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무난한 소설이다.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린다. 초반부 주인공 '나'의 시점에서는 선생의 답답한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답답하고 한심스런 지식인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 후반부에서 선생의 기나긴 편지를 읽고서는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선생을 이해가고 동정심이 생긴다. 미묘한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치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미묘함들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소설의 리얼리티를 더한다. 소심한 마음과 위선적인 마음. '나는 그녀가 좋은데, 그녀도 나를 좋아할까' 라는 짝사랑의 설레임처럼 소심한 마음으로 친구가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선생. 친구에게 '사실 그녀는 나의 약혼녀라네' 라고 진실된 말은 못하고, 철학적인 사상을 무기로 친구를 몰아부쳐 죽음에 이르게한 선생의 거짓은 평생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결국은 딸과 결혼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는 비밀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선생도 자살로 속죄를 요청하고..선생이 한 평생 갖고 살았던 죄책감을 생각하면 왠지 슬퍼진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선생의 부인도 슬프고,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친구도 불쌍하고...사람의 마음은 누구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쉽게 상처받지만 쉽게 치유되지 않은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 그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는 운명만이 안다. 자신의 마음조차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법. 그게 바로 소설의 마력이다. 마음.너를 미워하는 마음. 너를 사랑하는 마음.그게 나의 마음.
유럽 여행에서 본 고흐의 그림에 반해서 예담 출판사의 <반 고흐, 우정의 대화>를 읽었다. 사실 예술가의 고뇌는 예술가 만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고귀함은 숭고하다고 아직까지는 생각하고 있다. 예술가의 고뇌를 표현한 <달과 6펜스>와 <금시조>을 보면 예술가라는 종족들의 살아있는 열정을 얼핏(그걸 감히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볼 수 있는데,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고흐가 왜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끝없이 무엇인가를 추구 했을까. 사회에 대한 멸시? 그림의 종류와 기술의 탐구? 자기 만족? 무미건조한 삶의 도전? 나는 예술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아무런 해명도 못하지만 고흐같은 화가가 그림을 그린 다는 이유에 대해서도 아무런 상상을 할 수 없다.그를 그토록 열정적인 삶으로 이끈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요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흐가 가졌던 그런 것들이 과연 있을까. 아니면 정말 그는 광기 어린 천재란 말인가. 나는 고흐가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혼신을 다했을 뿐이다. 누구보다 고뇌하고 노력하고 좌절하고 삶에 시달렸다고 생각한다.그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가 감동할 수 밖에 없는건 정말로 그의 혼이 그림에 녹아 있어서 그런걸까. 삶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가치는 진짜 예술가가 가지고 있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요즘 세상에는 누구도 그런 열정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다(소수는 자신이 그런 열정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는 생각을 해보면 옛날보다 세상이 점점 무미건조해지고 있다는 것 같다.고희의 세세한 심정까지 담고 있어서 다소 지루할 지도 모르는 책이지만 고흐의 매니아라면 한번 쯤 읽어봐야할 책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수필집이야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으니까 읽어도 '뭐야? 이사람? 왜 이딴 식으로 생각을 하지?'라고 불끈 했었는데, 법정 스님 정도 되는 사람의 수필집은 역시 교훈이 있다. 교훈 덩어리 라는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다른 독자들보다는 감동을 덜 느낀것은 확실하다. 이미 널리 알려진 수필이라 여기저기서 조금씩 접한 부분이 많았고, 그게 핵심의 전부였던것 같다. 어쨋든 나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 수 없음이 분명하다. 욕심이 너무 많은 인간이다. 즉 그의 가르침을 깨우치기에 이미 나는 세속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빼기보다는 더하기가 좋다. 지금 가지고 있는 얼마 안되는 것들도 절대 버리지 못한다. 좋아하는 cd는 반드시 소장해야 하고, 책들도 소유하고 나중에 또 읽어봐야만 하는게 내 욕심이다. 공수래 공수거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은 꽤 길다. 임종을 앞두고 내가 가진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되나 걱정하진 않을꺼란 생각이 든다. 물론 무소유의 철학은 멋지다. 집착으로 인한 고뇌는 우리가 한번 쯤은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소유로 인한 기쁨과 행복을 어찌 경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꼭 물질적인 것이든 그 이외의 것이든 간에.무소유. 그건 삶의 주철학(Major)이 될 수 없다. 단지 부철학(Minor)일 뿐이다.
일단, 상권에는 그의 성장기에 대해서 상세히 나와있다. 독실한 기독교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최상위 클래스의 교육을 받는다. 사립고등학교를 거쳐서 예일대, 그리고 하버드 대학원까지. 그 과정에서 그는 그가 믿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불교를 접하게 된다.다른 독자라면 '뭐야 이 녀석. 지 잘난척 하는거 아냐?'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가 하는 고민들이 보통 사람들(특히 나의 경우에는)이 어렸을 때 했던 고민들과 지금 하는 고민들과 어쩜 그리 겹치는 부분이 많은지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가 진리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 마치 내가 가야할 길인냥 나는 책에 빠져 들었다.현각이 세계의 4대 생불 중 하나라는 한국의 숭산 스님을 만나서 그를 따르게 될 때까지 입이 마르도록 숭산 스님에 대한 극찬으로 내용은 전개된다. 그가 한국에 와서 느끼는 생각들은 재미있는 부록에 불과 하고 이 책은 거의 온통 숭산 스님에 대한 얘기가 많다. 얼마나 칭찬을 하는지 당장에 숭산 스님의 책을 구해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권에는 다소 지루한 얘기가 반복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굉장히 신선했다. 한권의 책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그의 글 재주도 오랫만이었고, 무엇보다 책 한권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생각을 이렇게 많이 바꾸어 놓는 것도 신기했다. 책을 덮고 나니 정말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_^ (과장이 아니라)
노란 표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서는 도저히 그를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자신한다. 그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 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실적인 소재로, 그리고 재치있는 이야기와 넋담으로, 그리고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멋진 결말로 각 소설들이 매력적으로 독자들을 이끈다.요즘 소설은 너무 어렵다, 고리 타분하다, 이해 하지 못하겠다 라는 사람들도 누구나 성석제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라는 것이 항상 어렵고 고리 타분하지 않다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이 소설들이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내 주장이다. 쉬운 듯, 가벼운 듯 하지만 그의 소설들은 항상 삶의, 사회의 진리를 담고 있다. 바로 그게 내가 추구하는 소설이다. 성석제의 소설은 대중적인 면에서는 완벽하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재미있기 때문에 그의 문학의 질을 낮게 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틀림없는 시대의 이야기 꾼이며 그의 재능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7편의 단편 모두, 개성이 강하면서도 철학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성석제의 소설이야 말로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