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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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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때까지! 


멋진 구호이다. 누구나 외쳐 적이 있을 법한 캐치프레이즈이다. ‘하나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교회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일반 기업이나 학교, 가정, 공동체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 됨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프랜시스 챈의 언급처럼 기독교에서 하나 됨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옵션으로 전락해 버렸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 됨을 제외 시켜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의 안일한 생각에 저자는 성경을 개입시킨다. 바꿔 말해, 우리가 옵션으로 생각하는 하나 됨은 결코 성경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랜시츠 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고, 말씀을 경외할 것을 언급하며 서론-프롤로그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 앞에 서게 한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신적 말씀 성경을 따라야 한다. 


저자에 의하면 하나 됨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믿음의 부재이다.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은 번도 경험해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그가 고백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바울이 강조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5:6). 그러기에 프랜시스 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도들의 근본적인 믿음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 , 연합, 화목, 서로 사랑은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예수로 하나 까지 구호는 어떤 운동이나 이벤트적인 행사가 아니다. 신자의 믿음을 다루는 근본적인 사항이다. 


그는 3 <온전한 연합, ‘죽어가는 세상 되살리기 위한 >에서 전도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것이라”( 1:27-28) 프랜시스 챈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을 믿지 않지만, 하나님은 심판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빌립보서의 가르침대로 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협력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우리가 하나 되는 모습이 불신자들이 다가올 심판과 우리의 구원을 믿도록 만드는지는 나도 모른다.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본분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본분은 순종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사상적 토대는 성경에 대한 믿음에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부지불신간에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의 논리를 내세우는 위험천만한 습관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앞세우는 성경 본문의 해설은 매우 치밀하고 과격할만큼의 임팩트가 있다. 그는 요한복음 17 예수님의 대제상적 기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모든 것을 어떻게 믿을 있는가?(예수님의 기도처럼 세상에 지금 여기서 교회가 온전하게 연합한다는 내용이다.) 믿기에는 너무 엄청난 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신자는 성부와 성자처럼 온전한 하나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았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 서로가 온전한 연합을 이룬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것이다우리는 연합을 우리의 약속의 땅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지금 교회는 너무 심하게 분열 되어 있어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말이 되는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십자가 보다 말이 되는 것이 있는가…. 우리를 원하셔서 방법을 찾으신 하나님이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저자가 풀어내는 성경 해설은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가 분열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 교리적인 차이,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교만에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하나 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쏟을지 의문이다. 책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은 연합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기에 우리가 귀기울어야 하는 것은 연합 자체가 아닌 연합의 근간인 복음 메시지에 있다. 프랜시스 챈은 이것을 간파했다. 그는 교회 일치주의자로써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복음의 ! 그것이 하나되지 못한 우리의 분열을 치유하며, 하나되는 열망을 더욱 불지펴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루신 온전하고도 영광스러운 연합으로 하나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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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움 -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리처드 코킨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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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코킨?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인터넷을 살피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수집해 보았다. 우선, 리처드 코킨의 신학적 배경이다. 그는 복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스토트와 같은 영국 성공회 소속 목회자이다. 스토트가 그랬듯이 코킨 역시 종교개혁에 근거한 복음주의 노선을 지니고 있다. 그는 청교도를 통해신학적 회심 하였다고 한다. 그가 지향하는 신앙의 세계관이 상당히 보수적인 측면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은 충실한 신학적 비전을 가지고 지역 교회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가 섬기는 던도날드 교회는 3개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 던도날드 교회는 복음주의적 교회이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 성경에 따라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기르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 우리 교회는 역사적 종교개혁의 이해,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눈부신 혜택은 그의 천국에서의 , 지금 시작되는 삶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 눈을 돌렸을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할 있는 든든한 편안함, 그와 함께할 있는 확실한 희망의 격려, 그분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풍요로운 삶에 대한 깊은 만족감,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대한 기쁨이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고 우리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방향성을 알면 리처드 코킨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감지할 있다. 그래서 번째로 알게 된것은 교회 개척사역을 중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교회의 쇠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더이상 소생불가능한 상태로 알고 있었지만 과연 그럴까?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교회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다른 교회들도 성장하고 있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신중하게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교인들은 성경이 단지 예배용이나 성찬, 절기용 경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메시지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성경을 설명하는(Bible explaining) 교회라고도 부릅니다. 둘째는 새로운 사역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킵니다. 셋째는 교회를 개척합니다. 이를 위해 같은 교단뿐 아니라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교회라면 어떤 교회와도 협력합니다. 넷째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 가난한 이웃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학적 비전 위에 집필된당신을 위한 에베소서”(Ephesians for you) 성경에 충실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 세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에베소서 5장을 풀어가면서 과거 교회 역사에서 신학적 논쟁이 이슈였다면 오늘날에는 신학을 실현하는 논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시대에 무엇보다 도전이 되는 논쟁이 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를 갈라놓고 있는 문제인데, 다름 아닌구원에 요구되는 거룩의 필요성 대한 논쟁이다.” 코킨은 이러한 문화적인 논쟁과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에베소서 후반부의 중심주제인 거룩 혹은 성화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가 파악하는 성화의 개념을 가지 파악해 보자.


