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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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좋은 직장을 관두고 요리사를 선택한 직장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높은 연봉에 남 보기도 좋은 대기업, 대사관 등 직장과 거기서 보장되는 달콤한 혜택들을 뿌리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란 엄청난 포기와 결단이 있었을 것이다.

남이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있기보단 스스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기 위해 결정했다는 그들의 에너지가 나한테도 전달되는것 마냥 내 가슴도 뛰었다.

"빅 피처"의 주인공 밴을 보면서 마찬가지로 가슴이 뛰었듯이. 비록 우발적인 살인을 감추고 도망자 신세로 "게리"란 가짜 이름행세를 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나도 모르게 계속 밴을 응원하게 되었다.

 

월스트리트의 수입높은 변호사로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에 남부러울것 없는 중상류층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사실 그리 행복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가슴속에 사진작가의 꿈을 간직한채 현실과 타협한 직장이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아내와의 사이는 점점 나빠가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던 중, 이웃집 총각 아마추어 사진가 게리와 아내와의 혼외정사를 목격하고 만다. 우발적으로 와인병으로 내리쳐 그를 죽게 만들자 그가 먼 여행을 떠난것처럼 꾸미고 이웃에게 요트를 빌려 시체를 처리한 후 게리의 이름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게된다.

동부를 떠나 서부 몬태나로온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스레 행동한다. 삶에 찌든 몬태나 주민들의 인물을 가식없이 찍은 사진들이 우연히 지역 신문사로 보내지게 되어 신문 연재와 갤러리 전시 등의 러브콜을 받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전나무 숲의 화재사건의 감동적인 사진을 찍게 되고 미국 전역과 해외 곳곳에서 그의 사진을 1면으로 보내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타임지 등 세계 유수기업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할 정도로 완전 떠버린다.

 

만약 밴이 와인병으로 게리를 치지만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내와 이혼하고 여전히 마지못해 월스트리트를 왔다갔다 했을까. 조금만 용기를 내어 전업으로 사진을 찍었다면 도망자가 되지 않고도 전시회를 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모셔가기 원하는 사진가가 되어 아마추어 사진작가 게리와 아내의 코를 납작하게 할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아내와의 사이도 더 좋아졌을거다. 사랑하는 아들과 생이별을 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꿈을 이루며 살았을 수도 있었다.

비록 현실과 타협했지만 밴은 여전히 사진을 사랑하고 틈만나면 카메라 매장을 찾았다는 점을 놓칠수가 없다. 집에 암실을 꾸며놓고 카메라 종류마다 구비해놓으며 그 특징들을 익히고 틈틈히 사진을 찍어 인화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

어쩔수 없이 월급쟁이가 된다해도  마음속 꿈을 끝까지놓치않는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 암실을 꾸며놓은것 처럼 계속 이어가는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게리로 살아가는 승승장구의 인생 길목 앞에 또 다른 반전같은 사건이 찾아오고 그는 다시한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날수 밖에 없게된다.

 

애초에 자신의 꿈대로 살아갔더라면, 적어도 중간에 시작해도 늦지 않았을텐데 하는 그런 싸한 후회가 내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금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게 무엇인가. 또한 원하는 것 앞에서 주춤대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던져준다.

재미있고 적당한 긴장감이 넘치며 유쾌한 소설이다.

곧 프랑스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의 이름으로 영화가 개봉한다고 한다. 더글라스 캐네디의 다른 소설과 함께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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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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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권에 작가의 말대로 강남형성사가 다 들어가 있다. 일제 이후 박정희, 신군부를 지나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역사가 재미있는 스토리 사이로 은근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상류층의 주요 거주지인 강남과 교육열풍, 명품 열풍 등이 남한에 언제 어떻게 뜨고 생겨났는지 그 태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욕망이 본격적으로 대중으로 들끓기 시작할 때쯤인 1995년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 시기에 벌어진 1995년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건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뼈대로, 전직 유흥업소 마담 출신인 박선녀를 중심으로 인물과 이야기가 그물망처럼 뻗어간다.

