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 2011년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강희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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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어떤 소설은, 소설 그 자체보다 작가가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가 되는 그 순간, 작가로서 독자에게 첫인사를 전하는 바로 그 과정까지가 포함되어 더욱 인상적인 소설이 있다.  

 

  

내겐 이 소설이 그러하다.   

작가의 이력을 보고 궁금증을 느껴 인터뷰를 더 상세히 찾아보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마흔 중반의 나이에, 숱하게 떨어진 최종심의 경력에, 작가가 되기까지 거쳐야했던 글쟁이 언저리의 직업들에 대해, 그리고 하도 오래되어서 뭐, 그다지 라는 쓸쓸한 체념이 묻어나는 당선 소감을 읽지 않았다면, 나에겐 그저 그럭저럭 재미있는 세계문학상 당선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상금도 일억이고, 곧바로 인기작가가 될 수도 있을 유명한 문학상으로 작가가 됐으니 좋겠다, 뭐 그런 정도 였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를 밝히지 않은 책의 날개와는 달리 인터뷰에는 나와 있는 그의 나이와 쓸쓸한 표정들과 체념이 묻어나는 인터뷰 문장들을 보면서 내게는 이 책의 첫 장을 읽기도 전에 미리 이미지가 정해져버렸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그러면서도 광기와 비슷한 체념이 오롯이 문장에 담긴.

 

솔직히 이 책의 문장이 미문이라곤 할 수 없다. 우리는 숱한 아름다운 한국 문학들을 통해서 모국어의 여러 국면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문장들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분명히 담겨 있다, 무엇이?

작가가 되기 전까진, 백수도 아니고 성실한 생활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오랜 시간을 버텨 온 한 인간의 불안하고 고독하고 안쓰러운 영혼의 기척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그 외로운 문장들을, 그 안에 담겨 있는 쓸쓸한 시간들을 천천히 아껴 읽었다.

하지만 오래 준비한 작가답게 문장 하나하나를 억지로 짜내지 않고, 작가가 자신의 인식 안에서 알고 쓴 작품인지라 쉽게 쉽게 읽혔다. 쉽게 읽혔다는 소리는 결코 모욕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작가가 자신의 안에서 오래 반죽하고 씹어서 쫄깃한 수타면처럼 술술 잘 넘어가는 문장을 뽑아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오래 작정해 온 작가답게 책 속의 설계들도 세다. 온라인 게임, 탈북자, 어둠의 업소들, 어둠의 업소들에 종사하는 사람들, 시체절단 등등.


21세기 광장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광장이 뭐지? 할 문학에 관심없는 독자들도 남과 북, 이데올로기, 정체성, 이런 이야기들은 잊고 그냥 죽죽 읽어도 재미있을 책이다.


나처럼 쓸데없이 작품의 주인공의 현실과 게임 속을 구분 못하고 주절대는 소리에 마치 '영혼을 인두로 지진 것처럼 지우지 못한 상처'가 있다는 작품 속 문장 처럼 오랫동안 이 데뷔작을 만들기 위해 속으로 현실과 꿈 사이에서 헤매왔을 작가를 생각하면서 더 공감하고 더 안타까워하고 더 불안해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든,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자신과 생활을 담금질해 온,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그곳에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는 자에게  축하와 박수를 함께 보낸다. 이 책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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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2011-08-06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네요.저는 두번이나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