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역사 - 홀연히 사라진 4천 년 역사의 위대한 문명도시를 다시 만나다 더숲히스토리
카렌 라드너 지음, 서경의 옮김, 유흥태 감수 / 더숲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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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의 역사 / 카렌 라드너

바벨론에 아주 오래전 역사 책 속의 1장도 안 될 정도의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바벨론은 함무라비 법전과 쐐기문자 그리고 성경 속의 인간의 욕망의 바벨탑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건축에 관심을 같게 되면서 한 번 더 바벨론에 대해서 만나게 되는데, 세계 미스터리 건축물 중에 하나인 공중정원과 오래전 건축인 지구라트(ziggurat) , 그리고 복원된 바빌론의 건축양식. 볼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을 갖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많은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는 것이 없기에 상상하기엔 턱 없이 부족합니다.

신기한 인연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제 상상력의 부족한 공간의 여백을 메꾸게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제 미지의 세계를 탐한다는 생각으로 읽어 버린 역사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 이 책의 구성 / 내용및 소개

1장. 바빌론의 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속에서 바빌론이 차지한 위치.

그리고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의 사이의 바빌론( 지금의 이라크)

: ' 비옥한 초승달 지대' 미국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헨리 브레스테드가 말한 이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중동 지역을 휘어 감싸는 산맥들을 따라 페르시아 만에서 홍해까지, 동쪽에서 서쪽으로 먼저 자그로스산맥이 내달리고 토로스산맥이 뒤를 잇는다. 마지막 지중해와 나란히 달리는 레바논산맥

- 비옥한 토양과 낙농 그리고 건축의 재료인 진흙까지 주변 지역보다는 늦게 시작된 도시지만 주변의 국가들 (국가에는 히타이트,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의 주변의 강대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문화도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2장. 바빌론의 쇠락한 폐허와 재발견

: 바빌론의 찬란한 건물양식은 시멘트가 나오기 전이기에 진흙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알아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탐험가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바빌론

로마의 황제부터 동인도 회사를 필두로 한 고고학적 발굴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잠시 멈추고, 이라크 후세인이 이란 크 전쟁 때도 그 유물에 복원을 계속 이여 졌습니다. 건축물의 복원 네부카드네자르의 남쪽 왕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후세인의 몰락과 함께 바벨론의 유물의 발굴과 복원 그리고 관리는 어렵게 되고 지금은 황량한 건물만 남았다고 합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아서 지구라트, 공중정원, 바벨론의 건축양식은 저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인데

이라크에 가서 볼 자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면 어떤 느낌이지 사실 상상이 안돼요.)



사진출처 : https://bonlivre.tistory.com/493

3장.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가 왕이 되면서 바빌론의 새로운 정치적인 패권국의 수도로 올라온 바빌론

: 이 시기는 페르시아 만의 걸친 인도반도로 가는 해상무역이 폐쇄되어서 새로운 무역 길이 떠오르게 되는데 자그로스 산맥의 낮은 산길을 이용한 육상 길이 떠오르게 된다. 그 시기의 함무라비가 다스리고 있던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 당시 바빌론은 상업적, 전략적 가치가 생기면서 주변의 도시 국가들은 바빌론은 차지하기 위해서 (바빌론은 왕권 세습이 아닌 마르투크(바벨론의신)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다) 각축을 벌였다.

결국 함무라비가 왕권을 갖게 되고 이라크의 국소 국가들을 병합하여 제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는 시와 예술을 발전시키고 납세와 공공노역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의 이민족은 만들어서 국제도시로 만들고, 마르투크의 주신으로 종교 시스템을 마련하여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을 까지 만들어서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4장. 기원전 14세기 부르나부라야시 2세의 치게 하에 넒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식과 정치적 네트워크의 구심점이 된 바빌론

:함무라비 왕조가 망하고 이후 키사트 왕조 부르나부라야시 2세는 딸들을 이용해서 주변의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히타이트. 이집트, 이란 남서부의 엘람)

- 우리나라의 연표를 보자면 BC4세기에 옥저, 부여, 마한, 진한, 변한 이 시작이 되었다고 기록이 되었다. 그 당시에 이렇게 도시 국가를 이루고 히타이트(최초의 철기 무기를 갖은 나라)와 힘을 견주면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만큼의 바벨론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5장, 6장. 기원전 12~기전원 7세기 사이에 메소 포타 미나 남부 이역의 정치적으로 분열하면서 바빌론이 겪은 정치적 분침을 다루고 있다.

: 바벨론의 왕은 승계가 아닌 승리자가 왕이 된다. 그리고 도전자들은 예산길라 신전에 있는 마르두크 신의 인정한 사람이면 가능하기에 바빌론의 주변국의 도전을 계속해서 받게된다. (아시리아, 칼데아, 엘람의 왕등등이 관심을 갖음)

또한 왕에 오른 자는 국민에 대한 관심 보다는 신전에 납세와 제사를 내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하여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도시 엘리트들의 특권을 침했다

7장. 외부적 관점에서 강력해진 왕국인 아시리아와의 관계



8장.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가 쳐들어 오면서 바빌론은 날개가 꺾인 후 도시의 운명을 다룬다

9장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된 뒤의 바빌론

: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 다리우스 3세를 가우가멜라전투에서 격퇴한 후 바빌론으로 항하였다. 예전의 아시리아 왕들과 키루스가 그랬던 것처럼 바벨론의 왕권을 수락하기 위해서 도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페르세폴리스나 수사보다는 바벨론은 선호해서 제국의 수도로 삼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요절을 했고, 기원전 305년 티그리스강의 셀레우키아는 셀레우코제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세워지면서 바빌론은 20년도 안되어서 수도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미케 도니아 정착민들은 신도시로 이주했으며 그로 인해서 지방의 도시가 되었다. 그 후 그들의 언어 쐐기문자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쐐기문자의 종말), 종교적인 예산길라의 예배 또한 중단이 되었다.

◆ 찬란한 바빌론의 역사

책을 읽고 난 바빌론에 대한 생각은 아름답고 찬란한 문화를 갖은 바벨론의 역사는 사람의 수명과 같이 나라가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그 명을 다 했다고 느낌입니다.

지리적으로 풍족한 토양과 낙농을 기반으로 도시는 성장했고, 때마침 동양과 서양의 중간의 무역업을 통해서 성장한 아름다운 도시국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18세기라는 그 시대적인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열심히 바빌론은 자라났고, 그 시대의 주변국에 영향을 줄 만큼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바벨론은 그 시대에 맞게 변하지 못하고 또한 역사적인 흐름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 갔기에 자연스러운 소멸이 되어 버린 바벨론

물론 내부의 문제들도 있었지만 한 인간의 삶과 같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전성기를 맞고 그리고 노년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소멸) 사라져 버린 환상적인 꿈의 도시. 이러한 환상과 이야기들이 많기에 아직도 저는 사라져버린 오래된 도시 국가 바벨론에 대해서 궁금하면서 그리워 하나 봅니다.


본 포스팅은 문화충전 200 %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으로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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