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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예수님과 같이 걷기
맥스 루케이도 지음, 박상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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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생활을 돕는 책 읽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맥스 루케이도. 나는 그를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 부르고 싶다. 독자와 그리스도를 연결시키는 스토리텔러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검색 엔진에서 ‘맥스 루케이도’를 눌렀더니 AI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는 1955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기독교 작가이자 목사로, 복음주의 계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문체로 성경의 내용을 풀어내며, 설교집, 논픽션, 어린이 책 등을 저술했습니다.”



위의 소개처럼 최근에 나온 그의 책 <예수님과 같이 걷기>는 그리스도의 행적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낸 서사이다. In the Footsteps of the Savior(구주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영어 제목이 나타내듯이 맥스는 주님의 흔적을 강하게 묘사하다.



가끔 신앙서적 작가들의 책을 보다가 필력과 상상력에 비해 성경 해석에 대한 실력이 턱없이 모자르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렇지만 맥스 루케이도는 자신의 글을 정확한 성경 이해로 한층 빛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음식 담는 그릇이 화려하고 예쁘다고 할지라도 내용물이 엉터리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나는 단단한 신학서적과 아울러 부드러운 신앙도서를 읽을 때, 반드시 루케이도의 책을 곁들인다. 그는 복음의 따뜻함을 정서에 스며들게 하게끔 역동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예수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지상에서의 생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맥스가 그려내는 주님의 발자취는 단순한 서술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삶과 행적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접속시킨다. 즉 우리가 그분의 삶에서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생에 속에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나타낸다. 그렇다. 복음의 서사를 관련시키는 것이다.



루케이도는 <예수님과 같이 걷기>에서 세 가지의 열쇠 말을 화두로 던진다. 첫째, 여행. 둘째, 일, 셋째, 길이다. 각각의 장소는 베들레헴, 갈릴리, 예루살렘이다. 성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뻔한 내용일 것이라고 에둘러 말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예수님의 탄생에서 그분의 사명을 본다. 그리고 그 사명을 우리와 접목시킨다. 이 책의 원제는 ‘구주의 발자취를 따라’이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그저 동정녀에게서 나심, 마굿간에서 태어남, 목자와 동방박사의 경배와 같은 이야기 전개가 아닌 것이다.



둘째 챕터는 구주의 사역지, 갈릴리 바닷가가 펼쳐진다. 맥스는 이곳을 우리 모두의 고향으로 일컫는다. 왜 그럴까? 갈릴리는 예수님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공생애는 갈릴리였고, 여기서 우리를 위한 위대한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길, 예루살렘이다. 이 챕터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대한 표적에 집중하기 보다는 주님의 낮아지심과 십자가 죽음에 집중하고 있다. 루케이도는 이 길을 “당신 없는 삶보다, 당신을 위한 죽음을 택하신 소망의 그곳”이라고 일컫는다. “당신은 시간을 뚫고 이 땅 가운데 오셨네 우리 없는 하늘 원치 않아 우리 삶에 오셨네 자신의 편안 버리고 우리게 평안 주셨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 삶에 오셨네”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이 길에서 우리는 소망을 발견한다.



글을 매듭지으며 <예수님과 같이 걷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그분을 신뢰할 수 있도록 격려하도록 이끈다. 예수께서 행하셨던 그곳, 그 장소가 더이상 낯설지 않고 우리의 구주를 따르도록 추동하는 제자도의 복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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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는 여덟 가지 복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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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행복을 창조하는가? 기독교가 말하는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행복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이 증폭하는 시대이다. 기독교 바깥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 이 책 <깊이 있는 여덟가지 복>은 이와 같은 다양한 질문과 둘러싼 논의들을 산 위에서 울려 퍼진 예수의 가르침으로 메아리치고 있다.

새삼스레 저자 김남준 목사를 소개한다. 그는 한국교회에 익히 알려진 저술가이다. 또한 교회를 목양하는 목회자이자 기독교 사상가, 신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년 전부터 책을 통하여 독자들과 만나는 행보는 ‘작가’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의 저작은 단순한 설교문 혹은 사상의 나열, 신학적 통찰을 전개하는 수준이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기독교와 성경의 세계로 초대하는 품격있는 작가의 정신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특징은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독교적 행복론의 진수를 밝힌다. 행복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다양하다. 체감하는 행복감 역시 각양각색이다.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행복론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태초에 행복이 있었다. 이 행복은 인간이 창출한 행복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 밖의 행복이며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행복이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있는 행복이다. 행복의 원천인 성자 하나님은 입을 열어 팔복을 발화하셨다. 그러므로 이 복은 가볍게 치부될 수 없다. 좋은 격언 정도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피상적인 행복론은 결국 파산하는 지론이 될 뿐이다. <깊이 있는 여덟가지 복>은 곤두박질 치는 우리네 행복론에 날개를 달아준다. ‘복음’과 ‘사랑’이 그것이다. 독자는 저자의 인도를 통해 팔복이 전하는 복음을 만나고, 팔복의 감격스러운 사랑에 뿌리 내릴 것이다.

