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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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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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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조-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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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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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8
헨릭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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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세기 말 당시나 21세기의 지금이나 센세이션한 결말로 기억되는 입센의 <인형의 집>. 이번에 천천히 다시 읽어 본 <인형의 집>은 결말의 파격만큼이나 두터운 담론을 다룬 이야기로 다가왔다. 지금껏 노라가 집을 떠나는 결말에만 집중하느라 보지 못한 채 놓친 것들이 너무 많았구나, 라는 걸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먼저, 노라는 단순히 자신 앞에 주어진 상황들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헬메르를 향해 노라는 말한다. "그래요,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나는 시작할 거예요. 나는 사회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 밝힐 거예요"(p120). 또한 노라는 자신이  노라는 자신이 "그렇게 아빠 손에서 당신 손으로 넘어갔"(p115)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종속이 대를 이어 계승되어 왔음을 명확히 인지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변화해야 할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었음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행복한 적은 없었"다는 자신을 향해 "놀이는 끝난 것으로 하지. 이제는 교육이 시작되는 거야"(p116)라며 옭아매는 남편에게 노라는 이렇게 되받아친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아내로 교육할 람은 당신이 아니에요"(pp116-117)라고. 그리고 집을 나가며 "나는 더 이상 기적을 믿지 않"(p124)는다고 말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는 이 세상의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했고, 여전히 우리가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2.

<인형의 집>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인물 모두 노동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입센은 이들을 통해 여성의 노동과 계급을 이야기한다.

노라의 친구이자 사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는 크리스티네는 "살기 위해서 (...)  평생, 내가 기억할 있는 동안은 언제나 일을 했"(p91). 그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친구인 노라를 통해 남편이 재직 중인 은행의 일자리를 얻고자 찾아온다. 그리고 그에 대한 고마움으로 노라를 둘러싼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라와 그 자녀들의 유모인 안네 마리는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p56)던 남성들 대신 "아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 놓"(p55)으면서 일을 해야 했다. 부르주아의 삶을 살아가는 노라로선 상상하기 힘든, 노동하는 여성의 삶을 그에게 일깨워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의외였던 점은 노라 또한 한때는 여성 노동자였다는 사실이다. 남편 몰래 돈을 빌렸던 그는 그 돈을 갚기 위해 "방에 들어가 문을 걸고 매일 밤늦게까지 쓰는 일을 했"(p29)다. 하지만 필연으로써 노동을 인지하는 앞의 두사람과 달리 그에게 "돈을 버는 건 참 즐거웠"으며 "꼭 남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p29).

노동을 대한 이들의 태도에서 노동을 다루는 계급에 따른 이미지가 아주 극명하게 갈라진다. 사실 크리스티네와 안네-마리에게도 노라와 같은, 어쩌면 더 강력한 해방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3.

노라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크리스티네가 뇌리에 강력하게 남는다. 사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2018년 예술의전당이 30주년 기념으로 기획했던 <인형의 집> 연극에서도 그랬다. 공연 자체는 개인적으로 매우 별로였지만, (최근 드라마 '슈룹'에서 고귀인으로 열연 중인) 우정원 배우가 연기한 크리스티네만은 달랐다. 카랑카랑한 발성과 꼿꼿한 연기로 표현한 크리스티네는 노라에 가려져 보지 못한 여성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친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러 오는 민망함과 자괴감. 거기에 친구의 은혜를 갚고자 친구가 돈을 빌린 자신의 전남친 크로그스타드를 찾아가 "나는 내가 어머니가 되어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필요하죠. 우리 둘은 서로가 필요해요."(p93)라며 청혼하며 상황을 해결하려는 모습. 노라의 친구라는 이유로 취직에 성공했지만 노라의 가출 이후 헬메르의 눈칫밥을 먹어야 할 그의 앞날까지. 노라의 화려한 서사에 가려진, "내가 무언가, 누군가를 위해 일할"(p93) 기회를 원하는 크리스티네의 굳건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크리스티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인형의 집>도 궁금해진다. 노라를 찾아오기 전까지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라가 떠난 후, 헬메르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크리스티네는 얼마나 많은 껄끄러움과 역경을 견뎌내야 할까.

