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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경의 치유의 말들
박주경 지음 / 부크럼 / 2020년 9월
평점 :

현직 앵커이지만, 말보다는 글을 우선시하는 저자는 일과 관계에 지쳐있는 우리에게 따뜻한 편지 한 통을 전하듯 이 책 한 권에 써 내려간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위로, 힘을 주며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다.
그날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와닿는 글들이 달랐다.
그래서 책에 표시된 수많은 인덱스에 또 인덱스를 추가할지 모른다.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볼 생각이다. 내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백 번 잘해주고 한 번 못하면 욕하고 뒤돌아서는 게 사람.
백 번 못하다가 한 번 잘해주면 속없이 감동하는 게 사람.
왜들 '백 번'보다 '한 번'을 더 마음에 새기려는 걸까요?
우리가 마땅히 기억해야 할 건 '한 번'이 아니라 '백 번' 아닐까요? P_16
아무리 깊은 사이라도 이런 변덕스러운 감정들이 아예 오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대저 항상성이 있는 관계에는 회복탄력성이라는 것이 수반된다. 누군가를 향해 오해와 시기, 증오가 돌연 생기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아 원래의 신뢰와 지지,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 말이다. P_21
끊어지지 않고 오래가는 친구 관계의 핵심은 덤덤함이다. 널뛰지 않는 덤덤함, 사소한 감정에 관계가 휘둘리지도 않고 그저 존재 자체만으로 됐다고 여기는 진득함. 그렇게 우직하게 접착된 사이는 향초처럼 은은한 향기를 머금어 오래도록 이어진다. 독한 향수는 금세 기화되고 그전에 이미 물리기 십상이다.P_23
살아보니, 나 없는 데서 내 얘기를 좋게 한다 해서 꼭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내 얘기를 나쁘게 한다 해서 꼭 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더라. 모인 자리에서의 험담은 버릇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서로 맞장구쳐주는 것일 수도 있고 그저 배설하듯 소비하는 말일 수도 있다.(...) 자신을 헐뜯는 사람에 대해 적절히 경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무시가 상수인 것이다. 그저 무시하고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P_47
잘 산다는 게 뭐 별거 있나요? 내가 좀 '덜 한심해 보이는' 하루, '덜 못됐던' 하루, 어쩌다 한 번씩 '괜찮아 보이는' 하루, 그 하루가 그런대로 잘 산 하루겠죠, 뭐. 그런 날들이 모이고 모이면 또 인생 전체도 그런대로 잘 산 인생이 될 테고 말이죠. P_124
세월이 지나 아름다움을 인지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닌 것. 이제는 서점 바닥에 쭈그리면 허리가 아플 것이요 도서관 서가에 오래 서면 다리가 쑤실 것이다. 그저 할 일 없는 아저씨 정도로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P_144
중국 속담은 말합니다.
"누군가 이유 없이 당신을 괴롭혀 못 견디도록 그가 밉다면, 굳이 복수하려 들지 말고 강에 나가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라. 그럼 틀림없이 언젠가 그의 시체가 둥둥 떠내려오는 걸 보게 될 것이다."
이 속담이 말하고자 하는 숨은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복수하려 들지 않아도 악행이란 걸로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당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그 사람은 적정 방식으로 업보를 치를 것이다.
그러니 그저 지켜보기만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은 인과응보대로 흘러갈 것이다.
P_199
치유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위로와 격려, 그 사소한 말들이 쌓여 상처의 일부라도 봉합하고 하루하루를 버티게 합니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치유하든지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면 끝내 인간 사이에서 씻어내야 합니다. 치유의 말들이 그렇게 소독제도 되고 진통제도 됩니다. _글을 닫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