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가장 즐겨보는 프로는 9시 저녁뉴스. 그나마도 아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끊었다. 대신 라디오는 곧잘 듣는다. 그런데 또 채널별로 다르긴 하지만 CM이 너무 많은 경우가 있다. 본방송에 조금 몰입될만하면 '잠시후에 뵙겠습니다' 하는 통에 짜증이 났다. 또 요즈음에 보면 아이돌 게스트를 초대해서 저희들끼리 웃고 떠드는데, 듣는 내 입장에서는 별로 웃기지도 않고 시끄럽게 떠들기만 해서 얘기의 요지도 잘 파악이 안되는 상태가 계속되고 음악은 안나오니 인기 방송인의 프로그램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이 꾸준히 많이 나오는 채널을 골라들었다. 지금은 Just Music을 표방하는 채널의 방송을 즐겨듣는데, 내가 한때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들을 때다. 요즈음도 시간이 동일한지는 모르겠지만 종일 서양음악을 들려주다가 오후 4시경만 되면 국악이 나오는거다. 괜시리 적응이 안되서 채널을 돌리곤 했다. 국악을 듣다보면 뭔가 소리가 이뤄질 듯 하다가 끊기는 그 흐름이 적응이 안되 상대적으로 클래식보다 듣기가 싫었다. 「양구」는 한참 읽는 흐름을 타서 즐기다가 갑자기 끊어지는 국악같은 소설이다. 각 단편들의 대부분에 국악, 우리 춤이 소재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의 음악과 미술을 하는 사람은 음악가나 미술가라는 호칭보다 ~꾼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춤꾼, 소리꾼... (게다가 술꾼이라는 호칭도 있다) 소설에서 성공한 춤꾼이나 소리꾼은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대적인 소재이거나 서양식일 경우 가슴에 슬픔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것에서는 한을 품고 있다고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의 것.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내가 느끼는 묘한 단절감. 이질감. 이런 것이 우리의 문화가 독특함을 인정받으면서도 세계적으로 두루 즐겨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양구」를 읽은 느낌이 그랬다. 독특하면서도 즐기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