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Q84>(리뷰 : http://blog.naver.com/nyyii/130092295325)를 먼저 읽어서인지 <해변의 카프카> 역시 각 장에서 사건이 번갈아 전개되다가 어느 해결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이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의 주인공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와 어릴때 사고를 당해 그림자가 희미해진 나카타를 중심으로 한 사건이 각 장마다 번갈아 기술된다. 아버지가 소년에게 했던 저주와도 같은 예언을 피해 소년은 가출하고 잡지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고무라 도서관을 찾아간 소년은 주변에서 까닭모를 충격을 받아 의식을 잃게된다. 

같은 날 밤 고양이 찾아주는 노인 나카타는 소년의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고, 소년은 아버지가 살해된 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저주를 떠올리며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아버지의 저주를 피해 가출했으나, 저주대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사에키상을 사랑하고, 여행에서 만난 사쿠라에 대한 꿈을 꾸며 누나를 생각한다.

이 소설은 나에게 몇가지 충격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짚어보자.

1. 가출
가출이란 지극히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사전 밖의 단어였다. 버스를 타고 개포동에서 압구정까지 수능시험을 보러가는 일이 큰 여행에 가까웠을 정도로 나는 학교-집을 오간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과거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너무 모범생이었던 이 과거가 내가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을 막는 것같아 무겁게 여겨질때도 있다.

다쿠라 카프카가 가출을 감행하는 소년치고는 사고의 깊이가 상당하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다무라 카프카라는 소년의 가출은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소년의 가출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저주인데, 책이 출판된 당시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이 과연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요즈음에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가족간의 사건들을 보면 정말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가 싶을 정도로 흉악한 내용들이 많다. 자식을 잘 키우는 일도 참 어렵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2. 15세 소년의 성경험
내가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을 볼때마다 친한 과장님이 '그거 무지 야하던데~'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농담으로 건네는 말인줄은 알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정말 야하다. 해변의 카프카는 내가 읽어본 하루키의 세번째 소설인데, 읽어본 세가지 소설 모두 상당히 야.하.다.
요즈음은 점점 더 성경험의 나이가 어려진다고 한다. 과연 얼마나 더 어려져야 하는 것일까?
이전에는 나이가 어리더라도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경험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여자의 입장에서 원치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콘돔은 사용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학생 이하 어린 나이에 한 인격체로의 정체성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로의 성경험에 대해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그것이 과연 콘돔 사용만을 권장해서 해결될 일인지 의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소설이라도 소년이 경험하는 관계에 대하여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3. 근친상간 외
소년과 사에키상의 사랑은 35세의 나이차이를 뛰어넘는다. 50세가 넘은 사에키가 사랑한 것은 소년이 아니라 과거의 연인이었겠지만, 15세의 소년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소년은 사에키와 사쿠라를 각각 어머니와 누나이길 바라고 있다. 단순한 성경험을 넘어선 관계. 결국 사에키가 소년의 어머니라면 그들은 근친상간인가? 하는 의심으로 불편한 끈적거림은 소설을 읽는 끝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15세 소년이 어머니를 찾는 독특한 상황이더라도 50세가 넘은 여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걸까? 하는 생각도.

4. 성의 경계를 가를 수 없는 게이
때로는 남자로, 때로는 여자로 글이 읽어지는 오시마상에 대하여, 그는 소년에게 중요한 조언자가 된다. 책에서 얻은 조언과 특별한 삶을 살고 있어서 우러나오는 무엇이 그것이다. 현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쉽게 만나지지도 않는 존재가 소년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조언을 주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오시마상의 행동 및 말에 따라 그가 남자로 느껴지기도 하고 여자로 느껴지기도 해서 책을 읽는 느낌이 묘해진다.

한때 게이 남자친구가 등장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고, 이를 기점으로 여성들에겐 게이남자친구 가지기 바람이 분적이 있다. 물론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지게 생긴 사람이어야할 것이다.

이 밖에도 고양이의 심장을 먹는 조니워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소설을 읽는데 불편한 마음이 들게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소설은 사실 무척이나 몽환적이고 재미있다. 다만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내왔고, 지금도 모범적인 딸,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조금은 난처한 문제들이 있다는거.

이런. 범생이 인생 같으니라구....

책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은 것은 대채 지루한 것이라는걸. 그런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게 보통이지만

어떻게 죽느냐에 비한다면, 어떻게 사느냐 같은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설사 하찮은 일이라도 이 세상에 완전한 우연은 없다.

운명이란 끊임없이 진로를 바꾸는 모래 폭풍과 같다. 마치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둣,모래 폭풍은 아무리 네가 도망치려 해도 진로를 바꾸어 계속 너를 쫓는다. 그 폭풍은 먼 곳에서 불어오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는 것뿐이다.

우리 인생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한계점이 있어. 그리고 훨씬 적기는 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점도 있지. 그런 한계점에 이르면 좋든 나쁘든 간에 우리들은 그저 잠자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는거야.

나는 그런 것을 적당하게 웃어넘길 수가 없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이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러가지 일이 급속히 한 장소에 모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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