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가늠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엔 시간이 더디 지나가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기 일쑤여서 현재의 시간을 쓸데없는 일로 허비하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돌이켜보니 내가 지나온 삶의 시간이 이제 앞으로 남은 시간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내게 죽음은 삶의 의욕을 촉발하는 매개체이다. 죽음이 떡하니 내 삶의 전방에 버티고 있기에 늘 긴장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만약 죽음이 예고되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죽음을 예감한 순간에 직면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이 책은 바로 죽음을 예감한 한 운명을 그리고 있다. 의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삶을 연장하기 위해 병원 신세를 지라고 재촉한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하고 그것을 준비하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의지는 단호하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단순히 자신의 생명줄을 연장하는데 허비하고 싶지 않은 게다. 화가로서 혼신의 힘을 다 바쳐 자신이 이루고 싶은 최후의 작품을 남기는 것, 그것이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최후의 선택이다.


이제 할아버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을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며 힘든 붓질을 한다. 그의 곁에는 그런 힘든 여정을 지켜보는 가족이 있다. 자신을 꼭 닮은 손녀 제스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힘겹게 지켜본다. 심약한 아들보다도 오히려 손녀에게 애정을 느끼는 할아버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 혼신의 힘으로 그녀의 마음에 자신의 혼을 심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할아버지가 그리고자 했던 ‘리버보이’는 그의 분신에 다름 아니다. 결국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시골의 한적한 강가로 가서야 느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모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고향 강가로 가겠다고 고집한다.


역시 할아버지의 손녀답게 제스는 그곳에서 리버보이를 만난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소년이었던 시절에 그리 했을 법한 꿈과 희망을 품고 사는 리버보이. 그는 제스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 강의 근원에서 출발하여 바다에 이르는 긴 강줄기를 따라 수영하는 리버보이를 쫓아 제스는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이 있는 브레머스까지 수영으로 도착한다. 아마도 제스가 수영했던 그 길은 먼 옛날 할아버지가 리버보이였던 시절 시도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바로 자신이 그 리버보이였던 시절 자신의 꿈과 열정을 화폭에 담고 싶어 마지막을 이곳으로 선택했을 것이다. 이제 손녀 제스는 할아버지의 진정한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것으로 할아버지는 자신의 남은 인생의 정점을 찍을 것이리라. 용의 그림을 그린 화가가 마지막 한 점으로 용의 그림을 완성하듯 할아버지는 리버보이로 인생의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찍고 자신의 인생을 완성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손녀는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림 속 리버보이가 늘 그녀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기에 그녀는 할아버지의 죽음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 할아버지의 인생이 그녀 마음을 꽉 채워 더 큰 벅찬 감격으로 긴 여운으로 드리워져 있기에 그녀는 할아버지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일 것이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란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리라.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남은 인생을 끝까지 치열하게 살다간 한 인간 앞에 숭고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생은 모두 예고된 죽음이라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년을 넘기기 힘든 인생. 고작해야 평균 80여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이 어떤 경우엔 80년, 100년이 아니라 40년 인생도 되지 못한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경우는 죽은 이후 훨씬 더 긴 여운으로 후손들에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책으로 나는 내 인생의 남은 기간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단지 남은 기간의 연령으로 계산되지 않을 더 긴 여운으로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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