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여행이란 무엇인지 왜 여행하는지 그런 여행에 관한 모든 질문에 문학적인 답으로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사색하는 시간을 선사했던 전작<여행자의 책>을 뜻깊게 읽었었기에

이번 책 또한 보석 같은 글들을 기대하며 만나게 되었다.

 

 

세상의 끝.

제목부터 아찔하면서도 아득함이 다가온다.

전작처럼 그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책에서 발췌한 그런 빛나는 주옥같은 문장들로 담긴 책이련가 싶었는데

이번 책은 그의 첫 소설집이었다.

간결하지만 임팩트 강한 열다섯 편의 이야기가 다채롭게 실려 있다.

 

 

역시 베테랑 여행가답게 파리, 독일, 런던, 코르시카섬 등 정말 다양한 장소들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

이야기 마다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하였기에 각 도시마다의 분위기를 사뭇 그려보며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마치 그 곳에 나 또한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들의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는 생동감이 들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살고있다.

낯선 땅이 아니라면 이들은 심리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해있기도하다.

그래서일까.

짧게 짧게 끝나는 소설이지만 여운은 전혀 짧지가 않다.

도저히 물러날 수 없는 그런 긴박함 또는 조급함, 답답하기도 한 그런 상황에 같이 안타까워하며 읽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끝장을 달리고 있었다.

 

말은 곧 행동

 

 

제목부터 강렬하게 다가왔던, 남자의 내면적 갈등과 표현이 너무나 섬세해서

이 상황속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 그 상황이 너무나도 잘 그려졌다.

마치 한편의 영화장면을 보고있다라는 생동감까지 들었던 챕터의 이야기다.

 

 

셸드릭 교수의 아내는 자기 삶을 살고싶다며 그를 떠나버렸다.

셸드릭이 애걸복걸했지만 '당신의 말이 문제'라며 고국으로 돌아가버렸고

그는 그런 상황속에 아무런 의미를 찾을수 없었다.

그런 그가 한적한 코르시카 섬 마을의 한 식당에 들어섰고

그는 웨이트리스인 한 여자를 보고 그여자를 데리고 달아나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카운터 뒤에 있는 남자가 그녀의 남편인지 아닐지는 그에게 중요한것이 아니었다.

무모하고 필연적인 결정이었지만 그는 이제 실행할 일만 남은것이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때 그는 말했다.

"제발, 나와 함께 떠나요."

"내게 차가 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함께 가기를 원해요."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녀는 그를 쳐다본다.

그녀는 말했다.

"거스름돈을 갖다 드릴게요."

그러고는 가버렸다.

 

그녀는 금방 돌아오지않았고 그렇다고 그는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는것이었다.

너무나 무모하고 충동적으로 애원하듯 요쳥했기에

그녀는 겁먹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 스스로를 용서치 못했을 테니까.

 

그녀가 작은 접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무말없이 카운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그 접시에서 한 문장을 보았다.

"문을 닫은 후 파울리 동상 앞에 있겠어요."

 

서둘러 나온 식당에서 그는 성벽에 올랐고

휘날리는 바람에 전율을 느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린후 그는 파올리 광장으로 갔고 동상앞에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차에 올라탔고

"빨리 가요." "멈추지 말아요."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녀는 "내 말 못 들었어요?" "가요! 빨리 몰아요!"라며 재촉했다.

 

포르투에 가고싶던 그에게 그녀는 포르투는 구역질 난다며 말했다.

미국에 가고싶다는 그녀에게 그는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미국을 보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왜 나를 따라왔냐는 물음에 그녀는

"그러고 싶었어요. 지난 1년간 떠날 계획을 세워 왔거든요.

그런데 항상 일이 틀어졌죠. 당신을 보고 조금 불안했어요.

경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몇번의 대화가 오고가는 중 그는

그녀가 자신을 약간, 어떤 이유도 없이 싫어한다는 것을 벌써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 아이가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나를 뭘로 보는거냐며 날카롭게 답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대학교수라고 쳐도 옷이 너무나 초라하다면서.

그렇다. 그는 그녀를 구해준 것이다!

