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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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다수자의 불관용 때문에 소수자가 다른 효과적인 소통의 통로를 갖지 못하고 시민 불복종에 기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롤스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정당한 시민 불복종이 시민의 화합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일 경우, 그 책임은 항거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반대가 정당화되게끔 권위와 권력을 남용한 사람들에게 있다." 소수자의 말 걸기‘에 다수자가 어떻게 화 답하느냐에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시위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시위에 동참해 함께 변화를 요구할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화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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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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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직 충분히 정의롭지 않다.
멜빈 러너 Melvin Letner는 사람들이 공정세계 가설just-world hoosboth품고 산다고 말한다. 세상은 공명정대하고 사람은 누구나한 만큼 결실을 맺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그래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어야 장기적인 목표를세우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 믿음은 필요하다. 문제는 부정의한 상황을 보고도 이 가설을 수정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긴다. 세상이 언제나 공명정대하다는 생각을 바꾸는 대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왜곡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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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참하고 슬픈 의미로 쓰이는 ‘자살‘ 이라는 단어보다 결단의 의미를 담은 ‘자결‘이라는 말을 쓰려 한다. 물론 그 죽음을 내 나름대로 상상해서 쓰는 말이다. 삶의 존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원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주로 극빈 노인의 자결을 보며 느끼는 것이지만, 죽음 곁에 다다른 노인이라면 빈부를떠나 같은 심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살아야 하는가?‘
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철학적인 질문이자 과제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과 역할이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수긍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적 쓸모‘를 장차 내 자발적 죽음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으로삼는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라면 사회적 쓸모의 한계점에서 자결을 선택하느냐 자연사를 기다리느냐에 있을 것이다. 그 한계점‘
이후의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 ‘쓸모’란 것의 구체적 내역에 대해서는 나도 살아가면서 판단할 갓이다. 그 판단력이 늘 살아 있기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작정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진지해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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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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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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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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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언제나 옆에 있을 것 같은 엄마. 엄마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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