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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 개정3판
막스 피카르트 지음, 최승자 옮김 / 까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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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소설가 신경숙은 말했다. 한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한국적인 정서를 소설에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로 생각되는 신경숙의 추천이 있었기에, 순전히 그 때문에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번역한 이가 최승자 시인이라는 이유도 한 몫 하였으나 이건 선택하기로 한 후에 알게된 것이고, 또 번역자가 다른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다, 이미. 하지만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라서 더 호감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또 다른 소설가 전경린이 자신은 인간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해준 책이라, 가히 궁금하지 않은가?!


참고로 인간과 침묵의 세계를 모두 구입하여 읽었지만 리뷰는 침묵의 세계만 쓰기로 한다.

이 책은 시집과 에세이의 중간에 서 있는 책으로 읽혀진다. '침묵'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하지만 분명히 인식되는 그것을 주제로 참으로 여러 챕터를 세밀하게 나누어 묘사하고 있다.

동물과 침묵, 이라는 챕터가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동물들의 그 말없고 행동있음에 대한 태도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동물들은 인간보다는 더 침묵에 가까운, 그러므로 좀 더 훼손되지 않은 어떤 존재들이다.
특히 고양이는 동물이면서도 식물스러운 성격 즉 사색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태도와 행동을 가장 많이 취하고 있는 동물 같은데 이 책에 묘사된 동물들의 침묵을 읽다보면 인간의 언어로는 닿지 않는 보다 신비한 언어인 침묵을 구사하는 동물들에 대해 외경심을 좀 더 많이 품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눈에 보이진 않으나 의식할 수는 어떤, 세상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겹을 만나 본 느낌이다. 힐링과 긍정적인 메시지, 혹은 소녀 취향의 에세이를 원한다면 이 책을 갑갑하고 지루한 책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침묵도, 이런 생각도, 이런 겹도 존재한다. 신비롭지만, 느낄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무시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어떤 것, 즉 삶과 생명에 관한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사유와 투명한 묘사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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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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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어떤 소설은, 소설 그 자체보다 작가가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가 되는 그 순간, 작가로서 독자에게 첫인사를 전하는 바로 그 과정까지가 포함되어 더욱 인상적인 소설이 있다.  

 

  

내겐 이 소설이 그러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 궁금증을 느껴 인터뷰를 더 상세히 찾아보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마흔 중반의 나이에, 숱하게 떨어진 최종심의 경력에, 작가가 되기까지 거쳐야했던 글쟁이 언저리의 직업들에 대해, 그리고 하도 오래되어서 뭐, 그다지 라는 쓸쓸한 체념이 묻어나는 당선 소감을 읽지 않았다면, 나에겐 그저 그럭저럭 재미있는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상금도 일억이고, 곧바로 인기작가가 될 수도 있을 유명한 문학상으로 작가가 됐으니 좋겠다, 뭐 그런 정도 였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를 밝히지 않은 책의 날개와는 달리 인터뷰에는 나와 있는 그의 나이와 쓸쓸한 표정들과 체념이 묻어나는 인터뷰 문장들을 보면서 내게는 이 책의 첫 장을 읽기도 전에 미리 이미지가 정해져버렸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그러면서도 광기와 비슷한 체념이 오롯이 문장에 담긴.

 

솔직히 이 책의 문장이 미문이라곤 할 수 없다. 우리는 숱한 아름다운 한국 문학들을 통해서 모국어의 여러 국면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문장들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분명히 담겨 있다, 무엇이?

작가가 되기 전까진, 백수도 아니고 성실한 생활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버텨 온 한 인간의 불안하고 고독하고 안쓰러운 영혼의 기척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그 외로운 문장들을, 그 안에 담겨 있는 쓸쓸한 시간들을 천천히 아껴 읽었다.