 

그녀를 데릴러 갈때만 해도

로맨스를 기대하며 기쁜마음으로 한걸음 달려갔을터인데

그녀는 그저 탈출하기를 위한 마음 뿐이었다니.

슬픈 셸드릭의 해프닝이다.

이 둘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여행지의 설레임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과

그 용기의 결말이 이렇게나 현실이라는 일이

씁쓸하면서도 셸드릭의 처지가 안타깝다.

 

여인의 초상화

 

 

하퍼는 파리에서 자기에게 전달될 어마어마한 현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돈 꾸러미를 미국으로 운반할 예정이었다. 그는 배달원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을 허비하도록 상품은 받지못하고

언더쇼는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리지. 다음 주 전에는 안 될 거요."라며 말한다.

그는 묻는다.

"그럼 월요일에?"

"그것도 분명히 말할 수 없소."라며 언더쇼는 단호히 얘길한다.

그러나 그는 항의할 수 없었다. 그는 기껏해야 배달원이었고 언더쇼는 그에게 설명해줄 의무가 없었다.

하퍼는 오로지 한 가지 일을 위해 파리에 왔고 오로지 그 한가지 일에만 집중이 되어 있었다.

그는 산책하려고 마음먹었고 오래지 않아 언더쇼 사무실로 가게되었다.

 

 

"여기 안 계세요." 비서가 말했다.

하퍼는 당혹감을 감추려고 "안 계시는 건 알아요. 그저 인사하려고 왔어요."란 말로

"당신이 한잔하고 싶을 것 같았어요."까지 덧붙인다.

그들은 한 술집을 가게되었고 그녀의 이름이 클레어라는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술집에 나와선 그의 호텔에서 한잔 더 하겠냔 물음에 그녀도 따라 간다.

밤을 함께 보낸 그녀는 약을 먹어야한다며 일찍이 떠난다.

그다음날도 전날의 반복이었다.

 

 

하퍼는 클레어에게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결혼 이후로 그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아왔고 다른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걱정스러웠다. 자신이 다른 여자에게 빠진다면 그건 심각한 사건이 될 테고

집을 떠나야 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야하지 않냐며 그녀를 깨웠지만

그녀는 이번엔 약을 가져았다며 다시 잠을 잤다.

그리고는 악몽을 꾸었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악몽을 듣고 난 하퍼는 마음에 공포가 일었다.

자신이 유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간 슬픈 여자와 기이한 곳에 갇혀 있는 것 같음을 느꼈음에.

 

갑자기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것 같은 생각에 빠져있을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그는 극심한 공포에 "전화기 만지지 말아요!"라며 비명을 지른다.

아내의 전화일거라고 생각한것이다.

이 순간처럼 아내를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는 전화기를 잡았다. 언더쇼였다.

"준비되었소. 와도 좋소."

"고맙습니다"하퍼는 고마운 심정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의 행적을 의심하지 않도록 그들은 따로따로 도착을 했다.

그가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나 언더쇼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던 그 였지만 그는 그를 보며 적의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클레어는 오늘밤에는 그를 만날 수 없고 어떤 여자를 만나러 갈거라며 인사한다.

모두 나가고 난후 그는 주저앉고싶음을 느낀다.

그는 모욕당한 느낌이었고 지금처럼 자신이 혐오스러운 적도 없게 느낀다.

돈다발로 묵직해 진 서류 가방을 보자 자신이 아직 파리에 있다는 것이 생각난다.

이 수치스러운 볼일을 끝내야 미합중국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하염없는 기다림에 찾아간 그 곳에서 만난 인연이 혹시 자신의 삶을 끝장나게 해버릴지도 모르겠단 대목에 같이 두근대며 읽었다.

이 스토리 또한 장면 장면마다의 느낌이 전해진다.

무사히 파리의 일을 끝내고 돌아갈 하퍼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안도감을 느끼지만 씁쓸함도 느끼며..

 

야드세일

 

 

어쩌다 보니 이번 여름 '나'와 함께 이스트 샌드위치에서 보내게 된 플로이드.