결국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추구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욕망하는 아니라 허락하신 것의 가치를 깊이 깨닫는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는 결혼 관계 안에서 누리는 성교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선물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선물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만족을 누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가르침과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가장 빈번한 충돌돌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바로 결혼이다. 성경이 동성애를 정죄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자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시지 않고 모두 받아주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죄인은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메시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확실히 결론 내리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그러나 다음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분명히 결론 지을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일삼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가 아닌 습관적으로 그러한 죄악을 추구하며 생활 방식 자체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점철된다면, 사람은 우상 숭배자라고 결론지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리처드 코킨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직하게 전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회중에게 그리고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문화의 내러티브로 전달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설교자를 꼽으라 한다면 파이퍼 또는 켈러를 있겠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없는 독특한 측면이 코킨에게서 발견할 있다. 개인적으로 켈러보다는 주해적 내용을 전달하고, 파이퍼보다는 충실한 적용을 한다고 본다. 여하튼 좋은 책과 내용, 또한 리처드 코킨이라는 목회적 모델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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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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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시고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파괴하는 일을 허락하시지만

회복하고 치유할 수단도 주셨습니다.

부디 당신에 대한 작은 불순종의 숨까지 제압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능력과 승리 안에서 

제가 무덤을 밝고 승리할 있게 하소서.

주님은 저를 낮은 , 질병의 골짜기에 두셨습니다.

너무나 낮은 이곳에서 저는 뼈가 가득한 들판에서

주님이 선지자에게 물으신 내용을 되풀이 합니다.

뼈들이 살아날 있겠나이까?

주님이 좋게 여기시는 때에 

주님이 거하시는 산으로 저를 데려가 주시길 구합니다. 

그곳 산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 사람만이 오를 있고,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지는 하나의 길은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아멘.


깊은 경건의 골짜기에서 길어 올린 던의 기도의 대목이다. 


< 밤을 걷는 기도> 저자인 필립 얀시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걷는 동반자로 초청했다. 필립 얀시는 던에 대해 언급하길도무지 어찌할 없는 이때에 우리 앞을 비출 뛰어난 스승이요, 믿을 만한 위기의 동반자 소개한다. 


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시인(Poet of God’s love)으로 불리는 그는 막연한 사랑을 읊조린 것이 아니다.   인류가 코로나로 신음할 사람들을 질문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의 일은 올바른 것인가?” 그러나 과연 그분을 질문의 대상이 아닌 아닌 대면의 대상으로 삼은 피조물은 얼마나 있을까? 


필립 얀시는 던이 기록한 <비상시의 기도문>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바로 하나님을 대면한 고뇌가 그것이다.   던의 기도는 경건 활동의 측면만이 아니라 비상적인 시기에 비상적인 기도로 하나님을 깊이 대면한 기도였다. 그러므로 필립 얀시는 그의 기도를 통해 독자를 하나님 앞으로 초청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주님을 대면할수 있도록 깊은 기도의 우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다음은 던이 질병 중에 신음하며 기록한 대목이다. 


우리의 가장 비참함이 질병이라면, 질병의 가장 비참한 부분은 외로움이다. 나를 돌봐야 사람들이 전염을 우려하며 겁을 내고, 의사조차 방문을 주저한다. 결국 나는 고립된 이곳에 홀로 누워 있으니, 이는 지옥에서도 없는 고문이다.... 나는 전염병에 감염되면서 철저히 홀로 남겨지는 독거형을 선고 받았다. 이곳이 무덤보다 못하다는 느낌 마저 든다….”


이후 이것을 묵상하는 글에서는 더욱 처절하게 외친다. 


혼자서는 고통을 견딜 없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지원이 사라졌으니 하나님 없이는 정신이 살아남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쫓아내 혼자 살게 했습니다. 영혼에 심각한 나병이 있습니까? 그래서 홀로 죽어야 합니까? 저를 위로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당신도 없이 홀로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


이제 하나님을 향한 외침은 이내 고요해진다. 


