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사자 일공일삼 76
마이클 모퍼고 지음, 이원경 옮김, 크리스천 버밍엄 그림 / 비룡소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당신의 '아도리스블루'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약속을 믿으시나요?

글쎄요. 그럼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마이클 모퍼고의 '나비사자'를 한 번 읽어 보면 그 대답의 의심과 확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비사자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소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긋지긋한 기숙사를 튀쳐 나온 한 소년(모퍼고)이 우연히 넓은 정원을 지닌 낡은 집(스트로브리지)에 발을 들여다 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고민하던 차에 자그만한 한 할머니와 만난다.

할머니에게서 갓 구운 스콘과 따뜻한 차를 대접 받으며 우연히 창 밖의 언덕 중턱에 언듯 비친 묘한 사자의 형상을 보게 된다.

사자의 형상에 눈을 떼지 못하는 소년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버티와 나의 사자. 우리의 나비사자'에 관한 짧지 않은 아야기를 들려준다.

 

아프리카 드넓은 초원, 하지만 어린 버티에게 허락된 곳은 고작 울타리 안 뿐이었다.

버티에게 울타리 밖은 가깝지만 잡을 수 없는 동경의 장소였다.

그 동경의 장소를 현실의 장소로 이끌어 내게 한 것은 '하얀사자'였다.

어미를 잃고 지치고 여린 어린 하얀 사자 한마리.

먹이의 생존경쟁에서 특별하다는 것은 바로 죽음과 직결된다.

하지만 버티와 하얀 사자 사이의 우정은 이 특별함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하얀 사자, 아니 하얀 왕자와의 우정.

친형제처럼 함께 먹고 놀고 자고 뒹굴던 사자와의 헤어짐은 '내 고통은 이랬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버티의 반쪽을 떼어 내는 고통이었으리라.

서커스단에 팔려가는 하얀사자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한 약속, "언젠가 너를 찾을 거야. 절대로 잊지 않고 반드시 찾을 거야. 약속할께."

어떻게 잊겠는가. 자신을 잃어버린 일부를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 버티는 영국의 기숙사 학교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밀리'라는 외로운 한 소녀를 만난다.

버티가 하얀 왕자와 자신의 특별한 관계를 알아봤던 것처럼 버티는 소녀를, 소녀는 버티를 서로의 특별한 관계를 알아 봤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하얀사자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 성인이 된 버티는 대학을 다니던 중 발발한 전쟁에 지원하게 된다.

안전한 울타리를 박차고 하얀사자를 구하려 갔던 어린 시절의 버티처럼 성인의 버티도 전쟁터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진 전우들을 구하고

훈장을 수여 받는다. 그 속에서 간호사로 지원한 밀리와 재회하게 된다.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주어진 환경을 적당히 편안히 살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살고자 했던 버티의 의지가 가슴에 새긴 약속의 대상인 '햐얀 왕자'를 전쟁 속에서 만나도록 이끈 것 같다. 약속은 이뤄졌다.

 

그리고 버티, 밀리 그리고 하얀사자는  스트로브리지에 돌아왔다.

세상에 영원이란 없지 않은가. 시간은 '하얀 왕자'라 불리던 하얀 사자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버티와 밀리는 떠난 하얀 왕자의 형상을 바위에 새겼다.

그리고 마치 사자의 영혼이 제 육신을 찾아 든 것처럼 '푸른 나비 떼'들이 그곳에 날아 들었다.

'아도니스블루(날개가 푸른 부전나비)'가 움직일 때마다 하얀 왕자도 살아서 움직였다.

그것은 사람의 눈을 마음을 잡아두는 신비한 힘, 그 자체였다.

 

 

하얀 왕자도, 버티도 영원한 시간 속으로 가버린 후, 홀로 남겨진 밀리와의 만남은 그 신비한 힘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아도니스블루, 아도니스블루'... 소년, 모퍼고와 밀리 사이에 또 하나의 약속이 맺어진다.

 

 

이 책은 하나의 '퍼즐 맞추기'이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의 서로 다른 듯 닮은 모습에서 .

그런 비슷한 인물들 사이에서 하나의 약속은 또 하나의 약속을 만나 '약속의 가치'라는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소재가 된 사건들이 단지 한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도 이야기의 퍼즐을 만들어낸다.

이야기 퍼즐에 얻혀진 크리스천의 버빙엄의 그림은 비록 그게 단색이지만 따듯했다. 

만약 그의 삽화가 현란한 총천연색의 그것이었다면, 굳은 약속의 가치가 가볍게 평가절하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삽화는 마치 흑백사진이 갖는 아련한 향수처럼  '하얀 사자'에 관한 추억을 요란스럽지 않게 잔잔하게 전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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