둘째, 성경과 역사와의 만남을 돕는다. 독자는 저자가 행복함의 진수를 무엇으로부터 끌어 왔는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김남준 작가의 토대는 성경이다. 그 기반 위에 교회 역사의 가르침이 풍성하게 열매맺고 있다. 이 책 역시 성경을 1차 자료로 삼아 심도있는 주해와 균형잡힌 해설을 시도한다. 무엇보다 교회 역사 속에서 가르쳐 온 행복의 구심점들을 저자의 언어로 적용시킨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등 초기교회를 지나 종교개혁, 청교도,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배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행복론을 전수하며 정통의 길을 잇고 있다.

셋째, 인류의 행복 헌장으로 초대한다. ‘행복’이라는 용어는 공용어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쓰는 보편적 표현이다. <깊이 있는 여덟가지 복>은 과연 기독교인들 만의 행복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고립된 행복론을 믿어서도 안 되고, 편협한 행복론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 영국의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진실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여기에 그 방법이 있다!”라고 외쳤다. 이것은 인류를 향하여, 이 행복으로 초대하는 외침이었다. 복음과 행복은 이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은 달라 보이지만 유전적으로 동일하다. 이와 꼭 같이 복음-행복은 인간을 구원과 사랑으로 초대한다. 팔복의 사람의 원형인 그리스도에게로 귀의하라고 부르는 것이다.

넷째, 깊이 있는 해설과 단순한 표현력의 콜레보. 이 책에 대한 가장 큰 격려를 꼽으라 한다면 적응성(accommodation)이다. 자칫 깊이를 강조한 나머지 어렵고 난해한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장애물을 단순함으로 극복하였다. 그러므로 <깊이 있는 여덟가지 복>은 단문 일색이다. 혼란스러운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독자를 향한 따뜻한 배려가 내용만큼 돋보인다.

다섯째, 재생에서 재발견하다. 이 책은 각 장을 끝 맺으면서 ‘한 눈에 보는 장’으로 한 번 더 압축했다. 매우 간결하고 명료하게 저자의 논점을 설명한 것이다. 여타의 질문 혹은 스터디 자료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 왜냐하면 전체 내용을 다시 떠오르게 하면서 동시에 발전된 생각을 집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자의 핵심적 가르침을 재료로 삼아 자신만의 사고로 전개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남는 장사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이 부분을 적극 활용한다면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나 자신의 행복론을 스케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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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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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때까지! 


멋진 구호이다. 누구나 외쳐 적이 있을 법한 캐치프레이즈이다. ‘하나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교회를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일반 기업이나 학교, 가정, 공동체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 됨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 프랜시스 챈의 언급처럼 기독교에서 하나 됨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옵션으로 전락해 버렸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 됨을 제외 시켜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의 안일한 생각에 저자는 성경을 개입시킨다. 바꿔 말해, 우리가 옵션으로 생각하는 하나 됨은 결코 성경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랜시츠 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고, 말씀을 경외할 것을 언급하며 서론-프롤로그부터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 앞에 서게 한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신적 말씀 성경을 따라야 한다. 


저자에 의하면 하나 됨을 방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믿음의 부재이다.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은 번도 경험해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그가 고백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바울이 강조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5:6). 그러기에 프랜시스 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도들의 근본적인 믿음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 , 연합, 화목, 서로 사랑은 믿음을 통해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예수로 하나 까지 구호는 어떤 운동이나 이벤트적인 행사가 아니다. 신자의 믿음을 다루는 근본적인 사항이다. 