저는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불평이 신성모독에 가까워지니까요. 모세는 주님께 홀로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하나님은 홀로 있던 야곱에게 오셔서 밤새 그와 씨름하셨습니다. 사실을 생각하니 어쩌면 홀로 있고 버림받을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기에 가장 좋은 상태가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그의 고백과 묵상, 기도는 푸념섞인 넋두리로 해갈되지 않는다. 고난과 위기의 상황을 체현하면서도 동시에 어둠을 관통하는 진리의 빛줄기가 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그렇다고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암흑이며, 질병과 죽음의 위협은 도사리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둠 밖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공존해 계신다. 위기 속에 놓여진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


나는 책을 코로나와 관련해 생각했지만 특별한 상황만이 아니라 인생이 직면하는 모든 위기 속에서도 도움을 있는 묵상집으로 소개하고 싶다. 기도는 언어의 요소가 분명히 있다. 언어적 표현속에는 영성과 경건, 내면과 외면, 지식과 의지를 실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기도의 대가들의 기도문을 읽어보면 그것을 있다. 던의 기도를 현대적 상황에 맞춤시킨 필립 얀시의 글이 분명 적절한 도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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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인 교회 - 이제 우리는 올라인(All Line)으로 간다
김병삼 외 지음 / 두란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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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인 교회


책은 새로운 교회론이 아니다. 항상 있어왔던 교회의 본질적인 측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코로나 19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교회됨의 본질을 찾고있다. 그러므로 올라인 교회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닌 교회를 향한 목회적 고민과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책은 만나교회가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사역을이렇게 해냈다 것을 말하고자 하는 책이 결코 아니다. 코로나 19 처음 겪지 않은 교회가 어디 있는가!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우리 교회는무엇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 한다고 했다. 


미디어와 온라인 사역의 현장은 분명 실천적이다. 실천의 현장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토대가 되는 이론적 고민과 통찰의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열매는 보이지 않는 뿌리의 자양분으로 형성된 것이다. 


<올라인 교회> 김병삼 목사가 담임하는 분당 만나교회의 미디어, 인터넷, 온라인 사역을 소개한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만나교회는 미디어 세계에 뛰어들어 온라인 사역의 축을 구축하고 있었다. 만나 교회의 주된 목적은 예배당 중심의 교회가 아닌 선교 중심적인 철학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 사람, 사람이 교회이며, 성도들이 있는 곳이 교회가 되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목적해 교회의 철학이 어떻게 보면 코로나19 기폭제가 되어 더욱 뚜렷한 교회의 철학을 추구할 있는 장이 것이다. 


따라서 책은 크게 부분으로 나뉜다. 파트 1에서는변화 집중하였다. 코로나가 가져온 세계적인 변화에 따라 교회가 어떻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지를 논한다. 유연성은 과거와 단절하거나 획기적인 변화가 아니다.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다. 과장 대표적인 경우는 미디어 형태의 설교에서 약간의 변화를 것을 예로 있다. 대화체 설교, 토크 설교, 함께하는 설교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익숙해지기 쉬운 미디어 예배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교회의 진지함을 엿볼 있다. 


이렇듯 올라인 교회의 스피릿은 참여자 중심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선교의 영역으로 활용하여 미디어 세계에서도 교회를 하나로 엮을 있는 에너지가 창출되는 것이다. 파트 1에서 집중해야 것은 김병삼 목사의 철학이다. 그가?”라는 질문에 고민했던 문제들이무엇을’, ‘어떻게실행되게 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파트 2 교회 사역의 실제적인 전환에 대해 소개한다. 예배, 교회학교, 청년사역, 교구사역, 양육, 선교, 나눔 등이다. 부분을 읽으며 나는 가지 점에서 놀랐다. 우선 실용적인 사역이지만 막연한 효율과 효과성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경제 논리에 의거하여 적게 하여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효율성이 아닌가? 온라인 사역의 측면에서도 이런 관점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담당 사역자들의 대안은 거대하다. 사역의 분량이 거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추구하는 온라인 사역의 정신을 담아내기 위해 거대한 에너지를 쏟아붇는 했다. 양육훈련의 경우 대부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으로 끝내기 쉽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아가 양육의 본질적인 측면을 부각하기 위하여 온라인 상황 속에서 훈련자 사람, 사람을 코치하는 맞춤형 단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놀라울 밖에 없었던 것은 전문적인 사역의 방대함 때문이었다. 과연 대형교회의 온라인 콘텐츠를 중소형 교회들이 얼마나 따라갈 있을까? 물론 <올라인 교회>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철학과 사역 대안에서 적절한 아이디어를 얻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사역을 요구하는 미디어 교회를 일반 교회가 어느 정도 따라갈 있을지는 의문이다.