 

박선녀는 40대 초반의 일명 강남 사모님이다. 과거에 롬싸롱의 새끼마담으로 인맥과 부동산을 늘려간 여자로 현재 95년도에는 돈 있는 부인들과 어울리며 상류층의 삶을 살아간다. 여느 때와 같이 외제차를 끌고 마사지를 받고 예순 살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백화점에 볼일 보러 나간다. 유아매장을 향하던 중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무너져내려 시멘트 사이에 깔리게 되고 주위에 말밖에 들리지 않는 생존자와 말을 건네가며 구조를 기다린다.

2장은 박선녀의 남편 김진 회장이 일제를 거치며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랐는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만주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본사람들에게 조선인의 정보를 날라다주는 스파이 짓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한국에 건너와 일제가 물러간 후론 미국에 빌붙어 정보를 넘겨주는 직책을 받아 눈에 띄지 않게 눈치껏 인맥과 재산을 늘려간다. 70년대 초에 한 직책과 권한을 이용하여 서초 땅 오만평을 불하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60대에 접어들어 본인의 백화점 부실 건을 전해들은 그는 보수와 동시에 개점할 것을 결정한다. 무너지기 몇 분전 붕괴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밖으로 서둘러 뛰쳐나간 뒤 30초에 건물이 주저앉는다.

 

박선녀, 김진 말고도 강남 부동산 개발업자 심남수, 강남 일대 상권의 이권을 갖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조폭 홍양태 등 지난 강남땅과 상권이 어떻게 발전되고 어떤 현실과 변화를 거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강 이남인 땅이 금싸라기가 된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 당시 논과 밭이 대부분인 땅들을 사들여 되팔고, 또 되팔고 하는 일명 땅떼기로, 땅값을 올려놓고 다시 되파는 일이 아무 제재없이 가능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땅이 돈이 된다는 개념이 무지했을때 가치를 알아본 사장들과 심남수를 포함한 몇몇이 땅떼기를 하며 강남의 알토지들을 곳곳 사놓았다. 한강변 이남 개발 계획에는 정치자금을 위한 윗선의 뒷거래 현장도 나온다.

 

마지막 장에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스무 살 임정아와 그녀의 엄마 점순 이야기다. 점순이 성남에 집 한칸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때 얼마나 지난한 고생을 했는지 보여준다. 판자촌 주민들에게 스무평 땅 분양권을 주는 당시 정부 방책만 믿고 천막촌으로 몰려들어 끔찍한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인 끝에 겨우 초라한 집을 얻었다.

압구정,양재의 강남 땅을 굴리는 김진같은 최상류층과 판자촌의 최극빈층의 점순의 삶은 빈부격차의 안타까움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뭔가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자들은 죽임당하고 이들을 고발한 이들은 땅을 불하받아 잘 먹고 잘사는것도 씁쓸했다.

 

강남을 둘러싸고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만주에서 목숨걸고 건너와 강남 땅으로 부자가 된 김진도, 감방에 들낙날락 거리며 매일같이 피보는 싸움을 벌이는 홍양태도, 룸싸롱 운영 끝에 제 살길 찾았다고 생각되는 박선녀도 결국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을까 싶은 공허와 허탈함이 든다. 김진의 백화점은 무너졌고, 홍양태는 장기구속되었고, 박선녀는 잔해에 깔렸다.

마지막 점순의 딸 임정아가 백화점 붕괴의 최후 생존자가 되면서 김진, 박선녀 등의 삶이 더욱 덧없게 느껴진다.

소비사회와 욕망을 대변하는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것처럼, 또한 제목처럼 이들의 욕망을 향한 삶이 한낮 꿈처럼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강남열풍과 강남에서 부는 교육열풍 등 남한 자본주의 욕망의 태동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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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 - 깨어진 마음으로의 순례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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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참 재밌는 분이신것 같다. 직접 기름부어 왕으로 선택한 사울은 막판에 질투와 욕망으로 날뛰다가 하나님을 저버렸다. 또 직접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다윗은 십년간 사울의 괴롭힘에 토끼처럼 떨며 몸을 숨기며 살아야 했다.

하나님이 선택했으면서 왜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은 것일까.

세 왕 이야기는 상사나 인간관계로 힘든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너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사울인가 다윗인가. 어느 부류인가.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 그 사람이 사울일수도, 다윗일수도 있지만 우린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에게 창을 던지는 사울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기도하고 자신의 몸을 숨기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십년에 걸쳐 다윗은 완전히 깨어져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깨어져 속사람이 변화한 사람.

