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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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생계형 번역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저자 이다희님의 첫 에세이인 <사는 마음>. 이 책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 저자의 마음과 가장 소중한 순간을 선사해 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얼마 전부터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조금씩 놓게 되면서 이 책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더욱 많았던 것 같다. 저자는 물건을 살 때, 혹은 갖고 있는 물건을 계속 소유할지 말지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저울질을 통해, 소비와 소유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이야기 한다

저자의 말처럼, 모든 물건들에는 추억, 애정, 열정, 시간 등 많은 소중한 것들이 담겨져 있다. 이 물건들을 정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슬픈 일 혹은 고통스러운 일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들을 우리를 돌봐주었던 물건들에 대해 고마움과 따스한 감정으로 마무리 한다.

우리가 물건을 돌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물건들이 우리를 돌보기도 한다. 각자 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물건들에 대한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결국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까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외면와 내면의 정리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책 :)

📖 세상은 보다 진취적으로 생각하고 만들고 이루어 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하지만 지구는 손쉽게 버리고 새로 구매할 수 있다. 지구를 돌보는 마음, 그 마음의 귀중함과 힘, 잠재력에 주목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나의 손때 묻은 물건들은 말한다.

📖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면 사지 않기,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다워지는 물건을 사기, 그동안 나를 기쁘게 했던 물건이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남에게 주거나 버리기. 가만 보니 이 원칙은 새 인연을 만들 때도 쓸 수 있겠다. 특히 폐기가 쉽지 않은 인연을 맺으려는 사람들은 꼭 참고 바란다.

📖 내가 가진 특권을 바로 보고 감사히 여기며 시샘하던 사람을 더 이상 비아냥 거리지 않는 데 그친다면 부족하고 무책임하다.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말과 행동으로 돕지 않는다면 모든 성찰의 시간과 귀 기울인 시간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
- 이 서평은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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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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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우유, 피, 열>. 이 책 속의 열한 편의 소설은 독자에게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에너지, 붉고 하얀 색감, 퀴퀴하고 야릇한 냄새 등 모든 감각을 생생하게 건드리는 기이한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고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 지레 짐작만 할 수 있었던 이 감정을 책을 덮은 후에 비로소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읽기 전과 다 읽은 후의 느낌이 무엇보다 선명한 책이었다. 책의 제목도 표지의 작품도 개인의 견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완독 후의 감정은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금은 아쉬웠던 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각 단편마다 한 인격체로서의 느낌보다 여자로서의 입장이 두드러졌던 책이라는 부분이 아쉬웠다. 작가의 문체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좋았으나, 한 여자가 아닌 한 인간의 입장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유익했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매혹적이고 자극적이면서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던 열한 편의 소설들이 저자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가볍진 않지만, 한 번쯤은 읽어보기에 추천하는 책 :)

📖 그러나 나는 이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임을, 그 아래엔 근육이 있고 빛을 발하는 어떤 진실이 있음을 안다. 나는 이미 그 생명체의 말을 들었다. 가끔은 부서진 몸을 먹어치우고 세포 하나하나를 소화시킨 뒤 새로운 시작을 맛보아야만 하는 거야.

📖 제이의 소원은 부모에게 죄지은 자가 되는 것과 갇힌 자가 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으냐고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지만, 엄마는 진실을 두려워하고 아빠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진실의 초대를 받고 들어가 그 신선한 열매를 받아 든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이제 제이는 안다.

📖 나는 기억의 벽을 손톱으로 기어올라 빠져나온 뒤 다시 차 안으로 돌아온다. 적어도 빛이 있고 아를로는 재에 불과한 곳, 그저 아버지이기만 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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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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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철학자 김진영님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기록하신 일기들의 모음이다. 저자의 작품으로 유명했던 <아침의 피아노>와 <이별의 푸가>를 접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조용한 날들의 기록>을 통해 이 책과 저자의 이름이 더욱 깊이 각인될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메모 혹은 일기라는 것이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고, 사사로운 이야기들도 많기에 그간 쉽게 손이가지 않았는데, 그의 기록은 달랐다. 각 글들의 모임이 깊은 사유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깊이를 다루고 있었다.

그의 인생은 매순간 그의 생각들로 얼마나 가치있었는지 증명과도 같은 책이었다. 이런 책을 읽고 사사로운 나의 감정을 적는다는 게 부끄러워질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꼭 추천하고싶은 유고 에세이이다.

오래도록 곱씹고, 또 곱씹고만 싶은 글들.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의 모든 감정은 너무도 고귀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그는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며, 추천하는 책 :)

📖 '몰락은 가깝고 구원은 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한 줄을 덧붙인다:
'••••••그런데 빛이 있다. 아주 희미한, 그러나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어떤 빛이 있다. 이 빛은 무엇인가?'

📖 누구나 죽는다. 시인도 죽는다. 죽은 시인은 누굴까. 그는 용서받아도 되는 죽은 사람이 아닐까, 라는 마음으로 매일 김수영의 시를 몇 편씩 읽는다. 죽어서 용서받고 싶다는 소망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픔을 미워하지 않는 걸까.

