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아침의 나라
신원섭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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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 <요란한 아침의 나라>는 담담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가양시는 음험한 도시다. 위성도시 베드타운으로 개발된 지 40년이 지났고, 기나긴 세월을 거듭해 쇠락해 왔으며, 언제나 가장 가난한 자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단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도시, 가양시가 배경인 소설은 사실 요란하지 않다. 두툼한 장막 아래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소동극을 몰래 지켜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부동산, 정치, 느와르라는 강렬한 키워드가 뒤섞여 있으면서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내 주변에도 일어날 것 같은 현실감을 획득했다는 게 매력포인트다. 바로 그렇기에, 누구나 알 만큼 요란하기 보다, 모를 때는 속아넘어가기 쉬울 만큼 '음험하게' 가리워져 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활동을 하던 한 활동가가 법인의 공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한 바 있고, 약자를 돕는다는 미명 하에 활동하던 각종 단체들이 기부금 횡령 등의 사례로 적발된 경우를 보았다. 복지, 기부, 나눔, 배려라는 이름 아래서 검은 뱃속을 채우는 이들을 얼마나 많았던가. 


물론, 충실하게 헌신하는 단체와 개인도 있을 테다. 허나, 이러한 사례가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고, 그러한 사회적 운동활동을 기반으로 정치권으로 넘어가서 국민을 위하여 헌신하기 보다 제 뱃속 채우기 급급했던 정치인들이 많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세상은 '드라마'도, '동화 속의 판타지'도 아니며, 욕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소설이 내게 좋았던 건 바로 이러한 욕망을 여러 인물을 통해서 너무도 잘 보여준다는 지점에서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를 잃었다. 다수의 인물이 나와서 각자의 욕망을 좇는 건 좋은데, 너무도 쉽게 풀어간다고 느꼈던 지점도 있었고 떡밥이 회수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느와르를 좋아하는 독자의 욕심을 덧붙이자면, 소설 내에서 소위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이진수의 역할이 좀 더 보였으면 하기도 했다. 


허나 이번 서평에서 나는 좋았던 부분 위주로 이야기할 생각이다. 단점이 아닌, '아쉬운 부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느와르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살짝 변형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꼬집는 부분이 매력있게 다가와서다. 인물이 다수 등장하고, 욕망을 좇아가면서도 그 많은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냈고 구성상으로 봤을 때도 결말까지 달려가는 힘이 있었다. 


이 '몰입감'의 중심에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강렬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 덕분일 터. 간단하게 메인 주인공들의 욕망을 써보겠다. 


1. 소설의 발단은 부동산업자 한 사장의 '욕망'이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땅의 개발을 가로막는 게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집'이 소유한 쉼터 땅이라고 생각한다. 그 땅을 사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그들로부터 땅을 빼앗고자 한다. 


2. 한 사장은 전직 형사 출신인 청부용액(일명 용역깡패) 이진수를 통하여 '사랑의 집'의 비리를 파헤치고, '사랑의 집'과 대적할 만한 시민단체를 설립하기로 한다. 시민단체간의 파워게임을 통하여 가양시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있는 '사랑의 집'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3. 한 사장이 시민단체의 대표로 섭외한 '정의로운 변호사' 하나연은 사실 '고매한 신념'이 아니라, 밥벌이 전략으로 시민단체들의 자문 변호사를 자처해왔다. 


4. 이진수가 한 사장의 의뢰를 따르는 것은 '끈끈한 의리'나 '정'이 아니라, 받아야 하는 돈이 있어서다. 


5.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집'의 대표 오유라는 한때 투쟁적인 사회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내 안위, 내 밥그릇을 챙길지에 관심이 많다. 


6. 오유라의 남편 진상은 아내의 돈으로 호위호식하며 '한때는 성공할 뻔했던, 가능성이 충만한 작가'라는 역할놀이와 소싯적에 날렸던 인기에 취해 단 하나의 욕망을 불태운다. 미혼모인 고영희에게 느끼는 성욕을 자신과 영희가 나누는 '운명의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7. 일평생 '실패'만 거듭하며 살아온 고영희는 '사회적으로는 명망 있는' 오유라 부부의 민낯을 보며 착취당하던 끝에 하나연 일행을 만나서 일생 처음으로 '돈'을 갖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스스로 행동하게 된다. 


7번까지 읽었을 때 이 소설의 내용이 어떠한 방향으로 갈지 그려지면서도 궁금할 것이다. 과연 어떤 형태로, 서사로, 사건으로, 갈등과 거래로 이야기가 이뤄질까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소설 <요란한 아침의 나라>를 읽어보도록. 음험한 도시 가양시에서 저마다의 음험한 욕망을 갖고 맞부딪히는 인물들로 인하여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하고, 으레 기대했을 법한 전개로 흘러가기도 한다. 


독자의 기대를 충족해주면서 동시에 기대를 배반하기도 해야하는 게, 잘 만든 콘텐츠만이 갖는 힘이 아닐까. 단, 기대를 배반할 때가 있다면 반드시 그 내용은 소설 안에서 '설득력' 있어야 하고, 독자가 예상하던 방식보다는 '똑똑한 형태'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여성 중심의 서사로 넷플릭스 드라마 <퀸메이커>를 보았는데, 그 드라마를 볼 거면 이 소설을 읽으라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드라마는 기대를 배반했고, 영리한 방식이 아니어서다. 물론 개인의 취향 차가 있겠지만... 두터운 장막 아래 가려져 있는 사회의 민낯을 일부나마 보면서, 결말로 갈수록 '판타지'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신원섭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몹시도 궁금해진다. 조만간 소설 <짐승>도 읽고 서평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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