노라: 예, 그게 문제예요.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리고 나도 당신을 이해한 적이 없었어요. 오늘 저녁까지는 그랬어요. 아니, 내 말을 끊지 말아 줘요.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들어요. 지금 우리는 밀린 계산을 하는 거예요.
헬메르: 그게 무슨 뜻이오?
노라: (잠시 침묵한 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는데, 뭐 생각나는 게 없나요?
헬메르: 대체 뭐?
노라: 우리가 결혼한 지 팔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당신과 나, 남편과 아내, 우리 둘이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게 지금이 처음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

노라: 걱정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우리가 한 번도 진지하게 앉아서 무언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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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산뜻하게 민음의 시 298
정재율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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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뜻하다, 는 형용사는 어떤 감각을 담고 있을까. 산뜻하다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형용사들을 떠올려보자. 끈적하다, 더럽다, 무겁다, 답답하다. 어떠한 감각의 과잉의 순간의 반대편에서 우리는 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인식되는 감각인 셈이다. 이렇듯 산뜻하다는 말은 부재(不在)함에 대한 감각이다.

그러나 '자극-감각-인지'로 이어지는 인간의 인지 체계에서 감각은 본디 어떠한 존재로 인한 자극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존재가 없이 우리는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무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지되기 위해선 그 전에 어떠한 감각이 선행되어야 할까.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는 이러한 부재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탐구한다.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죽음과 애도를 담은 기존 시들의 세계를 넘어, 정재율은 부재 그 자체를 감각하는 언어를 모색한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먼저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나의 발을 가져다 대 보"('끝과 시작')을 함께 따라가본다.


#2.

존재하지 않는다, 는 감각은 존재하는 것을 감각해본 자들만이 느낄 수 있다. 존재했지만 지금은 부재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유실에 대해 생각해 본"('고해성사')다. 부재를 감각하는 것은 유실(遺失)을 감각하는 것이다.

있었던 것의 부재를 감각하는 것은 흑백영화를 관람하는 행위를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흑백이 된 나는/ 색이 있는 널 사랑해야 하"('프랑스 영화처럼'), 해변을 걸으며 너와 "다음 신에서 만나"는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주웠던 조약돌도 "모두 다 흑백이었다"('영화와 해변'). 컬러영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흑백영화는 그 자체로 완전한, 어느 것도 부재하지 않다. 영화 속에서 색채를 경험해본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흑백영화 속 부재하는 색채의 감각을 인지할 수 있다. "본 적 없는 눈이 가장 깨끗하다고 믿는 것처럼"('축복받은 집')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부터는 부재함을 감각할 수 없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부재의 감각이 더욱 강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그 사람의 존재를 경험했기에, 그 사람의 부재도 감각할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물건을 태웠"('축복받은 집-숲')던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지금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보다 과거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부재한 것들은 우리에게 더 강렬한 감각으로 다가오니까.

부재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리가 언제나 존재하는 비(非)청각장애인의 세계에서는 "순간 주위가 너무 조용해"지는 것만으로 "세계는 잠시 지구 종말 같"은 두려움을 선사한다('개기일식'). 우리가 이미 소리의 존재를 경험했기에, 그 부재가 더 두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청각의 존재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 순간은 어떻게 다가올까. 청각을 경험했지만 후천적으로 이 부재를 평생 감각해야만 하는 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부재를 인정하며 살아갈까.


#3.

부재의 감각에 대한 정재율의 탐구는 인간을 넘어 비인간동물들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죽게 되는" 집단자살로 잘 알려진 동물 레밍은 비이성적인 군중심리를 비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빈번히 인용된다. 하지만 정재율은 이러한 레밍의 행위를 인간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고, 슬픔과 부재를 끌어안는 그들 종(種)만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행위는 어쩌면 "남겨진 레밍들이 죽은 레밍의 몫까지 열심히 땅을 파는 것처럼" "모두가 한꺼번에 슬픔을 나누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지 않"게 된다. 그들의 행위는 결국 부재의 슬픔을 나누기 위한 하나의 리추얼(ritual)인 셈이다. 그들의 행위를 통해 정재율은 질문한다. "함께 슬픔을 나누려면 몇 명이나 필요하지"라고. ('축복받은 집-레밍')