결국 사울은 다윗이 내적 성장을 하도록, 깨어져 훌륭한 왕이 되기위한 도구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성령의 능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그 영의 생명이 내적으로 채워지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분은 종종 형편없는 인물들에게 "예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속이 죽은 자들의 뼈무더리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왜 그런일을 하실까요? 그 대답은 간단하지만 놀라운 것입니다. 그분은 형편없는 사람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심으로써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로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적인 헐벗음의 진정한 모습을 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p71

 

겉으론 능력이 있지만 어둡고 추악한 행위를 일삼는 사람은 겉사람에 불과하여 결국은 사울처럼 미쳐가고 저절로 끝이 좋지 않다. 상대가 나에게 창을 던질때 나도 똑같이 그에게 창을 던진다면 내 안의 사울을 깨어나게 할 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답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가 안가는 답이지만 질투와 복수보단 피하는게 가장 현명한 것임을 조금은 알것같다. 다윗이 피했듯이. 깨어짐의 고통을 받았지만 그것이 다윗을 훌륭한 왕이 되기위한 준비과정이었음을, 사울은 안타까운 도구가 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멋진 도구가 되고 싶지 사울같은 악한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다.

 

상대에게 복수와 미움으로 불타 즉각 대응하면 내가 상대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되고, 결과적으로 성장도 성숙도 없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다윗처럼 피하고 침묵할 수 있을까? 악한 행동을 닮아가지 않는 것도 나를 제대로 지키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왕으로 선한도구로 쓰인 다윗을 볼때, 형편없이 추락해서 자살에 이른 사울을 볼때, 다윗이 주는 지혜의 삶을 따라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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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완전판)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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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절묘한 구성이 빚어내는 긴장감이 과연 걸작이라 할만큼 대단하다.

요즘 쏟아지는 추리소설에 절대 뒤쳐지지 않고 오히려 그 수준을 넘어선다. 도청이나 통신 같은 문명이 낳은 복잡한 현대기술이 소설안에 들어있지 않지만 그게 애가사 소설의 매력인것 같다. 무인도에 벌거벗겨져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독자에게 긴장감을 제대로 선사하고 있다. 

또한 벌어지는 살인들이 극도로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사건들이 워낙 독특하고 치밀해서 읽는 내내 과연 누가 범인인지 손에 땀을 쥐고 궁금하게 한다.

 

특히 저택의 방마다 붙여진 동시 "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일곱꼬마 병정이 장작을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이 동시에 따라 저택에 초대된 10명 중 첫번째 사람이 술을 먹다 사레가 들어 죽고, 여섯 번째 사람은 도끼에 맞아 죽고. 한 사람이 죽을때마다 유리에 진열된 병정인형이 하나씩 깨진다. 이런 장치들이 긴장과 재미를 더한다. 잔인함만 있고 내용이 없는게 아닌 내용이 살아있고 소설적인 로맨틱함 마저 느껴진다.

 

책은 병정섬에 있는 저택에 10명의 사람들이 초대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저택 주인인 오웬부부가 보낸 편지를 받고 판사 웨그레이브, 경찰 브로어, 비서 베라, 의사 암스트롱, 독실한 기독교인 브렌트, 저택 집사 로저스 부부 등. 이들 모두 다 함께 모인 저녁 만찬에서 갑자기 축음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소리는 한 명 한명의 죄를 지목한다. 이들은 모두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인 오웬이 미끼를 꿰어 죄를 집행하기 위해 자신들을 이곳으로 꿰었다는 사실을 점차 알아차린다. 방마다 벽에 붙여진 동시에 따라 한명씩 똑같은 방법으로 죽어나가고, 진열된 열개의 병정 인형도 한개씩 파괴된다.

범인은 이들 10명중 한 명이고, 한 명씩 좁혀질때마다 궁금증과 몰입이 최고조로 이른다.

 

섬이라는 현실과 분리된듯한 하나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을 몰아넣어 긴장감을 조성하고, 인간 밑바닥의 본성과 공포를 끌어내는 구성이 적절하게 소설 안에 버무려지고 녹아들었다. 이런 구성은 요즘 영화 쏘우나 데빌에서도 봤다.

