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말을 하는 아이 이야기강 시리즈 13
고미솔 지음, 홍소 그림 / 북극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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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고미술 | 그림 홍소 | 출판사 북꿈



슬픔의 우물 아래에서 찾은 빛

표지를 펼치는 순간부터 이 책은 독자를 단번에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울창한 나무 위로 알록달록한 새들이 날고, 금빛 불빛이 숲 사이로 반짝이며, 한 소녀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홍소 작가의 그림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다. 표지만 바라보아도 숲 속 어딘가에서 새들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 마법이 살아 있던 시절 — P. 9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새벽 숲에서 춤추는 요정을 보거나 저물녘 사람들 틈에 섞여 장을 보는 마녀를 마주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던 시절입니다. 어떤 곳에 굉장히 부유한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임금님은 온갖 귀한 것들이 가득한 보물 창고가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독자는 이 세계의 규칙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법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것으로, 요정과 마녀는 시장 골목 어딘가에 있다. 이 풍요롭고 신비로운 세계 속에서, 그러나 왕비를 잃은 슬픔에 빠진 임금님은 어린 딸 아라루아를 외면한다. 아라루아 곁을 지켜준 것은 오직 꾀꼬리 한 마리. 꾀꼬리는 먹을 것을 날라다 주고, 노래를 불러 주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를 키운다. 그렇게 아라루아는 새의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다.

풍요로운 보물 창고를 가진 임금님과, 꾀꼬리 한 마리에게 기대어 자라는 아이의 대비는 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다. 진짜 귀한 것은 무엇인가.



🏙️ 처음 만난 세계 — P. 54~55

꾀꼬리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를 아라루아는 마침내 두 눈으로 마주한다.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바쁘게 오갔습니다. 수염을 기른 남자들, 고운 옷을 입은 부인들, 키가 큰 사람들, 작은 사람들, 궤짝이나 항아리를 이고 지고 바쁘게 걷는 사람들, 말을 탄 사람들, 마차들, 수레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쩌면 여기는 꾀꼬리가 말하던 세계라는 곳이 아닐까?'

이 장면에서 아라루아의 눈을 통해 독자도 함께 세계의 넓음과 생동감을 처음으로 호흡한다. 꾀꼬리의 노래 속에서만 존재하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이 순간은, 아이가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출발점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 감각이 문장의 행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우물 아래의 밤 — P. 102

하지만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감당하기 힘든 사건을 겪은 아라루아는 깊고 깊은 우물나라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혼자 긴 밤을 맞이한다.

몹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잠든 아라루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눈물은 그치지 않고 밤새 계속 흘렀습니다. 노파가 던져 준 낡은 담요는 아라루아가 흘린 눈물로 흠뻑 젖고 말았지요.

이 장면은 이 책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이 남는 대목이다. 아라루아는 울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잠든 사이 눈물을 흘린다. 슬픔이란 때로 이렇게 온다.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온몸을 적시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으로. 고미술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아이 독자들에게 묻는다. 네 안에도 이런 밤이 있었느냐고.


글과 그림의 완벽한 호흡

20여 년간 방송 작가로 활동해 온 고미술 작가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맑고 깊다. 광고를 전공하고 10년 넘게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해 온 홍소 작가의 그림은 2026년 볼로냐 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고, 제7회 나미콩쿠르 퍼플아일랜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그 예술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글과 그림 모두 이 책 한 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마치며

이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슬픔을 외면하거나 빠르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슬픔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통과해야 할 세계로 그려진다. 아이 독자들은 아라루아와 함께 그 세계를 걸으며 자신 안의 슬픔과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아라루아는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고 다시 저 위 세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는 여정이 곧, 이 책의 전부다. 그리고 그 여정은 읽고 난 한참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계속된다.


슬픔을 느끼는 아이에게, 그리고 그 아이 곁에 있는 모든 어른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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