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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남아 있는
그가 부럽고, 담고 있는 그녀가 아름답다.
<작가
소개>
박완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
작가의 저서 나열은 생략(너무
많아서.....)
<책
내용>
나는 전쟁을
겪은 후, 찢어지게 가난해진 집안의 고명 딸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와 오빠는 빨갱이로 몰려 지서로 끌려간 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똑똑한
머리덕에 미 8군 PX에서 근무할 수 있었으나 양공주로 오인하는 이목으로 불편해 하는
고지식한
엄마때문에 늘 속상해한다. 그래도 자기때문에 그나마 먹고 사는 것을.....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대학을 중퇴한 상이용사이다.
상이 용사라고
하는데 외형을 봐서는 정상인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나는 음악을 알지 못한다. 그냥 리듬이 있는 소리로 인식할 뿐.
전쟁으로 귀한
젊은 남자 그리고 대학을 다니던 그와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이야기들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뭔지 통하는 게 있어 좋았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도 나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편하고
재미있었다. 가끔 안 보면 보고 싶기도 하고..........
나는
미8군에서 잠시 근무하던 (멋없는)은행원인 민호를 알게 되고
뜨거운
사랑이랄 것도 없이 결혼 적령기에 찬 남녀가 만나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된다.
은행원답게
이재에 능하고 돈에 대한 남다른 관리 능력을 갖고 있다.
보통의
부부처럼 싸우기도 하지만 사랑으로 알콩달콩한 부부의 정을 나누며 산다.
가끔씩 들르는
친정집에서 그 남자의 소식을 듣게 되고 그 남자의 누나로 부터
그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 그리고 그에게 있어 내가 첫사랑이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를 만나
위로도 해 주고 누나로서 길잡이가 되어 달라는 그녀의 청으로 그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유부녀의
몸으로 외간 남자를 만난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나 역시 그 남자를
좋아했기에 마다하고 말게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만나던 어느 날 약속시간이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 그.
그런 적이 한 번도
없고 오히려 미리 와 기다리던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총
평>
고 박완서님의
책을 자주 찾는 편은 아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산문집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찬사를 많이
받는 작가임에도 불굴하고 이 분의 책을 안 읽었다.
그것은 아마도
'소설'이라는 장르를 유난히도 멀리했던 과거의 알레르기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거운 책으로 부담스러워진 머리를 상큼한 소설책으로 기분 전환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
그 때 마침
알게 된 '공지영'작가의 소설에 빠지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점점
소설과 울타리를 쳤던 담벼락에 파릇파릇 싹이 돋아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에 대한 문외한이라 늘 선택에는 고민의 시간이 독서의 시간만큼 투자된다.
모험을
즐김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어
내용에
의존하기보다는 작가의 명성에 의존하는 바가 심하다.
이 책 역시 내용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검증된(?) 작가의 책이라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읽게 된
책이다.
그 남자네
집.
단팥이 별로 들어
있지 않은 밀가루 풀빵을 먹는 느낌이었다.
책의 내용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제목속의 그 남자의 등장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 남자를 통해서
사건이 시작되고 전개되며 마무리를 지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책의 패턴인데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이 '그 남자네 집'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목적성으로 그
남자가 산발적으로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그 남자의 안부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정도의 길지 않은 정보를 제공할 뿐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제목을
'그 남자네 집'으로 작명한 것일까?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그 남자는 작가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보물과 같은 존재였을까?
그래서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 그 남자를 연상케하는 제목,
그러나 그 남자의
모든 것이 세상에 드러나 자기만의 남자가 아니라 대중의 남자가 되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일부러 꽁꽁 숨겨 놓은 것이 아닐까 라는 되도 않는 상상을 해 본다.
그 남자를 전면에
내 세워 놓고는 정작 그 남자의 이야기를 절제하는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분명 어떤 의도를
갖고 그랬을 것 같은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남자는 책 속
주인공은 아니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가 주인공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순간 그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알 듯 말 듯한 그
정도의 남자가 그인 것이다. 그 이상의 그를 만드는 것은 작가의 상상일 것이고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순간 그의 신성성을 처참하게 망가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남자는 그녀의 보물이 아니라 그녀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필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정도만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별의
별 상상을 다 해본다. 정말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설 '그 남자네 집'에는 그가 없다!!!!!!!
그 남자가 궁금해
그 남자네 집을 기웃거려봐야 헛수고이다.
문틈 사이로 내부를
들여봐야 험상굿은 도사견이 으르렁거릴 뿐이다.
고희가
넘은 여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한 부러움과 야릇한 질투감
그리고
그 마음을 품고 살아 온 작가의 순수성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담고 있을까?
남아
있는 그, 담고 있는 그녀 모두가 아름답다.
뜬금없이
작자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떠 오르는 것은 왜 일까?
http://blog.naver.com/happy_0801/1201908726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