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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세포막 안으로
김진성 지음 / 델피노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한민국 과학계의 현실을 살짝 비추어볼 수 있으면서 깊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장편 소설이 나왔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 신소재공학으로 석사를 받은 작가는 '비틀거리던 눈빛에 칼날이 보일 때'라는 과학과 관련된 소설을 출간한 바 있다.
먼저 이 소설에는 가상의 질환이 나온다. '사고패턴붕괴장애'라는 TPDD(Thought Pattern Disintegration Disorder)라는 질환이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룬다. 이는 주인공 김서연이 연구 중인 희귀 유전질환으로, 복합적인 사고 능력 붕괴로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말밖에 못 하는 증상을 특징으로 한다. 소설은 이 질환을 연구하는 나노 생화학 연구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서연이 연구 과정 중에 맞닥뜨리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촘촘하게 다룬다. 김서연이 일하고 있는 실험실은 DNA 치료제를 연구하는데, 리포솜을 이용한 방법으로 연구한다. 유전자 가위(크리스퍼) 방식으로 만들어봐야 희귀 유전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온다. 돈이 되지 않는 최신 기술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성공 여부가 확실하지도 않은, 거기에 희귀 유전질환이라 연구하는 사람도 드문 이 연구를 긴 시간 동안 진행하는 것은 도박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서연에겐 이런 도박을 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p13)"
이어 희귀질환으로 7년 동안 연구를 지속해온 김서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대가 없는 영실대학교의 현실 상 다른 학교 병원의 한자리를 빌려 임상을 실행해야 했고, TPDD의 2상 임상 과정을 진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희귀 유전질환 병동에 입원해있는 환자들에게 연구 약제를 투약하게 되는데, 대상자들에게서 정확히 원인을 모르는 주사 바늘 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터지는 코드블루 및 환자들의 사망. 임상시험 중지라는 식약처장으로부터 내려온 윗선의 연락. 주인공 김서연의 NIPT(Non-invasive Prenatal Test, 태아 DNA 선별검사) 결과가 TPDD라는 알림.
스포일러를 할 수 없어 이후의 줄거리는 생략하지만 이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프랑스 파리까지 이어지는 소설의 스케일은 책 한 권에 담기에 아까울 정도로 스펙터클했다. 소설에는 약학과가 아닌 화학공학과와 제약회사도 아닌 기업이 임상에 진행했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이 담긴 기사가 뜬다. 또한 김서연의 아기가 TPDD로 진단한 상태로 낳는다고 하면, 연구자가 자기의 욕심을 위해 아기를 이용했다는 오해를 사기 쉬운 상황이었다. 이에 유전병을 가진 아이를 낳을지 말 지 엄마로서, 과학자로서 고민하는 과정도 사려 깊게 배치되어 있었다.
'당신의 세포막 안으로'라는 제목은 소설 초반에 나오는 학부생 대상의 수업과도 관련이 깊다. 약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세포막 안으로 효과적으로 침투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과학자는 세포막을 단단하게 만들어서 진실에 가깝다고 검증된 애들만 들여보내야 한다는 주인공의 강조점이 소설에 담겨있다. 과학자로서의 윤리와 그 역할, 연구자로서 돈과 여러 절차들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사회의 통념과 그 믿음이 어떻게 한 개인을 흔들어댈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배여 있었다.
물론 소설적인 장치들이 있어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상황들이 연출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최근 본 소설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주인공의 과학자이자 엄마로서의 내면적인 고민을 살펴볼 수 있었고,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그 사이에 정형적이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어떤 반전을 몰고 왔는지 되짚어보기도 했다. 소설에는 잘 짜인 복선도 배치되어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는 것도 다시 한번 소설을 읽는 데 재미있을 부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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