플로이드의 아버지는 보스턴에 있는 아파트와 그의 승무원 애인에게로 가벼렸고,

내 언니는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이 되어 커티헝크로 갔다.

나는 부모 대신 어린 플로이드를 돌봐주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플로이드는 변한 겉모습만큼이나 많은 점들이 변해있었다.

 

 

"사모아는 어때?"라는 물음에 "사아-모아"라며 성가대원처럼 입술을 움직이며 발음을 고쳐주기도 하며.

'나'는 선의를 갖고 아는 척하는 사람을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으나 내가 힘들게 기저귀를 갈아주었던 아이가

거들먹거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하지만 플로이드의 다음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달라요.. 누이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요.

늘 제 자신을 스포츠맨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누이는 저보다 두 배는 나무에 오를 수 있거든요."

이 말은 심각했다. 그 애에게는 누이가 없었다. 플로이드는 외동아들이었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없는 동안에 와해되어 버린 가족 대신 허구의 가족을 꾸며내고 있었다.

 

 

한 늦은 오전에 응접실에서 책상다리하고 앉아 있는 그 애를 보았을 때

미국 동물원의 철창 뒤에서 향수병에 걸린 듯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큰 동물이 떠올라 슈퍼마켓에 데려갔지만 그것은 큰 실수가 되었다.

 

신선한 과일 매장에서 그는 특이하게 반응했다.

"사모아에서는 1페니에 바나나 열두 개를 살 수 있어요.

저걸 보세요. 이게 1달러라니! 나 같으면 저런 것에 1달러를 내지 않겠어요."

"이런 건 2센트밖에 안 해요." "거기서 이런 건 말 그대로 거저 주죠."

도저히 참지 못한 '나'는 결국 그 애를 간신히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공격적으로 말하게되었다

"말린 완두콩은 얼마야? 조개 관자는? 옥수숫가루 푸딩은?

표백제는? 자, 합리적으로 생각해봐.

망고에서 이익이 있으면 메이플 시럽에서 손해를 보는거야."

우리는 빈손으로 슈퍼를 나왔으며 집으로 차를 몰면서

나는 플로이드가 더 우울해졌음을 알아챘다.

어쩌면 그 애는 길고 괴로운 여름을 보내게 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는 "분명 네가 네 가족들 사이에서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플로이드" 란 말이 나왔다.

어느 가족을 뜻하는지는 우리 둘 다 알고 있었고 고맙게도 그 애는 다음 날로 떠났다.

플로이드는 "우리는 보통 오후에 낮잠을 자거든요"라던지,

"우리는 언제나 아홉 시에 자리에 들거든요."라며

계속 자신이 있던 자신의 세계를 주장했다.

아마 이게 '나'인 프레디 이모에게 계속 낯설음을 느끼게했던것같다.

그러다가 마트에서의 행동은 한계점을 뛰어넘은 사건이 아니었다 싶다.

하지만 플로이드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간다.

이 아이는 아직 아이이고 부모의 사랑과 고향에서의 추억이 가득한

그런 사춘기 아이일테니 말이다.

사춘기때에는 괜한 고집 또한 부려보게되는 때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아이의 마음 또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만약 후일담이 있다면 행복한 플로이드를 볼수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폴 서루는 대단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무려 열다섯 편의 이야기에 각각의 인물들은 다른 성격과 스타일이 들어있다.

청년, 중년의 여성, 교수, 외교관, 대학생 커플 등 낯선 공간과 어울려지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이야기에 하나씩 빠져들며 마치 그들을 만나고 온 듯한

생생한 감각의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다.

절대적인 고립감에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리워하며,

또 누군가는 억눌렀던 욕망들을 분출하며 일탈을 즐기기도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러한 공통된 마음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배경과 이야기속에 드러나는 쓸쓸하기도한 인물들의 공통된 느낌은

다르지만 또한 같음을 느낀다.  

 

이 또한 폴 서루의 무려 50년간의 여행과 끊임없는 글쓰기에서 비롯된 내공임에 틀림없다란 생각이 들었고

괜히 여행 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게 아니다란 깊은 인상이 남는다.

다음번의 작품은 또 어떤것이 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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