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https://bonlivre.tistory.com/493
3장.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가 왕이 되면서 바빌론의 새로운 정치적인 패권국의 수도로 올라온 바빌론
: 이 시기는 페르시아 만의 걸친 인도반도로 가는 해상무역이 폐쇄되어서 새로운 무역 길이 떠오르게 되는데 자그로스 산맥의 낮은 산길을 이용한 육상 길이 떠오르게 된다. 그 시기의 함무라비가 다스리고 있던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 당시 바빌론은 상업적, 전략적 가치가 생기면서 주변의 도시 국가들은 바빌론은 차지하기 위해서 (바빌론은 왕권 세습이 아닌 마르투크(바벨론의신)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다) 각축을 벌였다.
결국 함무라비가 왕권을 갖게 되고 이라크의 국소 국가들을 병합하여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는 시와 예술을 발전시키고 납세와 공공노역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민족은 만들어서 국제도시로 만들고, 마르투크의 주신으로 종교 시스템을 마련하여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을 까지 만들어서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4장. 기원전 14세기 부르나부라야시 2세의 치게 하에 넒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식과 정치적 네트워크의 구심점이 된 바빌론
:함무라비 왕조가 망하고 이후 키사트 왕조 부르나부라야시 2세는 딸들을 이용해서 주변의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히타이트. 이집트, 이란 남서부의 엘람)
- 우리나라의 연표를 보자면 BC4세기에 옥저, 부여, 마한, 진한, 변한 이 시작이 되었다고 기록이 되었다. 그 당시에 이렇게 도시 국가를 이루고 히타이트(최초의 철기 무기를 갖은 나라)와 힘을 견주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바벨론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5장, 6장. 기원전 12~기전원 7세기 사이에 메소 포타 미나 남부 이역의 정치적으로 분열하면서 바빌론이 겪은 정치적 분침을 다루고 있다.
: 바벨론의 왕은 승계가 아닌 승리자가 왕이 된다. 그리고 도전자들은 예산길라 신전에 있는 마르두크 신의 인정한 사람이면 가능하기에 바빌론의 주변국의 도전을 계속해서 받게된다. (아시리아, 칼데아, 엘람의 왕등등이 관심을 갖음)
또한 왕에 오른 자는 국민에 대한 관심 보다는 신전에 납세와 제사를 내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도시 엘리트들의 특권을 침했다
7장. 외부적 관점에서 강력해진 왕국인 아시리아와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