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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레시피 - 39 delicious stories & living recipes
황경신 지음, 스노우캣 그림 / 모요사 / 2011년 5월
평점 :
밥 먹었니?
먹었으니까 신경쓰지마.
지금이 몇신데 밥도 안먹었을까봐?
늦은 퇴근에도 어김없이 엄마는 밥 먹었는지를 먼저 물어보신다. 회사에서 밥도 안먹이면서 일 시키지는 않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한때는 엄마가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짜증나기도 했다.
남편도 매번 밥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나는 퇴근하는 남편에게 밥 먹었느냐고 물어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 남편보다 먼저 퇴근하는 날이면 밥 먹었는지 물어보게 된다. 오히려 남편이 먼저 퇴근해있을때, 나에게 밥 먹었는지 묻지 않으면 섭섭하기까지 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이기 때문일까...
또. 음식에 관한 나의 이야기 한가지 더.
고등학교 1~2학년때는 어찌나 그렇게 잠이 쏟아지던지...
7:50까지 학교에 등교하면, 정규수업전 1시간의 보충수업이 있었다. 나는 그 아침 시간에는 늘 잠을 잤다. 8:15쯤 되면 아예 책상에 작은 쿠션을 올려놓고 대놓고 업드려 자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자도 선생님들께 혼난 적이 거의 없다. 물론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서 안혼난건 아니고, 공부는 대충하니 선생님이 신경 안써도 대학이라는덴 갈 정도고, 관리를 해줄만큼 잘하지도 못하고 특별히 학교에서 사고 안치는 범생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라는 내 추측이다.
하여간 한참을 자고 눈을 뜨면 어김없이 정규수업이 2교시쯤 끝나있었다. 한시간만 지나면 점심시간인데, 그걸 참지못하고 늘 도시락을 까먹었다. 친구들도 자던 나를 굳이 깨워 밥을 먹자고 했던 것 같다.그리고나서 하루를 시작했던 그 고교시절... 그때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이 달라져있을까...-.-
「위로의 레시피」는 정말 위로가 되는 책인 것 같다. 음식에 얽힌 저자의 경험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은 위로 10년차이나는 저자의 학창시절의 경험은 아래로 10년 차이나는 요즈음 직장 새내기들과의 차이보다 덜 어색했다는 거다. 대학 그 시절이 다시금 생생하게 떠올라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under the recipes에서는 가볍게 만날 수 있는 음식에 얽힌 얘기들이다. Over the recipes가 되면 음식에 얽힌 추억들의 깊이가 깊어진다. beyond the recipes에서는 살짝 소설같은 분위기까지 보여진다. Over the recipes부분부터는 메모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았다. 특히 '인터뷰라는 이름의 요리' 와 '나는 너의 밥이다'라는 두 파트는 천천히 두번을 정독했을 정도다. 음식에 얽힌 이야기일 뿐인데도 이렇게 마음을 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눈물 섞인 밥을 먹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일까?
이 책은 작가보다도 삽화를 그린 권윤주의 스노우캣에 끌려 서평 신청을 했던 책이다. 나의 성격이 사회생활을 그래도 잘 해내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혼자놀기가 좀 더 유리한 편이라 특히 좋아했던 '혼자놀기'로 유명한 고양이 삽화를 기대했는데, 삽화는 기대에 덜 미쳤고, 글은 기대 이상이었다.
같은 저자의 책이 또 읽어야할 물망에 오른다면 냉큼 집어들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p84
언젠가 한번 화려했던 것들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드는 것이다.
p200
해가 이토록 열심을 다해 뜨는데, 이토록 장엄하게 하루가 시작되는데, 이 눈부신 기적을, 화려한 선물을 나는 지금까지 무시하고 소비해온 거야, 잊어버리면 안돼, 저 해를. ... 낯선곳에 이를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사랑을. 지나간 사랑이란 추억 속에서 상기되는 것인 줄만 알았다. 물리적인 이별은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했다. ... 스스로 맞지 못했던 수많은 내일들과 소중하게 끌어안지 못했던 사랑들 때문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 무미한 일상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p201
각성의 순간은 너무 쉽게 지나가 버렸다. 나의 날들은 여전히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터무니없이 쉽게 보내버린 시간들은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무의미하게 굴러다닌다.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중요하지도 않은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며 하루를, 일년을, 그리고 평생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온 힘을 다해 새롭게 시작되는 하루를,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기적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p210
하루라는 시간 안에는 분명 터무니없이 깊고 긴 시간도 있었는데, 그 자리에 못을 받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아 멍해진 적도 있었는데, 이렇다 할 흔적도 없이 또 며칠이, 몇 주가, 몇 달이 지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p223
내가 알 수 있는 일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어쩐지 점점 많아지는 듯하지만, 알 수 없는 것들로 인해 가끔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그러므로 당신이 모르는 나에 대해, 내가 모르는 당신에 대해, 우리 서로 많은 것을 묻지 말기를.
p235
열심히 하라고, 최선을 다하라고, 힘을 내라고, 그런 이야기들이 지겨워질 때가 있다. 그렇게 되려고 그렇게 되고, 되지 않으려고 되지 않는 일들도 세상에는 있다. 나의 노력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그럴 때는 차라리 온몸의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게 낫다.
p241
그리고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순간부터 제대로 된 답을 조금씩 찾게 된다.
p243
내가 서 있는 것은 언제나 시간의 한 점, 하나의 순간이다. 그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면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공유하는 것은 하나의 점, 하나의 선,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삶의 한 단면이며,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은 단면과 단면이 만나 이루어내는 또 다른 단면이 될 것이다.
p250
밥을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
생각해보면 그리 많지 않다.
당신과 내가 밥 한 그릇을 나눠 먹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일,
생각해보면 더욱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