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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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면서 지금 20대, 대학생과 막 사회에 진출하려는 졸업생(?)에 대해 시선이 집중 되었더랬다. IMF이후 달라진 사회 진입의 어려움에 대하여 공감해주는 책들이 출판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다.
 
먼저 만났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나서 청춘에 대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 같아 실망을 많이 했더랬다. 청춘만 아픈가? 지금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 중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들이 징징대는 아픔은 어딘가 등따숩고 배부른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소수의 그것도 상위권 레벨에 재학중인 대학생만이 할수 있는 고민에 한정되어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사두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또 청춘에 대해 배부른 소리를 하겠거니 했나보다. 그런데 막상 손에든 이 책은 생각과 달랐다.
 
어딘가 뒤틀려진 곳에 끼어버린, 생각도 열정도 없다고 생각되었던 청춘 - 그들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책에는 정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 모든 것이 청춘때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평생 생각하고 또 생각해볼 주제들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들어있었다. 제대로 된 교육 속에서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는 청춘 - 그네들의 언어에서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는 느낌을 받았다.
 
 
 
두 책은 '거위의 꿈'을 부른 가수들에 비교할수 있을 것 같다.
 
김난도 교수의 청춘은 김동률&이적의 버전.
엄기호 교수의 청춘은 인순이의 버전.
 
'거위의 꿈'은 김동률과 이적의 프로젝트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그 앨범에 들어간 곡들은 하나같이 다 좋다. 그때에도 무척이나 인기가 있기는 했지만 인순이가 다시 부르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된 곡이다. 김동률과 이적이 부른 버전보다 인순이의 버전이 라디오에서 훨씬 더 많이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김동률과 이적의 음성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훨씬 듣기에는 좋으나 다른 측면에서 인순이 버전의 가치를 존중할 수 밖에 없어진다. 김동률과 이적이 부를 때에는 그저 좋은 시같이 여겨졌던 노래가 스토리를 가진 인순이가 부르면서 소위 가사에 걸맞는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김동률 - 연대, 이적 - 서울대라는 그들의 출신은 이 노래에 스토리를 입히는데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이 노래를 접했던 나 역시 그런 대학들에 대한 컴플렉스로 어떻게든 위로 놓인 계단을 밟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그들의 배부른 고뇌(?)에 공감하기보다는 좋은 음성의 노래를 즐기는 데 그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학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해서 들어간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남들이 보기에 멀쩡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에도 난... 다시 꿈을 꾸고 고뇌한다.
 
아이들의 교육, 소통하는 가정, 꿈꾸는 자아, 늘 부족한 돈 등에 관하여 말이다.
 
 
<거위의 꿈>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히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등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책에서...
 
p54
용기있는 한 친구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하게 대학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그보다 더 못한 기득권을 가지고서도 자신은 바들바들 떨면서 그 자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떡은 형편없이 작다. 그런데도 바보같이 그걸 움겨뷔고 살아남아보겠다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으니 어리석기 그지없다. (중략) 아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할 권리 따위는 없다.
 
p58
이 모든 호칭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성장이 청체된 '잉여'이다.  대학생에 대한 호칭은 '지성인'에서 '잉여'로 넘어갔다.
 
p62-63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곧바로 성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때부터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기간을 조금이라도 유예해보고 싶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대학에 가면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한 채 삶에 대한 책임감을 유예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p74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대안의 부재'이다. 우리도 역사에서 경험했다. 대인이 없는 혁명은 미완으로 그치고 만다.
 
80
영화는 항상 감동적인 승리와 함께 '끝'이 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 엔딩 자막 '이후', 그것이 더 중요하다. 거기에 진짜 삶이 있다.
 
p88
대학생들을 '철딱서니'없다고 말하지만 혜교가 보기에 오히려 그들이 돌봐야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꼬락서니'이다.
 
p109
'열린 교육'에서는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무조건 손을 들고 뭔가를 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경험한 '열린 교육'은 조용히 있을 자유, 혹은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였다.
(중략)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폭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입 닫고 가만히 있을 의무를 강요했다면, 열린 교육은 무조건 말해야 하는 의무를 강요한 셈이다.
 
p114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집이 잘살고 못살고, 힘이 세고 약하고에 따라 학교와 교실은 촘촘하게 위계화 되어있다. '우정'은 그 권력의 벽을 넘지 못한다.
 
p127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주부'라는 사람은 없고 단지 육아와 교육, 금융에 전문가급의 매니저가 된 중산층의 '주부'와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일하는 '주부', 그 둘만이 존재한다고 말이다.
 
p137
소통은 감정노동이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의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 가족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p140
우리 가족이 이미 상처투성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기 보다는 중산층 이상의 가족과 비교해 우리 가족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게끔 교육받았다고 지적한다.
 
p220
대가가 없다는 이유로 무언가에 대한 열정을 너무도 쉽게 삽질로 만들어버리면서 우리는 오히려 세상의 가치에 얽메이고 너무나 많은 것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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