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내 삶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이다. 자신이 몸담았던 시대를 절실히 느끼며 산 사람이든, 시대의 아픔을 슬쩍 비껴간 사람이든 한 사람의 평생은 시대의 흔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온갖 풍상을 겪고 살아온 한 인물의 일생은 그 자체로 특정 시대의 역사를 대변한다. 그런 삶을 들여다보며 독자는 삶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비록 자신과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일생이라도 사람의 인생이란 별반 다르지 않고 또 자신이 처해있는 현재적 시점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삶은 시련과 고난의 나날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과거의 인물은 현재적 인물에게 자신의 삶을 투영해줄 수 있다. 그래서 현재적 인간은 과거 인간의 삶을 통해 삶의 주춧돌을 굳건히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격동의 시대를 견디어낸 인물의 삶이라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욱 삶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청년 의사 장기려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격렬한 변화의 소용돌이 시대를 산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가 시작될 무렵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태어나 일제 치하의 억압적 학교환경에서 교육을 받았고 앞날의 희망이 없는 절망적 시대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야 했던 시절이었다. 또한 해방의 물결과 함께 밀려든 이념의 갈등은 흑백의 선택을 강요했던 시대였다. 그는 이런 혼돈의 시대를 살며 오롯이 자신이 추구했던 생명 존중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 삶이기에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의 귀감이 될만한 인물로 난 주저 없이 장기려 선생을 꼽는다.


어쩌면 이 시대 젊은이를 들먹거릴 필요 없이 내 자신이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지난 해 연말부터 불어 닥친 경제 한파는 내게 극단적인 위기의식을 심어주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내 영혼을 옭죄는 사탄처럼 내 온 삶을 뒤흔들었다. 경제난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가는 나의 정신력을 다시 다잡기 위해선 누군가 내게 호되게 꾸지람할만한 분이 필요했다. 그건 나보다 훨씬 힘든 고난의 시대를 겪어온 인물이어야 했고, 그런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좌표를 잃지 않고 실천에 옮긴 분이어야 했다. 그런 분이 장기려 선생이시다.


선생은 평생 올곧은 삶의 좌표를 가슴 깊이 새기며 사신 분이다. 그런 좌표는 그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미 그의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할머니는 어린 기려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남기신다.


“기려야, 너는 옷을 여러 벌 껴입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 이 할머니는 네가 다른 사람들의 옷이 되어줬으면 싶구나. 다른 사람들의 체온을 지켜주는 , 옷처럼 늘 사람들 곁에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구나.”


뜨거운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할머니는 당신 스스로 그걸 실천하며 사신 분이다. 장기려 선생이 의사가 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분명 할머니의 이 가르침대로 그는 뜨거운 인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의사로서 장기려 선생의 인생행로는 철저히 할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었다. 의사가 되고자 했던 소망도,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 열심히 공부했던 목적도, 의사가 되어서 가난한 무의촌 지역에서 무료봉사를 했던 이유도 이런 가르침의 실천이다. 그는 돈이 없어 병원을 찾아 의사를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의사가 되고자 했으며, 단 한번의 의사의 잘못된 시술로 아까운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고의 외과의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게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의사가 되어 앞날이 창창하게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마련해준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평양의 기홀병원으로 간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실천할 수 있었기에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했다. 무의촌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는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그런 그의 곁에는 묵묵히 자신을 내조하는 아내가 있었다. 어떤 때는 월급 한 푼 가져오지 못하고 어떤 땐 집에 있는 적은 돈마저도 가져다 가난한 환자 진료에 보태는 그의 행동을 헌신적으로 밀어주는 아내가 없었다면 그도 인간이기에 삶의 현실과 이상 속에서 심한 갈등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아내도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따뜻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의 시절이 다가온다. 역사의 소용돌이는 오로지 생명 하나 살리는 삶에 전념하는 의사마저도 그냥 두지 않는다. 흑백의 갈등, 이것과 저것으로 나뉘어 하나를 강요하는 삶 속에선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다. 그건 생명을 놓고도 그렇게 저울질한다. 장기려 선생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로 이념의 강요로 생명을 헌신짝처럼 여기게 하는 역사의 흐름이었다. 내 편이 아닌 적을 치료했다고 해서 의사의 생명을 살리는 시술도 이념적 잣대가 드리워진다. 이념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이기에 그는 다른 이보다 훨씬 더 생명에 있어서도 고귀한 존재가 되는 세상. 오로지 생명 그 자체의 고귀함을 존중하는 따뜻한 인간이 어찌 이런 세상을 견딜 수 있을까?


남북으로 갈려 복수의 화신이 되어가는 세상에서 그가 설 자리는 마땅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의사로서의 소신과 신념을 갖지 못한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시술하는 의사가 어디 의사인가? 이미 이념의 벌레가 갉아먹은 영혼은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살아있으되 살아있는 게 아니요, 죽는다고 해서 이미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중환자처럼 그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채 그렇게 멀거니 누워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또한 생명의 힘이다. 그가 희미한 의식으로 누워있는 병원의 바깥에서 또 한 생명이 도와 달라 울부짖는다. 아이를 낳다 잘못되어 산모와 아이 모두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평생 그와 함께 했던 하나님의 목소리였는지, 아니면 그가 늘 마음에 품었던 할머니의 목소리였는지 알 수 없는 내면의 소리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전쟁의 시대에 어떤 의사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외면하고, 더더군다나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니기에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소신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꺼져가는 자신의 생명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했으리라.


이처럼 장기려 선생님은 철저히 자신의 소신에 충실했던 삶을 사셨던 분이다. 생명의 고귀함을 존중하기에 누구 앞에서도 의사로서 당당히 집도할 수 있었던 분이다. 오로지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전념했던 그이기에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또 이념적인 강압 앞에서도 당당히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분이다. 그런 그 분의 삶이 흔들리는 내 삶을 바로잡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혼란이 가중되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젊은이들에게도 훌륭한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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