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여기서부터 제 평생까지.”2021년 코로나 팬데믹 한겨울, 은우는 친구들과 술 취한 사람을 연행하던 중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채 파출소 앞에 서 있는 류남을 만난다. 신분증도 없이 위태로운 류남의 모습에 은우는 사촌 누나인 척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며칠 뒤 은우는 눈 쌓인 놀이터에서 눈에 덮인 채 기진맥진 한 류남을 다시 만난다. 100년 뒤 미래에서 시공간을 헤매다 길 잃은 21살 청년이라는 충격적인 류남의 고백과 몸 곳곳의 상처들, 고통스러운 과거 이야기들은 어느새 은우의 삶 속에 스며든다.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랑을 멀리하던 은우와 류남의 기묘한 동거는 조금씩 은우의 마음을 열어가고 류남은 2년만 버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은 2년 후 끝난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다시 은우 앞에 나타난 류남,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누군가에게 간절히 닿고 싶은 마음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상처들을 절제된 문장으로 그려내어 은근하게 와닿는 이 소설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비현실성 속에서 현실보다 오히려 더 현실적인 감정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팬데믹으로 모두를 고립시켰던 시기에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가 견디게 하는 힘이 되고 버티며 살아낸 시간을 보상해 주는 것 같다. 잔잔한 문장 속에 여운이 오래 남아 시간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타임슬립 소재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 <시간 달리는 소녀>와 비슷한 결의 소설이라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시간 여행의 신비함보다는 서로의 상처에 다가가는 두 사람의 기적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소설, 로맨스 판타지로 모자란 감성도 채워진 것 같다. 🗨️ 잔잔하지만 감정 깊은 소설을 좋아하거나 코로나 시절의 답답함과 고립감을 정리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