끝으로 책의 마지막 장점으로 마치고자 한다. <올라인 교회> 현재의 코로나 상황만이 아니라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쉽게 말해, 미래 교회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분명 코로나 이후의 교회 상황은 코로나 이전의 교회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연속성 상에서 교회됨을 구성해가는 고민과 목표가 필요하다. 책이 분명 도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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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 삶의 깊은 변화를 동반한 제자의 길 Emotionally Healthy 시리즈 4
피터 스카지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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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피터 스카지로 지음_두란노)



다리를 막 건너기 시작하는데 다리 반대편에서 오는 한 낯선 이가 보였다. 밧줄을 허리에 칭칭 감은 사람이었다. 밧줄은 풀어헤치면 족히 10미터는 될 것만 같았다. 낯선 사람은 밧줄을 풀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거의 만나기 직전 그가 말했다. “이보시오 미안하지만 이 밧줄 끝을 좀 잡아 주시겠소?” 그 말에 남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밧줄을 잡았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순간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다리 위의 남자는 하마터면 절벽 아래의 위험천만한 강으로 떨어질 뻔했다. “이 무슨 짓이오?”, “그냥 꽉 잡고 있으시오.” 남자는 황당하면서도 일단 낯선 사람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요.” “그냥 꽉 잡고 있기나 해요. 놓으면 나는 죽는 거요.”


남자는 도와줄 사람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 수록 화가났다. 엉뚱한 상황에 휘말려 언제 벗어날지 모르게 된 것이다. “원하는 게 뭐요?”… “그냥 붙잡고만 있어요. 내 목숨은 당신의 손에 달렸소.” 낯선 사람은 공중에 걸린 채 대답했다. 정말이지 진퇴양란이었다. ‘밧줄을 놓자니 사람을 죽게 놔 두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릴 테고, 밧줄을 잡고 있자니는 꿈을 향해 갈 수 없으니 어느 쪽도 답이 아니구나.’


시간은 정처 없이 흘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남자는 공중에 매달린 남자에게 방법을 설명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소.” 남자 혼자 힘으로는 낯선 사람을 끌어올릴 수 없지만 낯선 남자가 줄을 계속해서 허리에 감으면서 거리를 줄여 준다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중에 매달린 사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남자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자기 힘은 하나도 안 쓰겠단 말이오? 그렇다면 나도 더이상 밧줄을 붙잡을 수 없소!” “그러면 나는 죽소!”


순간 다리 위의 남자에게 묘안이 떠올랐다… “당신에게 계속 끌려 다니지 않겠소. 지금부터는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무슨 뜻이오?” 낯선 사람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이제 당신의 목숨은 당신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오. 스스로 선택하시오 나는 평형추 역할만 하겠소. 당신이 알아서 힘을 써서 줄을 끌며 올라오시오. 그러면 나도 상황을 봐서 조금은 당겨 주겠소.”


“농담이죠? 이기적으로 굴지 마세요. 내 목숨은 당신한테 달려 있어요. 뭐가 그리 급하시오?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오? 제발 날 죽게 내버려 두지 말아요.” 한참 침묵이 흐른 뒤에 다리 위의 남자는 천천히 말했다. “정 그렇다면 어절 수 없죠.” 남자는 밧줄을 놓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이 각색된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다음과 같은 훈수를 둔다. “모든 크리스천 리더가 다리 위의 이 남자와 같은 딜레마에 빠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정서적 영적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남들에게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그런데 끌어올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다리에서 다시 떨어지거나 스스로몸을 던진다.”


이 책의 전체 주제를 설명해 주는 씁쓸한 이야기이다. 교회가 겪고 있는 내홍은 이와 같은 정서적 불충족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충만한 제자는 자신으로부터 외부를 향해 흘러간다. 이 책은 ‘정서’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곳이 바로 경건의 요체, 신앙의 총체, 사역의 전체임을 가리킨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흔히 말하는 ‘심리적’인 처방이 결코 아니다. ‘정서’(Emotion)는 인간이 지닌 5개(육체적, 영적, 지적, 사회적, 정서적)의 한 측면이다.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정서’는 경건의 일부로 여겨지지 않았다. 단순한 인간의 감정 혹은 느낌 정도로만 수용할 뿐 ‘정서’를 교회를 세우는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마치 영지주의자들이 육체적인 부분을 도려내듯이 교회 역시 솎아내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5가지 측면을 파편화 시킬 수 있을까? 결코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수 없다. 각각의 사항들은 연결되어 있고,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이와 같은 기반 위에 ‘정서’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제자됨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한다. 