그는 3 <온전한 연합, ‘죽어가는 세상 되살리기 위한 >에서 전도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것이라”( 1:27-28) 프랜시스 챈은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을 믿지 않지만, 하나님은 심판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빌립보서의 가르침대로 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협력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우리가 하나 되는 모습이 불신자들이 다가올 심판과 우리의 구원을 믿도록 만드는지는 나도 모른다.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본분은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본분은 순종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사상적 토대는 성경에 대한 믿음에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부지불신간에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인간의 논리를 내세우는 위험천만한 습관에 빠져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앞세우는 성경 본문의 해설은 매우 치밀하고 과격할만큼의 임팩트가 있다. 그는 요한복음 17 예수님의 대제상적 기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모든 것을 어떻게 믿을 있는가?(예수님의 기도처럼 세상에 지금 여기서 교회가 온전하게 연합한다는 내용이다.) 믿기에는 너무 엄청난 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신자는 성부와 성자처럼 온전한 하나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았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 서로가 온전한 연합을 이룬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것이다우리는 연합을 우리의 약속의 땅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지금 교회는 너무 심하게 분열 되어 있어서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말이 되는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십자가 보다 말이 되는 것이 있는가…. 우리를 원하셔서 방법을 찾으신 하나님이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저자가 풀어내는 성경 해설은 매우 근본적이면서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명확하게 밝혀준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가 분열하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은 인간적인 관계, 교리적인 차이, 환경적인 요인보다는 주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교만에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하나 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쏟을지 의문이다. 책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방향은 연합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기에 우리가 귀기울어야 하는 것은 연합 자체가 아닌 연합의 근간인 복음 메시지에 있다. 프랜시스 챈은 이것을 간파했다. 그는 교회 일치주의자로써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복음의 ! 그것이 하나되지 못한 우리의 분열을 치유하며, 하나되는 열망을 더욱 불지펴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루신 온전하고도 영광스러운 연합으로 하나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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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움 -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리처드 코킨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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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코킨?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인터넷을 살피며 이런 저런 정보들을 수집해 보았다. 우선, 리처드 코킨의 신학적 배경이다. 그는 복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스토트와 같은 영국 성공회 소속 목회자이다. 스토트가 그랬듯이 코킨 역시 종교개혁에 근거한 복음주의 노선을 지니고 있다. 그는 청교도를 통해신학적 회심 하였다고 한다. 그가 지향하는 신앙의 세계관이 상당히 보수적인 측면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은 충실한 신학적 비전을 가지고 지역 교회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가 섬기는 던도날드 교회는 3개의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1) 던도날드 교회는 복음주의적 교회이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 성경에 따라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기르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 우리 교회는 역사적 종교개혁의 이해,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해서만,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서, 오직 믿음에 의해서, 오직 성경에 의해서만,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눈부신 혜택은 그의 천국에서의 , 지금 시작되는 삶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 눈을 돌렸을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할 있는 든든한 편안함, 그와 함께할 있는 확실한 희망의 격려, 그분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풍요로운 삶에 대한 깊은 만족감, 그리스도의 의로움에 대한 기쁨이 우리의 것으로 간주되고 우리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교회의 방향성을 알면 리처드 코킨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감지할 있다. 그래서 번째로 알게 된것은 교회 개척사역을 중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교회의 쇠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더이상 소생불가능한 상태로 알고 있었지만 과연 그럴까?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교회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다른 교회들도 성장하고 있다고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신중하게 가르칩니다. 이를 통해 교인들은 성경이 단지 예배용이나 성찬, 절기용 경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메시지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성경을 설명하는(Bible explaining) 교회라고도 부릅니다. 둘째는 새로운 사역을 위해 젊은이들을 훈련시킵니다. 셋째는 교회를 개척합니다. 이를 위해 같은 교단뿐 아니라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교회라면 어떤 교회와도 협력합니다. 넷째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 가난한 이웃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학적 비전 위에 집필된당신을 위한 에베소서”(Ephesians for you) 성경에 충실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교회 세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에베소서 5장을 풀어가면서 과거 교회 역사에서 신학적 논쟁이 이슈였다면 오늘날에는 신학을 실현하는 논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 시대에 무엇보다 도전이 되는 논쟁이 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를 갈라놓고 있는 문제인데, 다름 아닌구원에 요구되는 거룩의 필요성 대한 논쟁이다.” 코킨은 이러한 문화적인 논쟁과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에베소서 후반부의 중심주제인 거룩 혹은 성화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그가 파악하는 성화의 개념을 가지 파악해 보자.


결국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추구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욕망하는 아니라 허락하신 것의 가치를 깊이 깨닫는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교회는 결혼 관계 안에서 누리는 성교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선물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와 더불어 그러한 선물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만족을 누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가르침과 성경의 가르침 사이에 가장 빈번한 충돌돌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바로 결혼이다. 성경이 동성애를 정죄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자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시지 않고 모두 받아주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은 죄인은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메시지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확실히 결론 내리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그러나 다음 문제에 관하여 우리는 분명히 결론 지을 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을 일삼으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일시적으로가 아닌 습관적으로 그러한 죄악을 추구하며 생활 방식 자체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점철된다면, 사람은 우상 숭배자라고 결론지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리처드 코킨은 바울이 에베소서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충직하게 전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회중에게 그리고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문화의 내러티브로 전달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설교자를 꼽으라 한다면 파이퍼 또는 켈러를 있겠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없는 독특한 측면이 코킨에게서 발견할 있다. 개인적으로 켈러보다는 주해적 내용을 전달하고, 파이퍼보다는 충실한 적용을 한다고 본다. 여하튼 좋은 책과 내용, 또한 리처드 코킨이라는 목회적 모델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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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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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시고 가장 은혜로우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 파괴하는 일을 허락하시지만

회복하고 치유할 수단도 주셨습니다.