하지만 오래 준비한 작가답게 문장 하나하나를 억지로 짜내지 않고, 작가가 자신의 인식 안에서 알고 쓴 작품인지라 쉽게 쉽게 읽혔다. 쉽게 읽혔다는 소리는 결코 모욕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안에서 오래 반죽하고 씹어서 쫄깃한 수타면처럼 술술 잘 넘어가는 문장을 뽑아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오래 작정해 온 작가답게 책 속의 설계들도 세다. 온라인 게임, 탈북자, 어둠의 업소들, 어둠의 업소들에 종사하는 사람들, 시체절단 등등.


21세기 광장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광장이 뭐지? 할 문학에 관심없는 독자들도 남과 북, 이데올로기, 정체성, 이런 이야기들은 잊고 그냥 죽죽 읽어도 재미있을 책이다.


나처럼 쓸데없이 작품의 주인공의 현실과 게임 속을 구분 못하고 주절대는 소리에 마치 '영혼을 인두로 지진 것처럼 지우지 못한 상처'가 있다는 작품 속 문장 처럼 오랫동안 이 데뷔작을 만들기 위해 속으로 현실과 꿈 사이에서 헤매왔을 작가를 생각하면서 더 공감하고 더 안타까워하고 더 불안해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자신과 생활을 담금질해 온,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그곳에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는 자에게  축하와 박수를 함께 보낸다. 이 책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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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2011-08-0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네요.저는 두번이나 읽었답니다.^^
 
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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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세살, 뒤늦은 사춘기를 지독히 겪어내는 한 사내의 방황, 서글픈 사랑. 스스로 선택한 형벌의 종류로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이 저 안개 낀 신비의 공간 '유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인 '나'는 어릴 적 바닷가에서 버려진 거리의 여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밤마다 어머니를 낯선 사내들에게 뺏긴 채 서러움에 흐느끼면서 자란 외롭고도 슬픈 성장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스승'을 만나서 유리로 가라는 말을 듣게 되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불교의 법처럼 자신의 스승을 죽이고 신비의 고장 유리로 떠난다.

낯선 그곳에서 그는 어떤 여자를 만난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낯선 사내들에게 몸을 내주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더럽고 슬픈 갈보.
그녀는 그의 충격적인 첫 만남.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스스로 그의 임자가 되기를 청한다.
그는 마른 늪에서 물고기 낚기라는 허무맹랑한 미션을 앞에 두고 미칠 듯 괴로워하다가 유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 여인은 언제고 다시 돌아오라며 그를 기다린다고 한다. 


유리를 떠난 그는 여인이 알려준대로, 중에게 대접을 잘 해준다는 한 노인을 찾아간다.
그 노인은 엄청난 부자다.
하지만 노인의 아비는 그 부를 모으기 위해 그 마을에 마약, 도박, 창녀 등 악한 것들을 도입하고, 사람들이 그에 병드는 것을 묵인했다.
그 죄업을 씻기 위해서 노인은 마을 사람을 새로 선도해줄 정신적 지도자를 찾아 헤매왔다.

노인은 주인공에게 설법을 청하고, 그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 온 예수와 유다와 뱀과 선악과와 아담과 하와 등에 대해서 긴 설법을 풀어놓는다.
(이 부분은 도스트예프스키의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 파트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 설법을 들은 노인은 오랜 숙원이던 동네 사람들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그에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주인공은 거절하고 다시 유리로 돌아간다.
그 사이 주인공에게 사랑을 느껴버린 노인의 아름다운 손녀의 고백도 거절한 채 그는 스스로 그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저주받은 그 곳으로간다.
왜냐하면 그곳은 자신의 심연. 지독하고 달콤한 자폐가 현실로 펼쳐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덜 외로운 가정에서 덜 외롭게 컸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무서운 외로움과 갈 곳 모르는 방황이 결국 그의 삶을 이끄는 지도였다.
하여 성공과 안락함이 보장된 저 노인과 세상의 밝은 빛을 버리고 주인공은 가학적 변태처럼 스스로 가장 안락한 지옥 속에  머리를 담그러 가는 것이다.


