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축복의 말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그것을 말한 사람의 내면에서총량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실제의 축복이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하지도 않으니까.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에게 없는 말들은 곧 우리에게 없는 개념들이다.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수학했고, 후일 러시아어 통역을 오래 했던 일본의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는, 열네 살에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생전에 술회했다. 심지어 체코에서는 ‘어깨 결림‘이라는 말도들은 적이 없으니, 말이 없으면 신체 감각도 없게 마련이라고 했다(체코에 가고 싶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는 이 언어가 나에게 실질적인 효용을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서인지, 교양이 올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대단한 대가가 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 열심히 해도 잘하기는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일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쓸데없는 일‘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담장을 없애고 학교 주변에 문방구, 카페, 야채 가게 같은 상점을배치해서 지역 주민들이 학교를 쳐다볼 수 있게 해 주면 더 안전한 학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학교는 외부 세계나 외부 자연과격리된 곳, 실내에서 감시하기 좋은 곳으로 진화해 왔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아이들을 가둬 두는 실정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점은 과시를 하려면 쓸데없는 데 돈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생활필수품에 돈을 써서는 과시가 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피라미드 같은 건축도 쓸모가 없어서 과시가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한 돌무더기를 만드는 데 20년 넘게 국가의 모든재원을 낭비했기 때문에 과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에 피라미드가 꼭필요한 건축물이었다면 과시가 되지 않는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고인돌은 특별한 기능이 없다. 그래서 고인돌이 과시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가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불안한 자들이 과시를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오사마 빈라덴은 2001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비난하면서 민간 여객기를 충돌시켜 무너뜨렸다. 미국은 그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었는데 놀랍게도 기존의 쌍둥이 빌딩보다 낮은 건물을 건축했다. 미국은 부르즈 할리파보다 높은 초고층 건물을 지을 자본과 기술력을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을 짓지 않았을까‘
이유는 미국은 지금 누가 보더라도 세계 최강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를 살펴보면 몇 명의 이름난 부자들이 있다. 위인전 제목에서 봤던 철도왕 밴더빌트‘, 석유왕 록펠러‘, ‘강철왕 카네기‘, ‘자동차왕 포드‘다. 이들이 부자여서 위대한 것일까? 아니면 위대해서 부자가된 것일까? 이들이 돈을 버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사건도 많이 일어났고 독과점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우리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미국인들의 욕망과투쟁으로 인해 우리 삶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이제 미국 국민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에 록펠러가 만든 휘발유를 넣어 달리고, 카네기가 만든 강철로 지은 고층 건물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 후 저녁에는 모건이 만든 발전소 전기를 이용해 에디슨이 만든전구를 켜고 지내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경제 구조가 바뀌는 지금도 석유, 자동차, 대형 유통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몇몇은 도태되고 몇몇은 진화할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향후 수십 년간 우리 도시의 모습을 결정할것이다. 혹 여러분의 회사가 속한 산업이 사양산업인가? 그렇다면 철강 회사가 건축 자재 시장을 개척했던 것처럼 우리 환경을 바꿀 기회를 가졌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의 주거지는 온돌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항상 1층이었는데,
보일러의 도입으로 드디어 고층 주거와 고밀도 도시를 만들 수 있게되었다.

건축적으로 유추해 보면 도시 고밀화와 사회 진화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보인다. 도시의 고밀화는 신흥 계급을 만들고 사회의 민주화와 진화를 이루어 낸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변화는 ‘온돌과 아궁이‘가 분리되면서 시작된 일이다.

잘 만들어진 건축물은 ‘상을 받은 어린아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고 믿는다. 제대로 설계된 공간은 갈등을 줄이고 그 안의 사람들을 더화목하게 하고, 건물 안의 사람과 건물 주변의 사람 사이도 화목하게하고, 사람과 자연 사이도 더 화목하게 한다. 좋은 건축은 화목하게 하는 건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독서가 취미입니다 - 국어책 읽기만큼 쉬운 영어독서습관 만들기
권대익 지음 / 반니라이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어를 한국어처럼 접근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수월하다는 거였어요. ‘나는 한국인이고, 이 글은 영어라서 내가 모를 수 있는 게 당연한 거야‘ 라고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했습니다.

