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소설전집 9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2012.7

 

모든 것을 다 가진 언니가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한 또는 모든 것을 다 빼앗고도 그 동생을 평생 질투하는 얘기.

 

살다보면 수많은 경쟁관계에 놓이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친구와 입시를 두고 경쟁관계에 놓이게 되고 사회에 나와서는 옆자리 동료와 실적과 승진관계를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 경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가족,형제간의 관계역시 예외는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두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두고 우리는 한없이 경쟁한다. 몰래 숨겨둔 과자를 동생들이 먹어버렸을때의 분노감. 내 옷을 입고 쏙 외출해버리는 동생에 대한 원망. 무언가 이쁜짓을 해서 나보다 더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때의 경쟁심 등 드러나있는 것과 드러나있지 않은 의식이 알아차지 못한 것까지 무한 경쟁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쟁으로 인해 실제로 가족에게 친구나 동료에게 해꼬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각종 컴플렉스라 이름붙여져있는 갈등 - 미워하는 마음만 생길뿐 실제로 그 마음을 실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운 마음이 실행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재벌 아들이 반한 가난한 여자와의 결혼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방해하는 어머니, 친 동생에게 해꼬지하는 언니 등등은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되는 것 같다. 또 실제로 실행하지 못한 무의식이 실행되는 드라마나 소설을 통한 대리만족 때문에 사람들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야기에 너무 몰입해버리는 습성때문에 이전의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그닥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너무 몰입하다보면 비현실이 때로는 현실인양 착각할까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경험했던 환상이 현실로 돌아오면 가끔 현실이라 다행이다 싶고, 대부분 현실이 구질구질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지금이 현실이라 다행인 전자에 해당되지만, 마음이 아렸다. 언니. 이모같은 정감어린 단어가 이렇게 아픈관계로 표현될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p16

아내는 자신의 심상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평화로움에 의해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방금 부린 추태를 생각하고 심한 수치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혼란을 남편이 너그럽게 토닥거려주길 바랐다. 바둑판으로 쏟아져 내린 남편의 차갑고 반듯한 이마가 그녀의 이런 갈망을 냉소하는 것처럼 보여 그녀 역시 허둥지둥 배타적인 기품을 회복하고 뜨개질거리를 집어들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지금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했을 적에도 그녀가 정말로 위로받고 싶을 때 위로받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위로받을 수 없다는 데 이골이 난 나머지 위로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기가 센 여자로 스스로를 다스렸을 뿐 자기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가 참말로 위로받고 싶었다면 그녀의 일곱 살을 그렇게 꽁꽁 움켜쥐지는 않았을 것이다.

 

p139

그걸 모른다고 해도 결코 순진해지진 않습니다. 배운 공부는 안하면 잊어버리게 되지만 나이와 학별과 함께 터득한 현실감각, 세상 사는 이법이야 남 줍니까?

 

p155

그는 목표가 전혀 어긋났다고까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미 도달해버렸다는 데 절망했다.

무지개는 가능성이었다. 그가 상실한건 무지가개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p159

더이상 무지개일 수 없게 된, 그가 엉겁결에 도달하고 만 성공이라는 것의 정체의 그 보잘 것 없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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