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와 차 한잔 - 그의 사상과 만나다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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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나 아렌트의 책을 꽤 좋아한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혐오와 반지성주의가 가득한 시기를 이겨내기에 그만큼 적합한 책도 거의 없는 듯하다. 그리고 나의 이런 취향에는 김선욱 교수님이 번역하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읽은 책이 바로 그 책이었는데, '어렵고 난해하다'는 소문만 듣고 두려워했던 나의 걱정과 달리 김선욱 교수님의 번역으로 읽은 그 책은 생각보다 술술 읽혔다. 아마도 김선욱 교수님이 평생을 한나 아렌트 철학 연구와 번역에 쏟아온 열정과 시간들이 그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리라. 김선욱 님이 쓰거나 옮기신 한나 아렌트에 대한 글을 볼 때면, 한나 아렌트의 멋진 사유와 철학들에도 감탄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매력을 알게 해주신 교수님께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2.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아렌트 한 사람만이 아니라, 철학사적인 맥락 속에서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는 칸트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막연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대체 어떤 형태로 어떤 부분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된 것 같다. 이를 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정치적 동물'이라는 개념에 대해 "아렌트는 '정치적'이라는 말과 '사회적'이라는 말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이 개념들의 뿌리를 추적하는 가운데 경제에 몰입한 현대의 삶이 어떤 정치적 태도를 놓치는지 발견"하고 "경제에 몰두한 삶 속에서 정치를 회복함으로써 인간적 삶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주장"(p32)한다고 설명하며, 고대의 철학들이 계속되는 수용과 비판을 통해 현대에는 어떠한 맥락을 자리잡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항상 어렵고 버겁다고만 느껴졌던 철학의 매력이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책이다. 아주 쉬운 언어들을 바탕으로 챕터들도 주제별로 짧고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어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김선욱 교수님의 해설을 따라가다보면 한나 아렌트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정치철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3.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미친 영향들을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신 부분들도 인상깊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워낙에 유명하다보니, 유대인 문제가 그의 철학에서 매우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왜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려웠다. 이 책은 적지 않은 챕터를 할애하여 이에 대해 친절하게 해설해준다. 예를 들면, "국민국가가 형성될 때 유대인이 취한 태도와 그들에 대해 유럽 사회가 취한 태도는 국가의 위기와 제국주의의 확대 시기에 근본적으로 변"하고 이것을 통해서만 "유럽의 사회적 집단들과 유대인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된 이유가 드러나"며 "이런 인식이 바탕에 있어야 유대인이 져야 할 역사적 책임의 몫을 알 수 있다"(p235)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유대인문제가 단순히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긴 흐름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어 왔는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객관화하고 유대인과 반유대주의자 모두의 비판을 감수하고 새로운 정치사상을 이끌어낸 그의 용기와 지성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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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실의 일들이 논리적으로 또 합리적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거짓말은 항상 논리를 바탕으로 해서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종종 사실보다는 거짓말이 더 그럴듯해 보이고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을 넘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을 동원하여 사실 연관성에서 말의 진위를 확인함으로써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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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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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학은 국내에선 꽤나 낯선 분야다. 기독교의 신학이나 불교학 등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반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연구하는 종교학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대입 때 잠시 종교학의 매력에 빠져 종교학과 진학을 꿈꿨었는데, 그로부터 몇년이 지난 후 읽은 종교학의 고전, 엘리아데의 <성과 속>은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심리학과 철학, 신학과 인류학 등의 유사학문 분야들 속에서 종교학이 무엇인지 정의하며 고유의 영역을 찾아가는 과정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사람들은 왜 신을 찾을까?라는 유구한 질문에 해답을 따라가는 기나긴 여정에 조금이나마 함께한 것 같다.


#2.

근대 이후의 인간은 중세 이전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성을 찾게된 '합리적' 인간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엘리아데는 이런 근대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근대인들이 말하는 소위 "비종교적 인간은 종교적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좋든 싫든 간에 종교적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근대인들이 가지는 탈종교적 시각마저도 "선조가 만들어낸 상황에서 발전한 것"(p183)이라고 말이다. 모든 반(反, "비종교적")는 정(正, "종교적")을 내포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은 차치하더라도, 신앙과 무관하게 우리는 모두 종교적 세계관 아래서 살아간다. 엘리아데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중요한 시험을 앞둘 때면 두 손 모아 천지신명을 찾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것도, 빨간색으로 이름 쓰는 것이 꺼려지는 것도 결국은 모두 '성스러움'의 영역이다. 하나의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중세의 종교는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모두가 납득하는 미신의 형태로 남아 근대 이후로도 지속되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합리적인' 우리들에게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언뜻보면 무겁고 진지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성과 속>은 생각보다 훨씬 경쾌하고 흥미롭다. 분명 우리와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종교와 성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속에서 투영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에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이를 테면 "신년은 우주 창조의 재현이므로 시간을 그 시초부터 반복한다는 것, 따라서 창조의 순간 그대로 태초의 시간, '순수한' 시간을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년이 '정화'의 계기, 즉 죄나 악마 혹은 속죄양을 쫓아내는 계기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라는 문장에선 새해 첫 날마다 전 해의 기억들은 리셋하며 새로운 결심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져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왜 많은 종교들이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서 피범벅이 된 제물을 바치는지, 새로운 집터를 고르는 일에 신중한 이유와 같이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들에 대한 실마리를 얻어갈 수도 있었다.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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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비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근대인들에게 있어 종교와 신화는 그들의 무의식의 어둠 속에 ‘은폐‘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이러한 인간이 내면의 깊이 안에 생의 종교적 비전을 회복할 가능성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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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문명 - 서구중심주의에 가려진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재발견
임기대 지음 / 한길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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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사 시간에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고2 때 학습지 한 장 분량으로 한 차시의 수업을 들었던 정도였다. 그걸 제외하면 아프리카의 역사는 그저 서구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써 다뤄질 뿐이었다. 유럽 중심의 세계질서가 형성된 근대 이전에는 아프리카가 유럽 그 이상의 융성한 문화를 꽃피웠다는데,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혼자만의 사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리라. 적지 않은 국가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배울 일이 없다. 이런 공백 속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아프리카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가난, 흑인, 사파리, 원시부족, 기아... 사람들의 머릿속 아프리카는 그저 이런 이미지로 재현될 뿐이다.