영어 독서를 계속하다 보면 get‘은 그냥 ‘get‘이 더 편할 때가 있고,
‘take‘는 ‘take‘ 자체가 그냥 더 편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 한 번역가가 쓴 책을 읽었는데 번역가 사이에서 가장 까다로운 단어 중의 하나가 ‘commit‘ 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어도 결국은 언어이기 때문에 한글과 정확히 일치될 수가없거든요. 외국어의 핵심은 전달력이지, 정확성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면 영어를 단어 대 단어로 대응하기보다는 의미전달의 수단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이는 영어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이렇게 쓰이는데, 영어에서는이런 식으로 쓰이는구나‘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가진 사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도 주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인지혁명이란 역사가 생물학에서 독립을 선언한 지점이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쟁기질을 도입함으로써 마을의 인구가 1백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
고 가정해보자. 이중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굶어 죽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열명이 있었겠는가? 돌아갈 길은 없었다. 덫에 딱 걸리고 말았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 중 상당수는 돈을 많이 벌어 35세에 은퇴해서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유수 회사들에 들어가힘들게 일한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거액의 주택 융자, 학교에다니는 자녀, 적어도 두 대의 차가 있어야 하는 교외의 집, 정말 좋은와인과 멋진 해외 휴가가 없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갖게 된다. 이들이 뭘 어떻게 할까? 뿌리채소나 캐는 삶으로 돌아갈까? 이들은 노력을 배가해서 노예 같은 노동을 계속한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함무라비 법전이 신화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 인권도 신화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만일 인권이 오직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차리면, 사회가 붕괴할 위험이있지 않은가?

서로의 신앙에 동의할 수 없는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돈에 대한 믿음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신뢰는 인간이나 공동체, 혹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돈 그 자체 그리고 돈을 뒷받침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된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주화가 떨어지면 우리의 신뢰도 사라진다.

문화적 유산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는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길을 택하든 그 첫걸음은 이 딜레마가 복잡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과거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선인과 악당으로 나누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보통 악당들의 뒤를 따른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것이라면이야기가 좀 다르겠지만.

농업혁명은 종교혁명을 동반한 것으로 보인다. 수렵채집인들이 채집한 식물과 사냥한 동물은 호모 사피엔스와 동등한 지위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호랑이가 인간을 사냥한다고 해서 인간이 호랑이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 없듯이, 인간이 양을 사냥한다고 해서 양이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서로 직접의사소통을 했고, 자신들이 더불어 사는 거주지를 다스리는 질서에대해 협의했다. 농부들은 달랐다. 이들은 동식물을 소유하고 조작했다. 자신의 소유물들과 협의함으로써 스스로를 격하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꼭 그래야만 기분이 나아진다면 공산주의를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계속 불러도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와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주장하는 신 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일관성이 있으려면, 적어도 불교, 도교, 스토아철학의 일부 분파는 종교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목록에 올려야 한다. 그리고 거꾸로 많은근대 이데올로기 속에 신에 대한 믿음이 계속 존재하며 그중 일부, 대표적으로 자유주의는 그런 믿음이 없다면 거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주목해야 한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이 크게확대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대부분이 대처할 필요가 없었던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못하며 지금의 지식도 잠정적인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가 공유하는 신화에까지, 즉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어주는 신화에까지 적용된다. 만일 이 신화들 중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공동체, 국가, 국제 시스템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류가 어떻게 해서 앨러머고도와 달 - 수많은 다른 목적지가 아니라 - 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심리학자, 생물학자,
사회학자의 업적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사회학을 형성했고 다른 방향들을 무시하면서 특정 방향으로만밀어붙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고려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은행과 정부는 미친 듯이 돈을 찍어냈다. 지금의 경제위기가 경제성장을 멈추게 할지 모른다고 모든 사람이 겁에 질려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난데없이 조 단위의 달러와 유로와 엔을 만들어서 값싼 신용을 시스템에 펌프질해 넣고 있다. 그러면서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전에 과학자, 기술자, 공학자가 어찌해서는 뭔가 정말 큰 건수를올리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생명공학 기술이나 나노기술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새로운 발견은 온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조해낼 수 있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은행과 정부가 2008년부터 만들어낸 조 단위의 환상의 돈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거품이 터지기 전에 연구실들이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미래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불과 몇십 년마다 새로운 에너지원이 발견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가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도 에너지 고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용 가능한 화석연료가 고갈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세상에는 에너지 결핍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족한 것은 에너지를 찾아내 그것을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