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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ㅣ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기회로 서평단으로서 #켄리우 SF 단편집 #신들은죽임당하지않을것이다 를 읽었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한 #종이동물원 으로 이미 유명한 작가. 언젠가 그 소설을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집을 먼저 읽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당분간 찾아 읽을 거 같다는 생각, 말이다.
이 소설집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고, 그중에서 3편은 연작 시리즈[포스트 휴먼 3부작]다. 매력적인 소재, 몰입하게 만드는 전개, 그 나름의 개연성까지 3박자를 갖춘 소설들이었지만 특히 연작 시리즈가 재밌어서 그 부분 먼저 소개하겠다.
-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매디는 아빠의 유품(노트북)을 사용하다 의문의 채팅 메시지를 받게 되는데, 그 메시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아빠가 디지털 세상 안에 살아 있다는 충격적 진실을 마주한다. 아빠의 기억, 습관,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거대한 클라우드 세상을 받아 들여 아빠로 규정짓기 어려울 만큼 '너른 세상'이 된 아빠를 매디는 어떻게 바라 봐야할까, 그게 과연 아빠일까... 하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하는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특히 매력적이었던 것은 이 소설이 '신'을 정의/소비하는 방식이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디지털 휴먼(매디 아빠와 같은 존재)이 곧 '신'으로 지칭되며, 그들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어 인간에게 속박되지 않는다는 게 주요 골자였는데 창조자(인간)을 따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여서 섬뜩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신이란 '특정한 존재'이기만 한 게 아니라 세상을 아우르는 '시스템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서 더 와닿았다. 이 소설에서 신(디지털 휴먼)은 클라우드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각자 자유의지와 신념을 갖고 움직이는 단일체이기도 하다.
-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앞서의 소설이 작가가 생각하는 '신'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하면서 아빠라는 '만들어진', 그러나 '새로이 탄생된' 신과 무수한 신들의 존재에 대하여 말해줬다면, 이 소설에서는 직접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디지털 세상 속 아빠와 채팅 메시지로 소통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매디가 '사건'을 통하여 아빠와 생이별을 하게 되는 거다.
매디의 아빠로 대표되는 세력과 인류 말살을 꿈꾸는 빌런 세력 간의 대결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를 이루며, 디지털 세상 속의 전투가 실질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터트리며 박진감을 더한다. 흔히 '씨뿌리기와 거두기'로 일컬어지는 복선을 잘 조직하여 특히 탄탄하게 느껴졌던 단편이었다. 그 세력 간의 다툼은 어떠한 계기로, 어떻게 전개되며,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는지는 읽어볼 사람들을 위해 감추어 두겠다.
-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여기서 살짝 '스포' 하자면, 3부작의 마지막인 이 소설은 아빠의 죽음 이후를 다룬다. 매디의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디지털 휴먼' 미스트를 만나게 되는 건데, 남녀의 결합(인공수정의 방식일지라도 별개의 난자/정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 필요)으로 탄생하는 휴먼과 달리 디지털 휴먼은 따지자면 '자가수정(한 개체 안에서 이뤄지는 융합 작용)'의 방식을 취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독특했다. 사실상 생명체라고 보기 어려운, 디지털 공간(클라우드) 안을 유영하는 시스템이 곧 디지털 휴먼이기에 이 존재 역시 매디의 동생이면서 동생이 아니기도 한 복합체일 것이다.
색달랐던 점은 '굳이' 매디의 동생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미스트라는 존재를 탄생시켰다는 점에 있다. 아빠가 사라지고, 아빠의 복제품이 아닌 동생이 탄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소설을 읽고 나면 어림짐작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감춰둘 예정이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아빠는 자신 역시 살아 있을 때 미스트를 만들었고, 미스트를 직접 학습시키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동생과 친해지기 위하여 매디가 동생이 직접 세상의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도록 '기계'를 만드는 장면과 그 엉성하나 사랑이 담뿍 담긴 기계에 실린 동생이 사실 토마토의 맛과 같은 것도 이미 '경험'헤서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인간을 대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휴먼을 대해선 안 된다는 '당연한 진실'을 말해주면서 동시에, 씁쓸하기도 해서다.
신이 이 작가가 말하는 바와 같이 클라우드 세상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개개의 인식구조와 아이덴티티를 갖춘 디지털 휴먼을 의미한다면 궁금해진다.
우리는 이제 ‘신’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이미 챗GPT라는 진화된 대화형 인공지능서비스가 나타나면서 세상이 떠들썩한 현 시점에서 이 소설들에서 다룬 '신들'을 만나는 날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 SF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제 과거의 우리가 했던 방식대로 머나먼 미래를 감상하며 즐기는 '단순한 유희거리'가 아닌, 성큼 다가올 내일의 '현재'에 대하여, 그 '현재'를 살아갈 인간에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서포터'가 아닐까 한다.
이 외에 흥미롭게 본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었는데 1645년을 배경으로 명나라 양주의 주목받는 기생인 '초록꾀꼬리'와 그 종인 '참새'를 다룬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와 국가의 명에 따라 드론으로 1,251명을 죽인 아빠와 그 아빠의 자살 이후 그러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 로봇 개발에 뛰어드는 카이라의 이야기를 다룬 <루프 속에서>, 온 가족을 몰살한 불곰을 쫓아 기계마 10기와 육군 병사를 대동하고 만주에 당도한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우수리 불곰>이다.
단편집을 읽을 때 즐거운 것은 읽는 사람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흥미롭게 읽은 소설이 각각 다르다는 점일 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소설을 흥미롭게 보았다고 '선택'할지 몹시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결국에는 인간이다'라는 점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굳이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살아도 될 것 같은 세상에서도 결국 인간은 '따스한 휴먼 터치'를 원한다. 손과 손이 마주하고, 촉각하고 감각하는 일상을 '잃어버리면 몹시 '향수'하게 될 것이며, 잃지 않고자 부단히 애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켄리우의 시선은 따스하나 결코 '신파'적이진 않다. 따스한 시선이나 관조적이다. 주제의식을 투영하거나, 섣부른 결론을 내려는 방식,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집어 넣지도 않았다. 그저 판을 짜고, 그 안에 따스한 심장을 가진 주인공을 몰아 넣고, 주인공이 사건에 휘말리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한다.
허니, 켄리우는 따스하나 담대하고, 담담하나 말캉한 심장을 가진 이가 아닌가. 그러한 작가가 한 구절씩 정성스레 직조해간 느낌이 들어 이 소설집은 더욱 차근차근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