펭귄 중에는 "걷다가 뛰다가 날다가 (...) 떨어져서 죽은/ 펭귄의 뼈를 모아// 둥지를 만드는 녀석도 있다"고 한다. 죽은 이를 매장하거나 화장해서 시체를 보존하는 것이 익숙한 인간에게 다른 재료로 유골을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진다. 무리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일부 종들의 행위도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부재하는 그들을 항상 곁에 두면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지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은 부재하지만 한때 "사랑했던 것을 조금 남기는 기분으로" 함께하는 이들의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안는다. ('0') 그렇게 그들은 부재를 감각한다.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함께 슬픔을 나누려면 몇 명이나 필요하지

나는 수를 세다가 레밍의 죽음에 대해 떠올렸다 맹목적으로 우두머리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바다에 빠져 죽게 되는

그런 믿음

(...)

모두가 한꺼번에 슬픔을 나누면
그건 그거대로 슬프지 않았다

(‘축복받은 집-레밍‘ 부분)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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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트, 그리고 퀼트 문학동네 시인선 131
주민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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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트(Kilt)는 "스코틀랜드의 남성이 전통적으로 착용한 스커트"('킬트의 시대'). "스코틀랜드의 어느 광장에서" "치마 입은 남자들과 춤을 추" "치마는 소리 없이 돌고/ 돈다는 것은/ 돌면서 계속 새로운 무늬를 가진다".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모호하게 기워져 있"다. 킬트는 이렇듯 우리의 젠더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드는 유산이다. 이와 같은 킬트의 모호함은 역사적 관습으로써의 남녀유별은 필연적이라는 혹자들의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렇게 우리는 편견의 경계가 사라진, "밖에서의 규칙들을 잊어버려도 좋"을 물속으로 빠져든다('오리들의 합창'). 비록 그곳에선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뭐든 천천히 힘을 빼야" 한다는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명확함이 정체성을 규명하기에, 너와 나 사이의 범주를 더 철저히 세워야 한다 말하지만 "흔들리며 명확해지는 풍경"('블루스의 리듬')도 있는 법이기에 때로는 그 경계들을 지우는 것을 통해 '우리'가 된다. 이렇듯 주민현 '우리'가 되는 첫 번째 방법으로 킬트처럼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 것을 제안한다.


#2.

퀼트(Quilt)는 작은 크기의 천들을 모아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서로 다른 곳으로부터 비롯된 직물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결합하며 하나의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낸다. "비슷한 군중이 되어 걷고 있지만"('호텔, 캘리포니아') 그 본질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세상은 마치 퀼트의 질서를 닮았다. 우리는 분명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원에 간다/ 우리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려고"('한낮의 공원'). 비록 다른 직물들이지만 하나의 조각보 위에 놓여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 사회적 동물의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가 다른 곳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그걸 사랑이라 부른다"('어두운 골목'). 같은 천 위에 놓여있지만 서로 다른 직물임을 인정하는 과정.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조각보가 더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세. 주민현이 제시하는 '우리'가 되는 두 번째 방법은 바로 퀼트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이다.


#3.

"킬트, 그리고 퀼트". 경계를 지우는 킬트와, 차이를 확인하는 퀼트. 서로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를 주민현은 '킬트의 시대'라는 하나의 시로 풀어낸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는, 양극단에 놓여 있지만 하나의 지면에 풀어낸 두 가지 질서는 어떻게 공존하는 것일까. "체크무늬의 치마, 우리를 깁지"라고 마무리되는 '킬트의 시대'의 마지막 행이 그 해답을 제시한다.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체크무늬의 킬트가 결국엔 퀼트처럼 우리를 기워줄 것이다.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결국엔 그것이 인위적 경계가 아닌 자연스러운 차이들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사라진 때부터/ 제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가방의 존재')는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포기하지 못했던 어떠한 편견의 경계들이 사라진 이후,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차이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계를 지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후 드러나는 차이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 "우연한 악의의 감정" 대신 "놀라울 만큼의 선의"로 말이다('브루클린, 맨해튼, 천국으로 가는 다리')

