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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 하늘에 지고 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븐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270p
황석영 작가의 성장 소설이라고 한다.
7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있다.
영길, 준, 인호, 상진, 정수, 선이, 미아
목차를 잘 챙겨 봐야 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된다.
그 탓을 작가에게 돌리고 유명 작가라고 하는 사람 뭔 정신으로 글을 쓰는거야 라고
타박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정신줄을 놓고 읽은 탓이다.
시대는 60년대 419혁명이 일어났던 즈음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동기들이다. 누구는 나보다 한 학년 위지만 나이는 고만고만하다.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흐릿하다. 딱히 뭐가 되겠다는 의지도 없다.
그냥 어울리고 얘기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든 것이다.
반드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도 아니다. 현실의 모든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학교 생활에 충실한 범생들이 아니다. 집이 넉넉하여 놀고 먹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욕심도 없다.
그냥 살아간다....
7명의 각 각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본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솔직하게 느껴진다. 그가 나를 대변하여 나를 얘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얘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목소리에 신뢰가 간다.
오해되고 있는 현상을 상대가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객체인 동시에 주체인 것이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도 방황이 많은 것인지.
돌이켜 보면 그냥 껄껄 웃을 수 있는 헤프닝에 지나지 않지만
그 당시 모든 것이 심각하기만 하다. 사춘기라서 그랬을까?
틀에 짜여진 사회 규범에 어떤 식으로든 빗겨나려고 했다.
그게 멋이라 여겼다.
신발을 구겨 신어야 했고, 교복 윗 단추는 풀어 헤쳐야 했고
교모 챙을 구겨 약간은 삐닥하게 쓰고
통 큰 바지로 최대한 바람을 펄럭이는 걸음걸이를 했어야 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치아 사이로 침도 찍 쏠 줄 알아야 했고 껌은 필수였다.
그러다가 길에서 학생 주임 선생님이라도 보게 되면
범생의 모습으로 신발 펴고, 단추 채우고 껌은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고 ㅎㅎㅎ
그 시기는 누구에게 있는 통과의례이다.
30년전의 나에게도, 지금의 우리 딸에게도 그리고 우리 딸의 아이들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온 몸으로 겪어 보길 바래본다, 두려워하지 말고 폭풍의 눈동자에 푹 빠져 볼 것을...
그러나 절대 중심을 잃으면 안된다. 중심을 잃는 순간 그 소용돌이의 희생자가 될테니깐...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해서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성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가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285p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고 한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하고 바랄 즈음에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286p
젊음의 특성은 외면과 풍속은 변했지만, 내면의 본질은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87p
작가의 말 중에서.
잘 나갈 때는 샛별이지만 한 물 가게되면 개밥바라기로 불리는 별.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한 때는 샛별이었는데 지금은 개밥바라기가 되고 있다.
어쩌면 작가 황석영도 자기의 샛별이였던 시대를 그리며 쓴 성장소설이 아닐지....
지금의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 상황과 그들의 정서가 생경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부모님들은 그 시대를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
오늘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지만 그 때의 행복감을 채워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