📖 모든 이미지들이 사라졌다. 나는 영원히 나를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들은 이렇게 속수무책이 된다. 그래서 모든 딱딱한 것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레닌은 말했던가. 일들은 결국 도리가 없어진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서서히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에 초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코프스키로 남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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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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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서 방출된 전기를 띤 입자들이 지구의 자기장에 잡혀 이끌려 양 극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지구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내게 된다. 이 때 대개 중의 어떤 성분과 반응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색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신의 영혼'이라 불리는 오로라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정령들의 춤'이라고 불리며, 중세 유럽에서는 신의 계시로 여기거나 하늘에서 타오르는 촛불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던 오로라는 1619년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이 살던 위도에서 오로라가 붉게 보이기에, '북쪽의 새벽노을'이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어느정도의 기다림 끝에 오로라를 볼 수 있었는지 글과 사진을 통해서 내가 오로라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생생한 느낌을 전해받을 수 있었다.

오로라 사진을 접할 때마다, 실제 오로라를 직접 눈으로 관찰한 느낌은 얼마나 경이로울지 생각해보게 되는 매순간이었다. 이 책을 보면, 정말이지 누구나 오로라를 마음 속에 품게 될 것 같다.

추가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여름 시즌과 겨울 시즌의 각 장단점과 계절별 팁들, 모두 직접 경험하셨던 호텔, 볼거리, 쇼핑, 먹거리 등 사진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어서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었다.

본래의 직업을 그만두고, 천체사진가라는 직업으로 전향하기까지 저자에게 많은 고민이 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하여, 오로라에 대한 애정으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중한 오로라 사진들을 남겨주시고 관련 책을 출간해주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간접적으로 오로라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오로라 관련 최고의 책 :)

📖 밤하늘에 신의 영혼이 춤추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눈 덮인 언덕 위,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빛깔 오로라가 떴다. 어릴 적 만화에 나오던 오로라 공주의 이미지처럼, 극지방의 차가운 밤하늘을 빛으로 물들이는 오로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대상이다. 그 동네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신의 영혼'이라 부른다고 한다.

📖 오로라는 태양의 11년 활동 주기에 맞추어 극대기와 극소기가 반복된다. 지난 주기 최대의 흑점 폭발이 있고 나서, 2주 동안 오로라 폭풍이 밤마다 나타났다. 오로라가 굽이치며 머리 꼭대기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 거대한 빛의 너울거림 앞에 서면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받게 된다.

📖 오로라를 처음 보게 되면 생각보다 크다는 것에 놀란다. 밤하늘을 가득 덮기에 시야를 벗어나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밝고 움직임이 빠르다. 달이 뜨면 그 빛 때문에 은하수나 별들이 잘 안 보이게 되는데, 오로라는 잘 보였다.
- 이 서평은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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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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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조금만>은 질문은 가장 중요한 인간의 조건이며, 사람과 사물과 사건, 그 이면의 것을 언어의 힘으로 포획하고자 하는 욕구, 거기에 초유의 문장이 곁들여진다며, 모든 사람은 고유의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이충걸님의 인터뷰집이다.

18년간 <GQ KOREA>의 전 편집장이기도 했던 그의 프롤로그조차 나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정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글이었다.

최백호, 강백호, 법륜, 강유미, 정현채, 강경화, 진태옥, 김대진, 장석주, 차준환, 박정자까지 11인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이름만 들어도 대개 알만한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한 사람씩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 마인드에 대해 접하는 것은 생소한 만남이었다.

내가 느낀 11인의 공통점은 평온함 속에 강인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상황에 따른 불안을 넘어서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느껴지면서도, 그 속에 있는 각자의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사색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이고, 기호를 곁들이고, 마지막 순간에 그것들을 조직했다는 말 그 자체가 이 책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내면의 깊이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지금껏 읽었던 인터뷰집 중에 가장 의미있었다.

이 책을 덮자, 11인의 이야기가 마음 속에 새겨진다. 낭만에 대하여가 듣고싶어지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마음 속 깊이 담기는 뜻깊은 책을 만났다.

📖 그들의 이야기는 희망 대신 도그마를 재생산하는지도 몰랐다. 양초 심지에 붙은 불꽃처럼, 도그마가 깊이 새겨질 때 희망은 흔들릴 것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덧없음 속에서. 그러나 음악을 그토록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연주자가 영원히 연주할 수는 없다는 사실 아닌가?

📖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것은 표현의 방식이 아니라 표현의 목적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전적인 실망과 사라지는 욕망에 달려 있다 해도, 이렇게 나약한 인생의 한 코너에 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 그가 이해한 세상이 물리적인 것이든 아니든, 인생은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의 몫. 결국 자기가 이해하는 풍경의 아름다움만이 스스로를 건져 올릴 것이다. 노자 같은 생존법으로 피겨 정글북의 모글리가 된 소년이 그런 것처럼.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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