아래는 책의 큰 윤곽을 볼 수 있도록 주요한 사항들을 요약했다.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을 살핀다면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클래딩(Cladding)

* 클래딩은 진짜처럼 보이는 인조 돌
* 현대 교회 제자 훈련은 대부분 클래딩!?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제자훈련의 ‘빚나간 열심’ 곧 클래딩을 경험했고 토설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 훈련은 육중한 돌과도 같은 진짜 제자훈련으로 방향을 급선회 하라는 강력한 촉구이다.”


정서가 건강한 제자의 영어 약어는 EHD이다. Emotionally Healthy Discipleship. 

EHD는 제자의 내면 세계를 지탱하는 영적 육중함으로부터 비롯된다.

PART 1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제자훈련

1. 천하를 구원시켰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을까

(1) 우리는 정서적 미성숙을 용인했다. 

“영적 차원을 정서적 차원 위에 두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감정들을 영적인 것보다 못할 뿐 아니라 성령에 반하는 것이라는 시각으로까지 발전했다.”

(2)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을 제자로 훈련시키거나 이끄는 것은 곧 자신을 내어 주는 행위이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을 내어주는 일이다.”

(3) 우리는 교회 역사의 보물들을 무시했다. 

“역사를 무시한 채 사도행전 다음이 곧바로 종교개혁인 것처럼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을 흔히 볼 수 있다….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도 하나님과 크리스천 삶에 관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4) 우리는 성공을 그릇되게 정의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공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방식과 시간표대로 하는 것이다.”

2. 피상적인 제자가 된 나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며


EHD 제자훈련의 변화적인 모델은 자신을 “삶의 표면 아래까지 살피고 다룸으로써 ‘예수님에 의해’ 깊이 변화된 다음,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삶을 세상에 선물로 내어 준다.”

이와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제자도를 점검하는 7가지 항목을 점검한다. 그것이 바로 파트 2에서 언급하는 사항들이다. 고로 파트 2의 특징을 구현하기 위하여 일곱 가지 사항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PART 2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훈련의 7가지 특징 

3. 외적인 활동 전에 먼저 내적인 삶을 갖추게 하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예수님을 ‘위한 일’이 흘러나오는 ‘느림의 영성’(slowed-down sprirituality) 혹은 슬로우 제자훈련(slowed-down discipleship)

4. 십자가 없는 인기와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

“기독교의 측면에서 예수님을 미국화 한다는 것은 삶이 더 나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그분을 따르는 일이다… 우리는 서구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미국화 되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5. 한계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라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훈련의 핵심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계라는 개념을 신학적인 측면과 실질적인 측면에서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건강한 한계는 직장, 양육, 부부관계, 친구 관계, 이성 관계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특히, 교회라는 예수님의 새가족을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한계가 필수적이다.”


6. 슬픔과 상실은 성숙의 필수 관문임을 기억하라


“고통 중에 성장하는 법을 배우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풍성한 연민의 열매가 맺혀 그 연민이 세상 속으로 흘러넘친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사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책임 중 하나이다.”

7. 누구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의 육심을 입으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온전히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인간을 향한 사랑ㅇ을 보여주는 데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셨다……지금도 하나님은 육체를 입고서 우리에게 오신다. 그분의 몸이요 그분이 거하시는 곳인 교회를 통헤서 그렇게 하신다. 우리는 주변 살마들에게 살아 있는 하나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성육신의 믿음으로 사는 삶의 의미 중 하나이다.”


8. 과거의 힘을 깨뜨리라


“과거가 어떻게 나를 형성했는지 돌아보지 않고서는 파괴적인 패턴을 끊을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어야 후대에 좋은 유산을 전해 주고 우리의 삶을 세상에 선물로 내어 줄 수 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뼛속에눈 여전히 할아버지가 계신다… 수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제자는 자기 가문과 문화의 망가짐과 죄를 깊이 돌아봐야 한다.”


9.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라


(1) 약함의 신학을 개발하라
(2) 핸디캡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라
(3) 약함을 바탕으로 한 교회로 변화하라
(4) 매일 약함을 실천하라


Reading tip.


1. 각 항목에서 자신을 체크하는 부분을 점검하라!

2. 교회 역사의 우물에서 끌어올린 믿음의 선배들(교부, 개혁가, 복음주의자 등) 을 주목하라!

3.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사항을 자신에게 대입하라!

4. 성경 인용과 해석을 유의하라!(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이 대목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를 우선순위의 문제로 해석하는 것은 전통적인 해석이지만 과연 이 본문이 가장 적절한 인용이 될까?)

5. 제자훈련의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를 양육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이데아의 세계에 속할 수 있다. 이를 신학-목회적 철학으로 받지 않고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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