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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ㅣ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평점 :
우리 사회의 음습한 이야기를 파 헤친 나쁜 피 이야기
소설가 김이설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환영'을 통해서 알게 된 작가이다.
환영은 무능력한 남편과 빚에 찌들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친정 식구를
돌보는 매춘 여성 가장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소설이다.
매춘에 대해 정당화할 수 없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여성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성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가의 경험 세계에 궁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이 저런 곳이라는 새로운 사실에 좀 놀랍기도 했다.
이번 소설 나쁜 피는 제목이 주는 호기심과 작가 김이설의 이름을 보고 구입한 책이다.
반 쯤은 넋이 나간 듯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여인의 모습과 희망의 싹으로 디자인한 한글 제목.
저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얇았다.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었다.
혹시 클라이막스에서 허무하게 사그라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감.
나 화숙은 30대 중반의 노처녀이다.
작은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한 나의 불찰로
매일 파리만 날리고 있다. 가게를 처분하고 뭘 하고 싶지만 밑천이 없다.
나에게는 정신지체 엄마가 있었다. 그리고 폭력으로 무장된 고물상 주인 외삼촌
그리고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르는 외할머니와 외사촌 수연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정신지체인 엄마는 동네 남자들에게 욕구의 탈출구가 되었다.
그녀의 몸을 건드리지 않은 남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누가 아버지인 줄 모른다.
잘 나가는 고물상은 운영하고 있는 외삼촌덕에 먹고 사는 걱정은 없었다.
그에게 시집 간 딸 수연이 있으나 사위의 문제로 하루도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다.
나는 태생적으로 나쁜 피를 타고 났다.
비정상적인 엄마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하루가 멀다하고 폭력을 일삼는다. 가족 모두에게
나의 피해 의식은 거짓말을 꾸미는 것으로 보상 받고 있다.
외숙모의 바람, 수연의 비행 그리고 나와 몸을 섞은 그에게도....
'나쁜 피', 피라는 제목이 주는 공포가 있다.
그러나 공포보다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있다.
피는 유전적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정체성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나쁜 피로 말미암아 그럴 수 밖에 없다는 필연 관계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피하려는 몸부림.
그리고 자신의 잘 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성적인 유전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피해 의식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비겁한 방식으로 복수하려는 모습.
그녀의 심리를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처럼 어딘가에 스스로를 내 맡기고 싶은
도피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직시하지 않고 필연 관계를 제3의 원인으로
돌릴 때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불행의 늪으로 계속 빠질 수 밖에 없다.
따지면 나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없고, 상처 없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108p
해피앤딩을 기대하며 읽었다.
그러나 해피앤딩이 아니다.
불행한 그녀를 방치할 수 밖에 없는, 그녀를 행복하게 할 수 없는 나 그리고 우리.
그 안타까움과 손을 미칠 수 없는 애절함이 개운치 않게 남는다.
소설은 곧 현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속 주인공이 우리 주변에 있을 것이고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밝게 웃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