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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은 에세이집이지만 솔직히 에세이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일기보단 무겁고 자서전보단 가볍고 참회록이라고 하기엔 명명이 너무 거룩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그림 없는 사진첩'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선명하게 기억하는 어느 한 장면에 글로 피와 살을 붙인 개인 사진첩. _에필로그
마실 이라는 사람의 성장기.
그리고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하게 날것 그대로 적힌 느낌이라 그걸 훔쳐읽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
가세가 기울어 월세로 동네 곳곳을 누비며 살아온 지랄맞은 18번의 유랑기. '집의 역사' 속 그녀와 가족의 이야기.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정말 솔직하게 쓴 느낌이라, 30여 편의 이야기들 중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마음 같기도 해서 눈물도 쏟고, 격하게 공감하고, 조용히 위로하고 또 위로받기도 했다.
지랄맞은 18번의 이사는, 진짜 특이한 경험이긴 하겠다 생각도 들었다.
사전에 가족에게 동의를 구하기는 했다지만, 막상 책이 출간된 후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궁금했는데, 책의 에필로그에 책 출간 전 부모님께 책 내용을 보여드렸다가, 아빠와 다투는 부분이 나온다. 아빠도, 그녀도 서툴러서 그런 거라고 다들 서툰 바보여서 그렇다고.
30편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녀에게 내 인생을 위로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조용히 차분하게 하지만 직설적으로.. 최근에 이렇게 공감하며 에세이를 읽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그녀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나의 내적인 면에 어그러진 부분들을 좀더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쁜 감정들도 내 것이니까. 그것들을 제대로 바라봐야 내가 나아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여전히 서투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부딪혀본다. 나의 가족들과, 나의 주변 사람들과 말이다.
그렇게 부딪히다 보니, 나아지는 관계도 있었고, 아예 틀어져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나의 태도에서 달라진 건, 예전의 나는 많이 참는 편이었다. 내가 얼마나 참는지는 상대는 몰랐다. 내가 참을 수 있을 만큼 참다가 터지면, 상대의 태도는 '쟤 왜 저래..?'였다. 몇 번을 그렇게 겪다 보니, 참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그때그때 다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참을만한 건 그냥 끝까지 참아버리거나 무시해왔다. 그렇게 지내오다 보니, 어느 정도 사람들 사이가 정리되고, 점점 나아지는 내가 보였다.
관계에서 나아지는 건, 서로의 노력 같다. 나만 일방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를 대하는 상대도 말이다.
그게 가족이든 타인이든 서툴러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식구(食口)의 사전적 정의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단어의 위대함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끼니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시간을 나눈다는 뜻이니까. 기꺼이 추억 한 편을 내준다는 뜻이니까. 켜켜이 쌓아 올린 사진들 사이로 서로 부끄러워하고 미워했던 나날들이 겹쳐졌다. 왠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 그 모난 마음들도 꿀꺽 삼킬 수 있을 것 같다. _P. 33
이 책을 읽는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미우면 밉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어야지 왜 참고 또 참아, 울어야지. 그렇게 제대로 울다 보면 고작 한 뼘만큼의 성장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_프롤로그
인간관계엔 Go나 Stop 밖에 없다고 여기던 내게 Pause도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잠시 멈춰도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밖에서 볼 땐 멈춰 있던 시간이 안에서 보면 그저 숨 고르기 할 찰나일 뿐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 덕분에 나는 어제의 나를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_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