#2.

<베르베르 문명>은 이런 편견이 가득한 세계 질서를 거슬러간다. ‘서구중심주의에 가려진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재발견’이라는 부제목처럼 세계사가 주목하지 않는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담는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로 대표되는 북아프리카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이것을 통해 미래의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구 중심 질서가 흔들리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다양한 문화권을 조망해야 할 필요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부여한 세계의 질서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베르베르 문명>처럼 그 질서의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주목하는 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

이런 류의 책들을 읽을 때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연구자들의 헌신과 열정에 감탄한다. ‘문송하다’거나 ‘대학원은 죄 지은 대학생이 가는 곳’이라는 자조섞인 한탄이 판치는 세상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일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연구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도 없을 뿐더러 ‘먹고 사는 데 도움도 안 되는 거 왜 세금으로 지원하냐’는 시각도 적지 않은데 그런 어려움을 뚫고 이런 저작을 만들어내는 연구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나의 공부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신념과 믿음을 가진 <베르베르 문명>을 쓴 임기대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본 리뷰는 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없던 문자의 출현은 아니지만, 역사 속에서 ‘주변’에 있던 문자의 가시화는 기존의 언어 체계와 상충할 것이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갈 것이다. 그에 따라 마그레브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도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마그레브 문화의 다양성과 변화 양상, 지역민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데 있어 베르베르 문자 체계가 중요한 이유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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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당한 몸 - 이라크에서 버마까지, 역사의 방관자이기를 거부한 여성들의 이야기
크리스티나 램 지음, 강경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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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은 모든 인류에게 재앙과 같다. 하지만 여성과 약자에겐 더 가혹하다. 그들에게 더 잔인한 방식으로, 도망칠 수도 없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남자들은 죽었는데 그래도 살아남았지 않냐'는 식의 비난마저 따라다닌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말로 살아남은 것일까. 삶이 처참히 부서진 채 생물학적으로 생명이 붙어있는 것이 과연 사는 것일까.

#2.
<관통당한 몸>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의 전쟁 성노예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어보인다. 그 때나 지금이나 폭력 앞에 무너진 여성 앞에 국가는 너무도 무심하다. 피해자의 상처를 보듬는 일은 여전히 개인과 시민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더 슬픈 건 이게 우리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쟁 이후 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와 너무도 닮은 다른 시대 다른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3.
사실 전쟁 중 여성의 성폭력 피해는 근현대사의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언급되지 못했을 뿐, 과거에도 횡행했다. 청나라 때 공녀로 끌려갔다 '환향년'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조선의 여성들, 트로이 전쟁 이후 성 노리개감으로 전락했던 트로이의 여성들...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였다면, 그 속에서는 언제나 전쟁 성폭력의 피해 여성들이 존재했다. 과거의 그들은 역사 속에서 지워져버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그들의 역사가 복원된다. <관통당한 몸>은 단순히 현대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전쟁 앞에 무너진 모든 여성들의 역사가 시작되는,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는 아주 깊고도 뿌리깊은 상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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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포터 2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사회가 과거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사회는 극복하지 못합니다. (...) 여기 도시에서든 마을에서든 타바에서든 그 여인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밤에 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으면 그들 안에는 누가 무슨 수를 써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있을 겁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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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한다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10
노라 엘렌 그로스 지음, 박승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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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우연히 서울시교육청의 공문을 보다가 교육청 슬로건이 눈에 띄었다. "모두가 수화로 인사할 수 있는 사회, 서울교육이 만듭니다." 사실 교육청에서 장애 관련 교육 정책을 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기존의 장애인권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의 사회에서 같은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물론 계속해서 지켜봐야겠지만 그 변화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었다.

#2.
<마서즈 비니어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 사회보다 더 앞선 듯 보이는 모습을 그려낸다. 심지어 200년도 더 지난 19세기의 모습을 복원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를 가진 이들이 관계와 소통, 대화와 정보에서 배제되는 데 마서즈 비니어드 섬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은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의 질서를 수용할 것을 강제하지 않았고, 사회가 장애인의 질서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농인과 건청인은 하나로 스며들었고, 완벽히 하나의 구성원이 되었다. '미래적인 과거'라는 역설적 표현이 떠오르는 이 섬의 모습은 우리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어떻게 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3.
청각장애인이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 한계를 뚫고 비장애인의 세계에 진입한 이들에겐 찬사와 경외를 표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하지만 비니어드 섬은 달랐다. 청각장애인이 납부하는 세금은 건청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득 격차가 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청각장애인들의 결혼 비율 및 마을 활동 참여 경험도 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장애인을 어쩔 수 없이 배제한다는 것이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당연한', 혹은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는 듯하다. 어쨌든 노력하면 길이 보인다. 그 문제가 100퍼센트 해결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향의 전환은 가능하다. 21세기의 우리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 19세기의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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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길사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서즈 비니어드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만약 한 지역 사회가 장애인들을 통합시키려고 노력한다면, 장애인들은 그 지역사회에 완전하고 유익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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