치마를 입고 함께 춤을 춘다고 해서
우리의 성이 같아지는 건 아니지만

한때 노동복이었던
치마를 입은 내가 스코틀랜드에선

남자여도 이상할 건 없지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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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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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은 새싹의 생명력으로 상징되고, 가을은 추수의 풍요로움과 동일시되며, 겨울은 눈이 가득 덮인 설원이 가지는 감춰짐의 이미지를 갖는다. 반면에 여름은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계절이다. 모든 식물은 여름에 가장 빠른 속도로 생장하며 이곳저곳에서 분출하는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는 폭염과 폭우의 형태로 드러난다. 인간에게 여름이 힘든 것도 그러한 이유 탓이리라. 그런 점에서 <나이트 러닝>은 여름의 냄새가 나는 소설이다. 물론 작품 속 대부분의 공간에서 더위와 작렬하는 햇빛, 귀를 때리는 매미소리 등이 느껴지는 탓도 있겠지만, 이지의 소설은 여름의 분위기를 닮았다.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발산한 나머지, "내가 울면 누군가 구경할 수도 있"으니 "슬픔의 행위는 벽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에덴-두 묶음 사람', p270) "차라리 눈물이 오래오래 흘러서 무덤도, 길도, 풀도 잠겨버리길 소망"('우리가 소멸하는 법', p138)하길 바라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힘겨운 여름을 건너는 여정을 통해 삶의 원동력을 이끌어낸다.


#2.

<나이트 러닝> 속 인물들은 죽음에 압도된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계속해서 자라나는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나이트 러닝'), 왕릉 주변을 거닐며 죽은 친구를 추억하기도 한다('우리가 소멸하는 법').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을 간병하느라 "언제나 대기"하며 "사람의 몸이 얼마나 나약하고 질긴지, 몸을 통과하는 모든 것들을 봐야 하는" 이도 있으며('곰 같은 뱀 같은', p217), 때로는 "폭격으로 사람이 죽어가고, 공중에서 비행기가 사라"지고 "매일매일 어디선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에 가려져 여타의 인간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취급을 받기도 한다('모두에게 다른 중력', p162). "언제나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했고, 계절은 바깥으로만 흘"러가는 고급 주택가도 죽음을 피해가진 못한다('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 p171).  "관념으로서의 죽음은 무섭지 않다. 그저 잘게 부서지는 일과 같게 느껴졌다."('에덴~', p244) 하지만 죽음은 그저 관념이 아니기에, 그것은 마치 화석처럼 "은유가 아니었다. 명백한 증거"('대리석 궁전에~', p186)이기에 더 무서운 법이다. 인물들은 삶의 한 부분으로써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이 자연스럽다는 말에 대해 "자연은 무서우니까. 그런 의미라면 맞을 거야"('곰 같은~', p209)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죽음이 더 무서운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중대한 것일지라도 세상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별 거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목숨을 내놓는다고 누가 돈을 줄까"('대리석 궁전에~', p183).


#3.

하지만 무섭다고 무작정 달아날 순 없다. <나이트 러닝>은 죽음에 압도된 인간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함께 소멸하는 방식"('우리가~', p119)을 이야기한다. 죽음은 마치 밤을 닮았다. 밤의 그림자는 "날아다닐  어떤 누구도   없고어떤 사냥꾼도 맞출  없"('슈슈', p38)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렇"듯 "밤의 얼굴은 온통 거짓말"('슈슈', p46)이다. 하지만 삶을 압도하는 죽음의 컴컴한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달리며 생의 내력에 대해 생각"('나이트 러닝', pp33-34)하며 그 두려움을 돌파한다. 삶이라는 이름의 "여행지에서는 꿈을 많이 꾸"('곰 같은~', p234)게 마련이다. 우리에게 죽음이 예견된 공포라면 초연하지 못한 것이 인간의 당연한 생리일지 모른다. 이것을 초월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두려운 꿈을 잊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한밤 중의 달리기를 이어간다. 격렬한 신체 운동에 지쳐버린 이들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없는 잠"('슈슈', p66)에 깊이 빠져든다. 일상의 지속을 통해 죽음의 공포로 잠식된 삶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며 더 가뿐하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 <나이트 러닝>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닐까.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참았다. 옥상은 원형극장처럼 사방에서 보이기 때문에 내가 울면 누군가 구경할 수도 있다. 애도는 철저하게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그러므로 이 슬픔의 행위는 벽이 있는 곳에서 해야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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