부디 당신에 대한 작은 불순종의 숨까지 제압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능력과 승리 안에서 

제가 무덤을 밝고 승리할 있게 하소서.

주님은 저를 낮은 , 질병의 골짜기에 두셨습니다.

너무나 낮은 이곳에서 저는 뼈가 가득한 들판에서

주님이 선지자에게 물으신 내용을 되풀이 합니다.

뼈들이 살아날 있겠나이까?

주님이 좋게 여기시는 때에 

주님이 거하시는 산으로 저를 데려가 주시길 구합니다. 

그곳 산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 사람만이 오를 있고,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을 가지는 하나의 길은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아멘.


깊은 경건의 골짜기에서 길어 올린 던의 기도의 대목이다. 


< 밤을 걷는 기도> 저자인 필립 얀시는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걷는 동반자로 초청했다. 필립 얀시는 던에 대해 언급하길도무지 어찌할 없는 이때에 우리 앞을 비출 뛰어난 스승이요, 믿을 만한 위기의 동반자 소개한다. 


인가? 하나님의 사랑의 시인(Poet of God’s love)으로 불리는 그는 막연한 사랑을 읊조린 것이 아니다.   인류가 코로나로 신음할 사람들을 질문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의 일은 올바른 것인가?” 그러나 과연 그분을 질문의 대상이 아닌 아닌 대면의 대상으로 삼은 피조물은 얼마나 있을까? 


필립 얀시는 던이 기록한 <비상시의 기도문>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바로 하나님을 대면한 고뇌가 그것이다.   던의 기도는 경건 활동의 측면만이 아니라 비상적인 시기에 비상적인 기도로 하나님을 깊이 대면한 기도였다. 그러므로 필립 얀시는 그의 기도를 통해 독자를 하나님 앞으로 초청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주님을 대면할수 있도록 깊은 기도의 우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다음은 던이 질병 중에 신음하며 기록한 대목이다. 


우리의 가장 비참함이 질병이라면, 질병의 가장 비참한 부분은 외로움이다. 나를 돌봐야 사람들이 전염을 우려하며 겁을 내고, 의사조차 방문을 주저한다. 결국 나는 고립된 이곳에 홀로 누워 있으니, 이는 지옥에서도 없는 고문이다.... 나는 전염병에 감염되면서 철저히 홀로 남겨지는 독거형을 선고 받았다. 이곳이 무덤보다 못하다는 느낌 마저 든다….”


이후 이것을 묵상하는 글에서는 더욱 처절하게 외친다. 


혼자서는 고통을 견딜 없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지원이 사라졌으니 하나님 없이는 정신이 살아남을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병에 걸린 사람들을 쫓아내 혼자 살게 했습니다. 영혼에 심각한 나병이 있습니까? 그래서 홀로 죽어야 합니까? 저를 위로할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당신도 없이 홀로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


이제 하나님을 향한 외침은 이내 고요해진다. 


저는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불평이 신성모독에 가까워지니까요. 모세는 주님께 홀로 나오라는 명령을 받았고, 하나님은 홀로 있던 야곱에게 오셔서 밤새 그와 씨름하셨습니다. 사실을 생각하니 어쩌면 홀로 있고 버림받을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기에 가장 좋은 상태가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그의 고백과 묵상, 기도는 푸념섞인 넋두리로 해갈되지 않는다. 고난과 위기의 상황을 체현하면서도 동시에 어둠을 관통하는 진리의 빛줄기가 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그렇다고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암흑이며, 질병과 죽음의 위협은 도사리고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둠 밖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공존해 계신다. 위기 속에 놓여진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


나는 책을 코로나와 관련해 생각했지만 특별한 상황만이 아니라 인생이 직면하는 모든 위기 속에서도 도움을 있는 묵상집으로 소개하고 싶다. 기도는 언어의 요소가 분명히 있다. 언어적 표현속에는 영성과 경건, 내면과 외면, 지식과 의지를 실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기도의 대가들의 기도문을 읽어보면 그것을 있다. 던의 기도를 현대적 상황에 맞춤시킨 필립 얀시의 글이 분명 적절한 도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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