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생 매창
윤지강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평점 :
황진이와 부용은 들어봤어도 매창이란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기생 매창이 있던 조선은 서인과 동인의 치열한 다툼과 북인의 노산군 복권운동, 왜군의 침입으로 백성이 고단했던 시대였다.
매창의 이름은 계량으로 유일한 벗이 거문고이다. 아전인 아버지가 유일한 가족이다.
예부터 무용이나 악기 등 예를 배우면 여자의 팔자가 박복하고 세진다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매창을 보며 알 것 같았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타고난 목소리로, 어린 계량을 술자리에 불러 노래를 시키려는 양반네들을 피해 아버지는 그녀를 남장을 시켰다. 기생팔자가 있다는 무당의 말에 액막이를 한 것이다.
하지만 질긴 운명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전주교방으로 들어가 결국은 기생이 된 계량은 시와 거문고와 노래로 부안에 이름을 떨친다.
기생이란 여자는 지금의 사람들에겐 다소 천하고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매창은 술팔고 몸파는 그런 기생이 아니었다.
기생도 세 종류로 나눠지는데 그녀는 양반 이상으로 시에 능하고 음악에도 능한 예인으로, 천하고 더러운 것을 혐오하는 여자였다.
비록 출생이 귀하지 않고 의녀로 적을 올린 높은 신분의 관기는 아니었지만 계량의 성품과 태도만은 일급 이상이었다.
나는 시인과 기생의 관계가 이토록 밀접하고 재밌는지 몰랐다.
기생과 시인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없이 긴밀했다고 하는데 가난한 시인을 박대한 기생에 대해 그가 나쁜 시를 퍼뜨려 그 기생을 망하게 한 사례이다.
반대로 기생에 대해 좋은 시를 읊어 퍼지면 그 기생 집앞에 네 말이 끄는 가마가 끊이질 않는다. 마치 시인이 홍보이사나 언론의 역할 같다.
책은 매창과 유생 유희경의 사랑이 주 내용이다. 매창의 삶에서 커다란 하나의 사랑이자 아픈 사랑인 유희경 역시 출생이 미천하지만 곧은 성품과 학문의 깊이, 시의 재능으로, 주변의 양반들마저 그를 양반의 대우를 해준다.
매화나무에 빗댄 매창이란 이름도 그를 위해 지은 것이었다. 한 평생 그를 마음에 품을 것을 다짐하고, 전쟁으로 헤어졌을때도 그만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둘이 산천과 꽃길을 다니며 화답한 사랑의 시들은 풍류와 애달픈 서정의 맛이 물씬 느껴진다.
하지만 헤어지고 7년만에 만난 유희경의 태도는 싸늘하기 그지 없다. 전쟁을 참가한 그에게 양반신분이 주어지게 된다는 소리를 들은 계량은 마음에 가시가 돋아나 그녀를 사정없이 찌른다.
당시 부폐한 양반 사대부들과 빈곤으로 각팍한 백성들의 생활상들을 간간히 엿볼 수 있다.
곡식을 빼돌려 이익을 취하고 쌀에 자갈을 섞어 무게를 속이는 일들이 팽배했다. 덕분에 백성들은 더욱 배고프고 가난해지고, 마음이 각팍해진다. 배고픈 백성들은 왜놈에게 붙잡혀있다 버려진 과부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욕설과 침을 뱉는다.
매창은 어린시절부터 남장으로 이 집 저집을 전전하며, 웃방아기로 팔려갈 신세를 넘기고 기생의 신세에 순정한 사랑은 없다는 마음의 상처까지 받는, 결코 순탄치 않고 부침이 많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녀를 꿋꿋이 서게하고 지켜준 건 거문고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옆을 함께 한 거문고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거문고 타는 묘사가 인상깊었다. 거문고 연주를 찾아보고 싶게 할 정도로 마음을 떨리게 하는 매창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싶다.
매창이 죽고 선비들이 매창의 시를 모아 문집을 냈는데 그 매창집의 엄청난 인기로 활자들이 뭉개지고 원본을 없애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그 정도 시와 거문고와 노래 실력이라면 문화재 대우를 받았을 텐데, 그 시대 예인의 팔자는 거칠었던 것 같다.
그녀의 노래와 거문고는 듣지 못하지만 시를 읽고 즐길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