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을 알게 되어 기뻤다. 그의 글을 읽으면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게 보이고, 간간이 섞인 블랙유머가 익살맞은 리듬을 만들었다. 출근길과 퇴근길이 기다려질 정도로 재밋게 읽었다.- 이 책의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제외하곤 모든 게 껍데기고 허상이라고 여겼다. 잘나가던 증권사 직원은 돌연 아내와 가족을 떠나 그림, 예술을 위해서만 살았다. 그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보면 미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 열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도 그랬다.내가 책에서 느낀 것은 예술가의 고독함과 열망이 아니었다. 자연의 물리적인 규칙과 사회적인 통념을 뛰어넘는 거룩함..? 이었다. 신...? 무엇인지 표현하기 어렵다. 스트릭랜드의 말주변이 엉망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주인공 요조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진흙탕 같다. 탁하고 걸쭉한 흙탕물 속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몰라 벌벌 떠는 사람처럼, 요조는 인간들을 두려워했다.요조가 유별난 걸까, 세상이 이상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긴 가치가 또 다른 요조를 만들고 있진 않을까. 어렵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이 조금 더 보드라워지는 걸 느꼈다. 한 챕터씩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지금 맞닥뜨린 고민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책이 좋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없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책.-P. 107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의미를 찾지 않는다. 세계는 오직 사랑 안에서 생성되며, 오직 사랑의 법칙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 세계 안에서는 꽃이 말을 걸고 두레박이 노래를 부르고 사막이 그리움으로 출렁인다. 단 한 사람에 의해 밤하늘의 별들이 한꺼번에 울다가 한꺼번에 웃는다. 우리 모두, 한때 그런 세계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