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그램 교수가 실시한 ‘아이히만 실험‘의 결과에서 인간은 권위에 놀랄 정도로 취약한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권위에 대항하는 약간의 반대 의견 또는 양심과자제심을 부추기는 작은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간성에 근거허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데카르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존재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의 정신이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라는 의미다.
이것은 데카르트 나름의 ‘외침‘ 이었다. 그는 당시 권위로 군림하던 기독교와 스토아철학에 싸움을 걸며 "철저하게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라!"라고 외친 것이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선 ‘프로세스로부터의 배움‘ 측면에서 보면 그 사회의 지배적인 상식을 일단 없었던 것으로 하고 정말로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품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 준다. 아웃풋으로부터의 배움의 측면에서는 너무 치밀하게 생각하다 보면 의외로 쓸모없는 결론밖에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이는 데카르트가 제시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가 결국 차세대로 이어지는 철학자 사고의 출발점으로 채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어느 정도 확실하다.
데카르트나 스피노자가 활약한 17세기 무렵까지의 철학자들은 사실에 입각해 명석하게 사고를 쌓아 나간다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소쉬르는 ‘정말 그러한가‘라는 커다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무슨 뜻인가?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사고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사고를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구조주의 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앨런 케이의 메시지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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