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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이 책 한권에 작가의 말대로 강남형성사가 다 들어가 있다. 일제 이후 박정희, 신군부를 지나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남한 자본주의 근대화의 숨가쁜 역사가 재미있는 스토리 사이로 은근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상류층의 주요 거주지인 강남과 교육열풍, 명품 열풍 등이 남한에 언제 어떻게 뜨고 생겨났는지 그 태동을 보여준다. 이러한 욕망이 본격적으로 대중으로 들끓기 시작할 때쯤인 1995년이 소설의 배경이다.
이 시기에 벌어진 1995년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건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뼈대로, 전직 유흥업소 마담 출신인 박선녀를 중심으로 인물과 이야기가 그물망처럼 뻗어간다.
박선녀는 40대 초반의 일명 강남 사모님이다. 과거에 롬싸롱의 새끼마담으로 인맥과 부동산을 늘려간 여자로 현재 95년도에는 돈 있는 부인들과 어울리며 상류층의 삶을 살아간다. 여느 때와 같이 외제차를 끌고 마사지를 받고 예순 살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백화점에 볼일 보러 나간다. 유아매장을 향하던 중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무너져내려 시멘트 사이에 깔리게 되고 주위에 말밖에 들리지 않는 생존자와 말을 건네가며 구조를 기다린다.
2장은 박선녀의 남편 김진 회장이 일제를 거치며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랐는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만주에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일본사람들에게 조선인의 정보를 날라다주는 스파이 짓을 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한국에 건너와 일제가 물러간 후론 미국에 빌붙어 정보를 넘겨주는 직책을 받아 눈에 띄지 않게 눈치껏 인맥과 재산을 늘려간다. 70년대 초에 한 직책과 권한을 이용하여 서초 땅 오만평을 불하받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60대에 접어들어 본인의 백화점 부실 건을 전해들은 그는 보수와 동시에 개점할 것을 결정한다. 무너지기 몇 분전 붕괴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밖으로 서둘러 뛰쳐나간 뒤 30초에 건물이 주저앉는다.
박선녀, 김진 말고도 강남 부동산 개발업자 심남수, 강남 일대 상권의 이권을 갖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조폭 홍양태 등 지난 강남땅과 상권이 어떻게 발전되고 어떤 현실과 변화를 거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강 이남인 땅이 금싸라기가 된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 당시 논과 밭이 대부분인 땅들을 사들여 되팔고, 또 되팔고 하는 일명 땅떼기로, 땅값을 올려놓고 다시 되파는 일이 아무 제재없이 가능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땅이 돈이 된다는 개념이 무지했을때 가치를 알아본 사장들과 심남수를 포함한 몇몇이 땅떼기를 하며 강남의 알토지들을 곳곳 사놓았다. 한강변 이남 개발 계획에는 정치자금을 위한 윗선의 뒷거래 현장도 나온다.
마지막 장에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스무 살 임정아와 그녀의 엄마 점순 이야기다. 점순이 성남에 집 한칸을 마련하기 위해 젊었을때 얼마나 지난한 고생을 했는지 보여준다. 판자촌 주민들에게 스무평 땅 분양권을 주는 당시 정부 방책만 믿고 천막촌으로 몰려들어 끔찍한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인 끝에 겨우 초라한 집을 얻었다.
압구정,양재의 강남 땅을 굴리는 김진같은 최상류층과 판자촌의 최극빈층의 점순의 삶은 빈부격차의 안타까움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뭔가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순수한 민족주의자들은 죽임당하고 이들을 고발한 이들은 땅을 불하받아 잘 먹고 잘사는것도 씁쓸했다.
강남을 둘러싸고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만주에서 목숨걸고 건너와 강남 땅으로 부자가 된 김진도, 감방에 들낙날락 거리며 매일같이 피보는 싸움을 벌이는 홍양태도, 룸싸롱 운영 끝에 제 살길 찾았다고 생각되는 박선녀도 결국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았을까 싶은 공허와 허탈함이 든다. 김진의 백화점은 무너졌고, 홍양태는 장기구속되었고, 박선녀는 잔해에 깔렸다.
마지막 점순의 딸 임정아가 백화점 붕괴의 최후 생존자가 되면서 김진, 박선녀 등의 삶이 더욱 덧없게 느껴진다.
소비사회와 욕망을 대변하는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것처럼, 또한 제목처럼 이들의 욕망을 향한 삶이 한낮 꿈처럼 덧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강남열풍과 강남에서 부는 교육열풍 등 남한 자본주의 욕망의 태동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재미있는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