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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바두르 오스카르손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아이 / 2021년 1월
평점 :
"어디까지 가 봤니?"
<나무, 바두르 오스카르손 글그림, 권 루시안 옮김, 진선아이 출판사>에 관한 서평.
그림책 카페 제이포럼에서 서평 이벤트에 응모해 증정받은 책이다.
북유럽의 아주 작은 나라 페로제도 출신의 작가 바두르 오스카르손의 그림책 <나무>가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다. 이 작가는 삽화가,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니멀한 그림체와 이야기로 사랑받고 있는 작가이다. 페로제도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나라의 작가인데 이 제도는 아주 작고 조용한 섬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읽은 그림책 중 손에 꼽힐만큼 그림이 간결하다. 유독 내가 이 신간에 꽂혔던 이유는 이때까지는 화려한 그림체, 진한 색, 화면이 꽉찰만한 정도의 섬세한 표현들로 된 그림책만을 사랑했고 끌려왔던 나인데 그와 반대였던 책이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그림책을 본 순간, 여백의 미, 텅빈 느낌, 공허함이 들었고 내가 끌려하던 책들과는 달리 여러 질문들과 생각들을 안겨주었다.
나무는 제목부터 참 심플하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재로 이렇게 좋은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다니 실로 놀라지 아니할 수 없다. 주인공 밥은 늘상 봐오던 마을의 서 있는 나무이거늘, 오늘따라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고 그곳 너머까지 가 봤다는 힐버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 나오는 감정, 표정, 제스처들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나는 이 책의 부제를 “너, 어디까지 가 봤니?” 로 정하고 싶어졌다.
그러고 상상에 관해 생각해보게되었다. 50개월 된 딸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상상의 나래가 무궁무진으로 펼쳐질거라는 전제조건을 내 안에 갈며 질문을 던졌다. "너는 이 그림책의 저 나무 뒤에 무엇이 있을 것 같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예측과 달리 아이는 모르겠다고 했다. 어? 왜지? 어린이라면 어른보다 더 상상력이 뛰어날텐데… ? 왜 모른다고 하지? 그래서 이번에는 " 그럼 우리집 창문 밖에 있는 저 나무 뒤에 뭐가 있을지 우리 상상해볼까?" 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산”이었다. 그곳엔 정말 우리가 자주 걷는 작은 산이 있다.
여기서 나는 상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상상”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봄. 외부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상을 떠올리는 일. 이라 정의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고 불가능한 일을 뭐든지 할 수 있게 하는 일 같은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그러나 상상력은 완전한 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 개인이 쌓아온 지식과 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칸트는 상상력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만들어지는 생산적 상상력과 기존에 알던 경험에서 생겨난 틀을 바탕으로 현실을 인삭하는 제한적 상상력으로 나누었다.
'저 나무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고 언급할 수 있는 범위는 우리가 어디까지 가 보았느냐에 달렸다는 셈이다. 그건 물론 직접적 경험도 있지만 간접적 경험도 포함이다. 우리가 읽는 신문, 책, 우리가 보는 TV, 영화, 미디어, 우리가 듣는 음악, 라디오 등등의 여러 매체들을 통한 경험, 학교에서 배운 지식, 누군가와 나눈 대화 등등을 통틀어서. 50개월 딸 아이보다 경험이 많은 나는 딸아이보다 더 많은 걸 상상해볼 수 있는 셈. 상상한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나무 뒤에는 '헹글라이더를 타는 사람이 그려질 수'도 있고, '바다가 펼쳐질 수도' 있고, '동물원이 나타날 수도' 있고,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나올 수도' 있고,,,, 이것들은 모두 내가 접한 경험들 속에서 나오는 상상이다. 내가 그려볼 수 있는 선은 내가 경험한 것 까지… 그것들이 끝나고 나면 생각이 멈춘다. 상상력의 무한성은 없고 유한성이 느껴지는 순간이 오는 것. 내가 상상해 보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순간 나는 참 말랑말랑해 진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내 상상. 참 이쁘고 기특하고 소중한… 그것.
나의 딸에게도 저 나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나처럼 말랑말랑한 소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도록 여러 경험을 함께 키워 나가야겠다.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