 육체가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만 이어갈려고 노력하다가는 결국 다른 한쪽의 한계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함께 파멸하게 된다는 걸 의사인 그는 간과한건지 아니면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인건지 보이지 않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자살' 앞에서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였을텐데 역시나 같은 의사 미나세 역시 그런것은 범위에 넣지 않았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바램을 토해낼뿐... 결핍된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 집착하고 구속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덥고나서 문득 드는 생각은 그들의 가문의 유전병이 타인에게 공포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여도 연구 대상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 이었습니다. 연구해서 나올 가치가 부를 창출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희귀병으로서 고통받도록 방치하는게 사회나 관계자(학자)들의 일방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약회사들이 장사가 된다면 그걸 그냥 두었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라는건 이런 의미에서 가슴아프다는 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피해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배척받고, 대안도 없고, 이어가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모든걸 개인의 불행으로 치환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가장 짜증나요.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다른 시각의 분들이 불쾌함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생각'은 소수자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니까요. 그분들의 생각은 아니니까요. 뭐 저는 사회에서 저 자신이 소수자라고 느끼는 부분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불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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