그의 사춘기는 그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낯선 사내들에게 뺏겨야 했을 때부터 시작되어 그의 평생을 사로잡아버린 고통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는 다른 어른들처럼 자신의 사춘기를 외면한 채 어른으로, 평범한 속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의 근원을 낱낱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천진하고 행복했던 개인이 어느 날 지각이 열림으로써 추방당해야 했던 에덴에서의 그 남자처럼.


에덴에서 추방된 아담은 고된 노동으로 인간 세상의 남자됨을 앓았다면,
주인공은 에덴에서 추방된 채로 계속 에덴에 머물러 천국이었던 그곳이 사실은 지독한 지옥이었음을 밝히기 위해 지독할 정도로 파고들면서 그 모든것을 탐구하고자 한다.
 실로 전생애를 건 지옥에의 탐닉.... 그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각종 종교, 오컬트, 연금술, 음양오행설 등등 관념들에 집중한다.

 
유리, 즉 스스로의 심연으로  돌아온 주인공.
유리에 돌아온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다 죽어가는 '임자'의 임종이다.
임자, 그 더럽고 슬픈 갈보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내가 스님의 물고기가 되겠다고.
유리에서는 마른 늪에서 물고기를 낚으면 촌장이 되는 법이 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유리의 육대 촌장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영광이 아니다.
그는 유리의 육대 촌장이 된 채로  예전에  자신이 죽였던 다른 중들에 대한 살인죄로 처벌받을 처지에 임한다.

도망갈 수 있었지만 그는 그냥 남는다.
마침내    '임자'가 죽자 주인공은 <티벳 사자의 서>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해서 그녀가 좋은 부모를 만나기를 축원해준다.  하지만 그녀의 넋은계속 그를 못 떠나고 맴돌다가, 주인공을 사랑한 부잣집 손녀와 육체적 합일 장면을 보고 그들의 딸로 다시 태어나길 선택한다.
주인공의 임자에서 그의 딸로,,, 마치 예전 바닷가의 그 늙은 어미처럼 또 한번 슬프고 징그러운 업의 인간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마침내 유리에서, 40일 째 되는 날.
자신이 선택한 방법대로,  나무에 매달린 채   주인공은 세상을 떠난다.
이토록 자신의 지옥에만 침잠한 개인이라니....나는 이 소설의 극단에 김훈의 칼의 노래가 서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지옥에 마주선 두 사내의 전혀 다른 선택...
유리를 마주한 주인공 사내는 완전히 고립되고 은폐된 것에 만족하며 죽음을 선택하고
칼의 노래 속 주인공은 고통을 마주하고, 세상과 마주한 채 세상 속에서 죽기를 택한다. 사람들은 전자를 한 땡중대가의 죽음이라고 하고, 후자는 영웅의 죽음이라고 부른다.
하나는 어둠의 죽음이고, 하나는 빛의 죽음이다. 그러나...

 일언이폐지.
세상이 뭐라 부르건 간에,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것의 이름은  고통, 아름답고 찬란한.

 
지옥.
지독하게 실존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공간. 지식이 열리는 곳. 의식. 어쩌면... 신?
천국.
스스로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공간. 배경에 해맑게 파묻혀서 살 수 있는 곳. 무의식. 어쩌면... 악마?

 자신의 지옥을 들여다 본자는, 스스로 천국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은 뱀도 아니고 사탄도 아니고 유다도 아니다.
바로 '신'이다.

개인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자각'이 열리게 하여, 자신이 인간임을 알게 하는 치명적인 선물.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저 행복하고 멍청한 어린애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뱀으로 변장한 채 그들을 유혹한 신은 그들에게 '지식'을 선물하며 동시에 끔찍한 고뇌를 선물한다. 그리고 '인간'이 탄생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옥이 탄생한다. 삶. 그것은 '업'이.. 업이... 어비.. 어버이가 내려 준 고통스러운  축복이다.
 
이 소설은 묻는다.
그러니 신은 정말 선한가. 악마는 정말 악한가. 천국은 정말 좋은가. 지옥은 정말 끔찍한가.
<죽음의 한 연구>는 결국 <행복의 한 연구>이면서 아직 자신이 천국에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들. 멍청이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상태가, 당신의 의식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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