데빌은 각각 죄를 가진 여러명을 태운 엘레베이터가 갇히고 엘레베이터 조명이 꺼질때마다 한명씩 살해되는 내용이다. 범인에 대한 속임수도 이 소설과 비슷하다. 쏘우도 세트에 어떤 이유로 여러명을 가두고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범인이 소설 속 범인과도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소설 말미에 폭풍우가 가라앉고 모든 일이 벌어진 다음에 도착한 경찰의 수사장면과, 범인이 병에 넣어 바다에 던진 쪽지에 적은 범죄 동기와 살인의 세세한 계획들이 밝혀지면서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마무리까지 완결성있는 애가사의 추리의 맥은 현재까지도 많은 스릴러와 추리 작품에 이어지고 있을 만큼 대단하다.  영화로 나왔으면 꼭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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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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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구절 "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김훈을 비롯한 많은 소설가들이 무진의 안개를 기가 막히게 묘사한 이 구절을 언급할때마다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무진기행은 여러 단편들을 수록한 단편집 중의 하나.

"서울 1964년 겨울" 은 모의고사 지문으로 여러번 본 적이 있어 반가웠다. 주인공 나와 대학원생 안이 서울의 추운 겨울날 술집에서 손님으로 만나 이야기 하던 중 한 사내와 합석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사내는 돈이 많다며 하루 저녁 내에 같이 써버리자고 제안을 하지만 알고보니 그 돈은 세브란스 병원에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아 생긴 돈이었다. 여관방에서 함께 방을 쓰자는 사내의 부탁을 거절하고 따로따로 쓰기로 주장한 안과 그에 마지못해 따르는 나는 다음날 방에서 사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심히 헤어지며 끝난다.

 

해설에서 말하듯 김승옥식 소설은 1960년대의 서울의 어둡고 불안한 근대화 물질화의 사회를 비판하며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각 단편들은 1960년대의 서울을 배경으로 소년기,청년기, 중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성장소설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근대의 폭력성에 자유롭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반성장소설에 가깝다.

"차나 한잔"에선 신문에 만화를 기고하는 주인공에게 신문사 부장이 "차나 한잔 하시겠습니까"의 정중한 물음에 희망을 갖고 다방으로 가지만 그것은 신문사에서 주인공을 자르려고 통보하려는 것이었다. 세련된 도시의 어법의 잔인함과 허사를 제대로 보여주는 일화다.

"염소는 힘이 세다" 는 소년인 나는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죽었다. 이제 우리집엔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를 반복하며 소년가장이 어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대목에서 힘에 대한 갈구를 보여주어 약육생존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흥미롭게 읽은 것은 "역사"다. 동대문 근처 빈민가 창신동의 낡아빠진 방에 세들어 살던 나는 친구의 소개로 양옥집으로 이사간다. 너무 깨끗한 벽지를 보며 창신동 방에 새겨진 "창신동에 사는 모두가 개새끼들이외다" 낙서가 눈에 떠올라 익숙해지지 못한다. 날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 울려펴지는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소리에 차츰 짜증과 분노 답답함 일어 양옥집에 사는 이들의 질서와 규칙을 깨부시고 싶은 마음이 타오른다. 흥분제를 보리차에 몰래타지만 주인집네는 여전히 질서있는 삶을 이어간다. 깰 수없는 서울의 근대화에 대한 좌절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주인공은 더러운 창신동으로 절대 갈 생각이 없다.

 

이렇게 김승옥은 서울의 근대화를 벗어나자는 희망을 어디에도 내세우지 않는다. 무진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듯이 우리는 계속 서울에 있는다. 챗바퀴처럼 감옥같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을 여성을 내세워 그리고 있는 "야행"과 문란한 여성의 음부를 자본주의 부패로 비유해서 그리는 "서울달빛 0장'도 매우 흥미롭다.

1960년대의 우울하고 쓸쓸한 서울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슬픈 도회의 어법을 그 누구보다도 지적인 절제를 통해 소설화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근대성 논의에서 뚜렷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의 해설에 완전히 공감할 수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며 60년 전의 서울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려졌다. 지금과 여전하다. 버스는 만원이고, 추운 겨울날이면 포장 술집 안 모여드는 남자들과 어묵국물, 직장을 구하러 서울 이곳 저곳을 배회하는 가장, 기계적인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며 밀려오는 공포와 혼란과 유혹들. 김승옥의 말처럼 우리가 알아서 찐빵(자본주의) 밑으로 기어들기 때문에 이런 삶도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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